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는 관객 적다고 멜로를 중단합니까?

박돈규 기자 2023. 1. 18.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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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멜로 영화가 사라진다
탕웨이와 박해일이 주연한 ‘헤어질 결심’은 지난해 박스오피스 30위 안에 든 유일한 멜로 영화다. 극장에서 멜로 영화는 점점 사라지고 있다. /CJ ENM

극장에서 멜로 영화가 사라진다. 로맨틱 코미디까지 포함한 ‘로맨스의 퇴장’이다.

영화진흥위원회 집계에 따르면 2022년 박스오피스 30위 안에 멜로 영화는 탕웨이·박해일이 주연한 ‘헤어질 결심’뿐이다. 17위(189만명)에 이름을 올렸지만 이 또한 정통 멜로는 아니다. 로맨틱 스릴러로 분류된다. 영화 전문가들은 “코로나 시대를 거치면서 극장에서 멜로는 ‘데이트 영화’ 기능마저 잃고 말았다”며 “장르 자체가 폐업 수순”이라고 진단했다.

2012년 흥행한 멜로 영화 '건축학개론'

◇흥행 안 되니 제작도 안 해

우리 모두는 누군가의 첫사랑이었다. 2012년 엄태웅·한가인·이제훈·수지가 출연한 ‘건축학 개론’은 411만명을 모으며 흥행했다. 하지만 이 영화 이후 지난 10년 동안 극장가에서 존재감을 보여준 멜로는 거의 없다. 2021년 손석구·전종서가 주연한 ‘연애 빠진 로맨스’는 60만명을 모으는 데 그쳤다.

1980년대 ‘기쁜 우리 젊은 날’, 1990년대 ‘8월의 크리스마스’, 2000년대 ‘엽기적인 그녀’ 등으로 대표되던 멜로 영화가 근년에는 실종 상태다. 영화 시장 분석가 김형호씨는 “몇 년 동안 장사가 안돼 투자가 어려워지면서 제작이 감소했고 개봉은 더 줄었다”며 “국내에서는 20대의 사랑을 대변하는 멜로가 아예 나오지 않고 있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헤어질 결심’ 속 탕웨이라면 “한국에서는 손님 적다고 멜로를 중단합니까?” 반문할 것이다.

지난해 말 개봉한 일본 멜로 영화 ‘오늘 밤, 세계에서 이 사랑이 사라진다 해도’는 10~20대 여성 관객의 지지를 받으며 89만여 명을 모았다. ‘아바타: 물의 길’이 장악한 극장가에서 선전한 셈이다. 김형호씨는 “40~50대 관객을 노린 ‘19금(禁) 멜로’도 시장성이 있다”고 했다.

일본 영화 '오늘 밤, 세계에서 이 사랑이 사라진다 해도'는 자고 일어나면 기억이 리셋되는 ‘선행성 기억상실증’을 앓는 여고생 마오리와 무미건조한 일상을 살고 있는 남고생 토루의 풋풋한 사랑 이야기다 /미디어캐슬

◇OTT와 종편에서 소비한다

멜로 소비가 끊어진 것은 물론 아니다. 영화관에서 멸종 위기인 이 장르는 OTT(온라인 동영상 서비스)와 종편에선 번성하고 있다. 구태여 극장까지 가지 않아도 안방에서 감성 멜로 SF ‘욘더’, 한석규·김서형 주연 중년 멜로 ‘오늘은 좀 매울지도 몰라’, 연애 리얼리티 프로그램 ‘환승 연애’ 등을 골라 볼 수 있다.

극장가에서 멜로는 더 이상 경쟁력이 없는 것일까. 영화 제작자 원동연 리얼라이즈픽쳐스 대표는 “멜로는 원래 안타나 2루타(200만~300만명)를 노리는 장르였는데 코로나 이후에는 손익분기점을 맞추기가 현실적으로 어려워졌다”고 설명했다. “개봉을 해도 ‘OTT로 나올 때까지 기다려서 보겠다’는 관객이 많다. ‘19금 멜로’도 낮에 집에서 주부들이 주로 소비한다. 칸영화제 수상작이거나 예술로 포장되지 않는 한 체면 때문에 극장까지 오질 않는다.”

영화 평론가 정지욱씨는 “요즘에는 데이트 영화도 액션물 등 오락성이 강한 쪽으로 쏠린다”면서 “한국 영화의 르네상스를 이끈 40~50대 관객에게는 멜로에 대한 잠재 욕구, 큰 스크린에서 보고 싶은 갈망이 충분히 있다고 생각한다. 그 틈새 시장을 노리며 제작자들이 좀 더 과감해질 필요가 있다”고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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