“폭우 때 침수 지역 미리 알려드립니다”
실제 하천 지형 디지털로 구현해
수위 조절·침수 우려 지역 예측
역대 최장 기간 장마로 기록된 2020년, 남부 지방에선 수마(水魔)의 피해가 섬진강 권역에 집중됐다. 피해를 키운 원인 중 하나로 ‘댐 수위 조절 실패’가 지목됐다. 댐을 미리 비워놓지 않은 데다 38일 동안 장마가 이어질 거라 예상치 못해 발생한 인재(人災)였다. 특히 댐 관리 주체인 한국수자원공사(수공)에 비난이 쏟아졌다.
수공 디지털관리부 권문혁(50) 부장이 실제 하천 지형을 모사해 디지털로 구현하는 ‘디지털 트윈(digital twin)’ 기술로 침수 시뮬레이션 모델을 만들자고 제안한 것은 이듬해 3월이었다. 전국 홍수통제소 강우 레이더와 기상청 비 예보를 연동해 댐 수위를 과학적으로 조절하고, 어느 지역이 침수될지 예측해 주민들을 미리 대피시키자는 취지였다. 이렇게 시작한 프로젝트는 현재 세계 5국이 구매 의사를 밝힌 세계 최초 유역 단위 물 관리 플랫폼으로 발전했다.
12일 대전 대덕구 수자원공사 본사에서 이 플랫폼을 만든 주역 5인방을 만났다. 권 부장은 “더는 경험적 직관이 아니라 과학적 데이터에 근거해 댐 수문을 여닫을 수 있게 됐다”며 “침수 예보 권역을 한반도 전역으로 넓혀 홍수로 목숨을 잃는 비극을 막을 것”이라고 했다.
이 프로젝트는 재작년 3월 시작돼 7개월 만인 그해 10월 섬진강을 대상으로 한 첫 작품이 나왔다. 작년에는 범위를 4대강(한강·낙동강·금강·영산강)과 서울 도림천까지 넓혔다. 설계를 총괄한 김기철(43) 선임위원은 “민간에 용역을 맡기려고 알아보니 섬진강 구축에만 20억원이 든다고 해 직접 만들기 시작했다”며 “뼈대를 잘 구축한 덕에 5대강 모델링에 결과적으로 80억원가량 세금을 아낄 수 있었다”고 했다. 이 뼈대에 김진곤(46) 차장은 낙동강 하굿둑에서 하천으로 올라오는 염수(鹽水)의 양, 녹조 발생 경로 등을 추적할 수 있는 장치를 달았다. 박승혁(41) 과장은 모형 정확도를 높이려 전국을 돌며 드론으로 일일이 강 유역을 촬영했다.
수공 플랫폼은 게임을 만들 때 쓰는 소프트웨어(게임 엔진)로 제작됐다. 현재 지형 모사에 머무는 게 아니라, 강에 새로 다리를 짓거나 새로 건물을 올렸을 때 빗물길의 흐름이 어떻게 달라지고 하천 수위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예측할 수 있을 정도로 기술을 정교화한 상태다. 김현진(38) 차장은 “디지털 트윈 기술은 1단계인 ‘모사’, 2단계인 ‘모니터링’까진 ‘실시간 영역’이라면, 3단계인 ‘시뮬레이션’부턴 ‘미래 영역’으로 확장되는데, 수공 기술은 3단계에 와 있다”고 설명했다.
수공의 기술은 이달 열린 세계 최대 IT 전시회인 ‘CES(국제전자제품박람회) 2023′에서도 관심을 끌었다. 미국·이스라엘·멕시코·인도·그리스 등 여러 국가 기업들이 홍수·산불·해일 같은 재난 상황에 도입하거나 건설·플랜트 사업에 활용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다고 한다. 권 부장은 “현재까지 수공의 주요 해외 사업이 개발도상국에 물 인프라를 구축하는 데 머물러 있었다면, 디지털 트윈은 기상·재해 데이터가 충분히 축적돼 있는 선진국에 더 유용한 기술”이라며 “북미나 유럽으로 녹색 산업 시장을 넓혀가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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