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사일언] 판사와 변호사
십 수년간 판사로 일하다 변호사가 된 지 채 1년도 되지 않았지만, 판사와 변호사의 차이가 무엇인지 곧잘 질문을 받는다. 엉뚱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가장 큰 차이점은 변호사가 돼서는 꿈을 자주 꾼다는 것이다.
판사 시절, 담당 사건에 관해 고심한 적은 종종 있었지만, 이성적 숙고일 따름이었다. ‘공정한 관찰자’로서 판단하려 노력했기에 당사자에게 사사로운 감정을 느끼는 일은 있을 수 없었다. 소송에서 누군가는 승소하거나 패소하기 마련이고, 이는 법에 따른 권리 의무의 마땅한 귀결이라 여겼다. 그 때문에 직업인으로서 내 삶은 늘 차분하며 평온했다.
그러나 변호사가 돼서는 평상심을 유지하기 쉽지 않다. 사건 수임 계약이 자신의 영혼을 파는 파우스트적 거래는 아니지만, 자기 영혼의 일부를 나눌 준비를 해야 한다. 사건을 의뢰받는 순간, 의뢰인의 걱정이 변호인에게 전이된다. 그렇게 알게 된다. 아니, 체득하게 된다. 사건 하나하나에는 말 못 할 사연과 문제, 슬픔이 있고, 변호사로서 사건을 맡는다는 것은 이것들을 함께 떠안는 일이라는 것을.
법관 시절, 재판에 관련된 꿈을 꾼 적은 없지만, 변호사가 된 후로 곧잘 내가 맡은 일로 꿈을 꾼다. 나는 의뢰인의 걱정 인형 같은 존재인지 모른다. 의뢰인이 머리맡에 걱정 인형을 파묻고 잠들면, 나는 그와 신비롭게 연결된 꿈을 통해 그의 고민과 근심, 염려를 나눠 갖는다.
신기한 건 잘 해결된 사건보다 그러지 못한 사건에 신경이 더 쓰인다는 것이다. 승소한 사건은 한나절 즐겁지만, 패소한 사건은 주말 내내 마음을 울적하게 한다. 친구의 잘된 일은 잠깐 기쁠 뿐이지만, 친구의 슬픔은 내 슬픔인 양 오래 마음에 남는 것과 같은 이치다.
아직 경험이 일천한 변호사 일 덕분에 한 가지 중요한 인간적 진실을 깨닫는다. 어쩌면 슬픔이야말로 인간이 서로 연대할 수 있는 유일한 가교라는 것, 서로를 염려하며 이 다리를 함께 건너갈 때 우린 패배해도 승리할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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