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월회의 행로난] 당당하고도 끈질긴 인간의 악

기자 2023. 1. 18.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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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은 참으로 한결같다. 악은 없었던 적도 없었고 약했던 곳도 없었다. 참으로 한결같이 사악했다. 그중 소위 ‘가진 자’들의 악은 내놓고 당당했으며 더없이 끈질겼다. 인간의 이러한 악함을 기본으로 놓고 그 위에서 사회를 ‘좋게’ 운영해갈 길을 찾았던 한비자는 신하를 ‘가진 자’들의 대표로 제시한 후 이들의 악함을 ‘팔간(八姦)’, 그러니까 여덟 가지 간악함이라는 제목으로 개괄하였다.

첫째는 군주와 침상을 같이함으로부터 비롯되는 ‘동상(同牀)’의 간악함이다. 군주의 부인이나 첩 등을 이용하여 사리사욕을 채우는 악함을 말한다. 둘째는 군주 옆에 있는, 곧 내시 같은 측근으로부터 야기되는 ‘재방(在旁)’의 간악함이다. 군주의 심복임을 악용하여 간특한 짓을 일삼는 것을 말한다.

셋째는 가족이나 총신처럼 군주가 친애하는 자들로부터 발원되는 ‘부형(父兄)’의 간악함이다. 군주와 특수 관계임을 내세워 악행을 일삼음을 말한다. 넷째는 군주의 재앙을 조장함으로써 초래되는 ‘양앙(養殃)’의 간악함이다. 궁실을 화려하게 꾸미고 백성에게 세금을 무겁게 매기며 군주의 처첩이나 개, 말 등을 사치스럽게 꾸밈이 이에 해당한다.

다음은 ‘민맹(民萌)’의 간악함이다. 하찮은 은혜를 베풀어 조정이나 민간에서 자신을 칭송하게 만드는 악행이다. 그다음은 ‘유행(流行)’의 간악함이다. 교묘하게 꾸민 언사나 허황된 궤변으로 삿됨을 자행하는 것이다. 이 둘은 요새로 치자면 언론 장악, 여론 조작 등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일곱째는 자신이 지니게 된 위력을 오남용하는 ‘위강(威强)’의 간악함이다. 예컨대 공권력을 자신의 이해관계 관철에 악용하는 행위를 가리킨다. 마지막은 강대국의 위세에 기대어 당리당략을 달성하는 ‘사방(四方)’의 간악함이다. 이를 용이케 하려고 신하는 군주를, 또 조국을 연신 약하게 만든다.

왠지 고대 중국에 대한 얘기라고만 느껴지지 않는다. 한비자가 팔간을 언급함은 유능한 군주라면 신하의 이러한 간악함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다는 취지였다. 그렇다고 팔간이 저 옛날 군주제 시절에나 유용했던 통찰은 아니다. 인간의 악은 참으로 당당하고 끈질긴지라 2300여년이란 시간을 관통하며 지금에도 버젓이 행해지고 있으니 말이다.

김월회 서울대 중어중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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