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기자의 사談진談]정치인이 검찰에 출석하는 날

최혁중 사진부 차장 2023. 1. 18. 03:03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운데)가 10일 수원지방검찰청 성남지청에 출석하면서 입장문을 발표하기 전 입에 손을 갖다 대며 조용히 하라는 신호를 보내고 있다. 성남=사진공동취재단
최혁중 사진부 차장
광화문 주변에 모여 있는 신문사에서 서울 서초구에 있는 검찰청사까지 거리는 10km 정도 된다. 취재차량으로 갔을 때 20분이 걸리기도 하고 퇴근 시간이면 1시간이 걸리는 경우도 있다. 지금이야 내비게이션이 있어서 도착 예정 시간을 알 수 있지만 예전에는 교통 상황에 따라 얼마가 걸릴지 몰라 답답할 때가 많았다.

그런데 서울중앙지검이나 대검찰청에서 피의자를 부르거나 구속하면서 기자들에게 통보해줄 때 보통 1시간 미만의 시간을 주는 경우가 꽤 있었던 걸로 기억한다. 검찰이 기자들에게 일정을 알려준다고 해서 기자들이 다 가지는 않는다. 사안이 크거나 유명인이 연루된 사건이라면 아무리 교통이 밀려도 가야 한다. 신호등에 갇힌 차 안에서 미리 알려주지 않은 검찰을 욕했던 경험이 꽤 있다. 왜 빠듯한 시간을 주면서 공개적으로 출석시키거나 구속을 하는 거냐는 불만이었다. ‘포토라인’에 선다는 것만으로도 모욕감과 함께 죄인이 된 것으로 느끼는 피의자들로서는 기자들이 제때 도착하지 않았으면 하고 기대할 수도 있을 것이다. 검찰이 ‘언론 플레이’를 한다고 주장하는 정치인이 있다면 아마 이런 프로세스를 염두에 둔 것일 거다.

일반인의 경우 검찰에 출석하는 것 자체가 끔찍한 일이고 포토라인에 선다는 것은 두려운 일이다. 정치인들은 좀 다른 것 같다. 포토라인에 서는 것을 피할 수 없는 상황으로 인식하고 적극 대응하는 정치인도 있다. 대표적으로 장세동 전 안기부장이 있다. 1989년 제5공화국 비리 조사 때 검찰에 불려온 장세동 씨는 포토라인에 서서 자신과 전두환 전 대통령의 무죄를 카메라 앞에서 얘기했다. 당시 강북에서 출발한 한 신문사 사진기자가 늦게 도착해서 허둥대자 청사로 들어가려던 장 씨가 포토라인으로 돌아와 다시 포즈를 취했다는 얘기가 있다.

얼마 전 한국 정치사에서 처음으로 현직 야당 대표가 검찰 조사를 받기 위해 성남지청에 출석해야 했다.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전날 국회 출입기자들에게 문자를 보냈다.

“하차 위치: 남한산성입구역(8호선) 3, 4번 출구 중간(10:00 도착 예정). 08:00 소통관 앞 버스 출발(사전 신청 없이 탑승 가능).”

기자들을 위한 버스도 준비되어 있으니 취재를 희망하면 같이 가자는 내용이었다. 사진기자들로서는 중요한 뉴스거리였기에 다 가고 싶었지만 지청 쪽에서 인파가 모이는 것을 우려해 대표취재(풀 취재)를 요구해 사진기자협회 소속 9명의 사진기자만 현장 취재를 했다.

보통 포토라인은 검찰청사 현관문 앞에 그어진다. 하지만 이날 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성남지청 정문에서 현관까지 150m를 걸어 들어갔다. 이 대표가 도착한 ‘성남지청 정문 앞 지하철역’ 주변은 이른 아침부터 진보, 보수 단체의 유튜버와 시위 참석자들로 대단히 혼란스러웠다. 청사에 들어가기 전 약 9분간 미리 준비한 2300여 자 분량의 입장문을 발표하기도 했다. 사진에는 민주당 현역 의원 수십 명이 함께 찍혔다.

12시간의 검찰 조사를 마치고 나온 뒤에도 똑같이 그 길을 따라 나왔고 차량에 타기 전 지지자들에게 손을 흔들어 대선 유세에서나 나올 ‘그림’이 연출되기도 했다.

‘정치인은 본인의 부고만 빼고 언론에 등장하는 것이 무조건 이익’이라는 우스갯소리 때문일까? 정치인의 ‘검찰 가는 날’이 지나치게 많은 인파와 말들로 복잡한 것 같다.

그러고 보니 현장을 취재한 사진기자들에게는 그날이 화려했지만, 각종 의혹에 대한 취재기자들의 궁금증은 별로 해소가 되지 못했던 게 아닌가 싶다. 그날 현장의 기자들이 제대로 질문을 하고 9분까지는 아니더라도 충분한 답변을 들었는지는 각종 영상들이 증명하고 있다.

실제 수많은 카메라 앞에서 아카데미급 연기력으로 위기를 돌파한 경우도 있었겠지만 어색한 연기를 이제 국민들은 대부분 거르고 있다. 수해복구 현장에 나와 카메라 앞에서 마스크 쓰고 “비나 왔으면 좋겠다. 사진 잘 나오게”라고 이야기하는 정치인, 멀쩡히 잘 걸어 다니다 휠체어 타고 포토라인에서 “죄송합니다”라고 하는 기업인들의 모습을 이제 국민들은 순진하게 믿지 않는다. 이제 우리 사회도 포토라인 앞의 화려한 이미지와 ‘헤어질 결심’을 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최혁중 사진부 차장 sajinman@donga.com

Copyright © 동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