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수 칼럼] ‘공안 본색’ 대통령과 동강 난 설
설이 코앞이다. 3년 만에 거리 두기 없고 ‘탈(脫)마스크’도 가까워져 설렌다. 정초부터는 기부한 출향인에게 지역 특산품을 주는 ‘고향사랑기부제’도 새로 자리 잡았다. 정지용의 ‘향수’나 이은상의 ‘가고파’ 노랫말처럼, 나고 자란 언덕배기·바다·골목을 잊을 이는 없다. 살다 쌓인 말과 그리움과 시름을 안고 저마다 고향·가족·친지를 찾는 것이다. 언제부턴가 그 설 공기를 무겁게 하고 낯가리게 하는 대화가 생겼다. 정치다.
세태 조사도 흥미롭다. 정치 성향이 다르면 41%는 밥과 술을 먹기 싫고, 44%는 본인·자녀의 결혼도 불편하다고 했다. 지역·남녀·세대·계층보다 지지정당 차이가 가장 큰 ‘분열의 씨앗’이 됐다. 이 숫자를 내놓은 조선일보엔 병 주고 약 주냐고, 언론부터 각성하잔 말이 차오른다. 끼리끼리 모인 소셜미디어와 유튜브가 키우는 게 있다. 확증편향이다. 설도 예외 없다. 유유상종하고 내놓는 여야의 설 여론은 올해도 평행선을 달릴 게다.
해 바뀌고, 나라에서 팔 걷어붙이는 일마다 찬바람이 인다. 노동개혁은 ‘노조 회계장부’ 공격으로 시동 걸고, 서울시는 법원이 ‘열차운행 5분 지연 시 500만원 내라’고 중재한 장애인 시위에 6억원의 손배소를 던졌다. 시민사회 보조금을 전수조사하겠다는 대통령실은 왜 진보단체 일탈만 예시하는가. 동네방네 떠벌리며 ‘간첩단 지하조직’을 쫓는 것도 오랜만에 본다. 그러면서 국정원은 정치개입·사찰의 흑역사가 서린 기업 정보담당관(IO)과 인사검증(세평수집) 기구를 부활시켰다. 외교부의 MBC 소송으로, 대통령의 ‘이××들’ ‘바이든·날리면’ 청력테스트는 법정에서 이어진다. 이 의뭉스러운 난장을 다 이으면 그려지는 게 있다. 공안국가다.
공안은 검찰에서도 가장 오래된 전문 부서다. 공안수사는 해방정국에도 있었다. 그 ‘공안부’가 2019년 ‘공공수사부’로 개칭됐다. 반성한다고 했다. 서울시 공무원(유우성)을 간첩으로 조작하고, 친여·친기업 잣대로 선거와 노사 갈등까지 개입해 쥐락펴락한 오욕을 벗겠다는 다짐이었다. 그래서 지금은 달라졌는가. X표를 친다.
대통령이 노동·북한·야당과 각 세우니 법무(검찰)·행안(경찰)·노동부와 국정원은 물을 만났고, 통일부는 눈칫밥을 먹는다. 이준석·유승민 뒤로 나경원이 세번째다. 대통령이 편먹고 갈라치는 집권당엔 민주주의가 설 땅을 잃었다. 윽박질러 이기면 국민이 끄덕일까. 윤석열 정부 110대 국정과제엔 ‘줄푸세’(세금 줄이고 규제 풀고 법질서 세우기)와 ‘공안역량 강화’가 녹아 있다. 대통령의 ‘공안 본색’이 2년차에 만발한 것이다.
그렇게 내달리는 세상이 정의롭지도 공평하지도 않다. 주 36시간 미만 단시간 노동자가 802만명, 주휴수당 없는 초단시간(주 15시간 미만) 노동자가 158만명을 찍었다. 최고치다. 대통령은 올핸 주 52시간제·파견 둑을 더 풀고 ‘노노 착취’도 없애겠단다. 임시·하청·파견직을 더 쓰려는 자본·업주엔 ‘갑의 날개’를 달아주고, 그 비정규직 천지에서 터질 을·병·정의 다툼도 법으로 손볼 심사다. 이것이 개혁인가. 다주택자 매매·세금 족쇄를 풀고, 법인세·종부세는 내렸다. 낙수효과가 있을지, 입법이 될진 더 봐야 한다. 부자감세 후 빡빡한 재정으로 연금·노동 개혁에 나서는 갑론을박도 길어질 게다. 지금 프랑스처럼…. 그에 앞서 짚을 게 있다. 정부·기업은 빠져나오고 약자들만 피울움 쏟은 외환위기 전철을 코로나19 끝에 되풀이해선 안 된다.
2020년 이맘때다. ‘설 대화의 7대 금기 인물’을 썼다. 글 속 친구는 올해도 대전 큰집에 간다고 했다. 조국 얘기로 형과 다시 안 볼 듯 다툰 뒤로 그는 명절 대화에 뺄 사람을 정한다. 3년 전 7명은 문재인·황교안·조국·윤석열·추미애·유시민·진중권이었다. 이번 설엔 ‘7+α’라 했다. 윤석열·김건희·이재명·문재인·한동훈·이상민·유승민과 정치 유튜버들이다. 설 평화를 위해 ‘굿럭’, 행운을 빈다.
3년 전 미국 심리학회가 트럼프 시대의 명절 다툼 예방법을 내놨다. ①입에 올리지 않을 정치인을 함께 정하라 ②민감한 정치 이슈가 나오면 화제를 돌려라 ③내가 타인의 견해를 바꿀 수 없음을 인정하라 ④인신공격은 하지 마라. 이 대화법은 지금도 유효하다. 누군가 툭 던진 말에 불붙는 게 설 상의 정치다. 가뜩이나 살림·일자리·양육도 고단한 시대, 설엔 서로 힘주는 말이 넘치면 좋겠다. 마음 가눌 길 없을 이태원 참사 유족도 헤아리고, 기후·연금·선거제 얘기도 나눠봄직하다. 그러다 싸울 거 같으면, 애당초 안 하니 못한 정치나 끝없을 공안국가 설전은 멈추길 권한다.
이기수 논설위원 kslee@kyunghyang.com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단독] 강혜경 “명태균, 허경영 지지율 올려 이재명 공격 계획”
- “아들이 이제 비자 받아 잘 살아보려 했는데 하루아침에 죽었다”
- 최현욱, 키덜트 소품 자랑하다 ‘전라노출’···빛삭했으나 확산
- 수능문제 속 링크 들어가니 “김건희·윤석열 국정농단 규탄” 메시지가?
- 윤 대통령 ‘외교용 골프’ 해명에 김병주 “8월 이후 7번 갔다”···경호처 “언론 보고 알아
- 이준석 “대통령이 특정 시장 공천해달라, 서울 어떤 구청장 경쟁력 없다 말해”
- “집주인인데 문 좀···” 원룸 침입해 성폭행 시도한 20대 구속
- 뉴진스 “민희진 미복귀 시 전속계약 해지”…어도어 “내용증명 수령, 지혜롭게 해결 최선”
- 이재명 “희생제물 된 아내, 죽고 싶을 만큼 미안하고 사랑한다”
- ‘거제 교제폭력 사망’ 가해자 징역 12년…유족 “감옥 갔다 와도 30대, 우리 딸은 세상에 없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