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칼럼] 레바논인들과 죽음의 보트 왜?
2023년 1월1일부터 레바논 해상에서 난민보트가 전복되었다는 뉴스가 보도되었다. 사고가 난 선박에 탄 사람 대부분이 시리아 출신 난민이긴 하지만, 레바논 국민 50여명도 함께 타고 있었다. 이들 탑승자 대부분은 유럽으로 건너가기 위해 죽음의 탈출을 선택한 것이다. 2022년에만 이와 같은 난민보트 전복 사고는 몇 개월 간격으로 되풀이되었다. 베이루트 주재 정보국제연구센터 보고에 의하면 심각한 경제위기로 인해 이민자는 2020년 1만7712명에서 2021년 7만9134명으로 한 해 동안 450%가 증가했다. 레바논 국민들은 왜 죽음의 위험에도 불구하고 난민보트를 타고 대탈출 행렬을 감행하는 것인가? 중동의 진주로 불리던 아름다운 레바논 사회는 어떤 위기를 겪고 있는 것인가?
2019년부터 시작된 레바논의 경제위기는 코로나19 팬데믹, 2020년 베이루트항 폭발 사고, 우크라이나 전쟁 그리고 레바논 파운드의 끝도 없는 가치 추락으로 심각해졌다. 레바논 국내총생산(GDP)은 2018년 550억달러에서 2021년 205억달러로 50% 이상 하락했고, 국민의 80%가 빈곤층으로 전락했다. 레바논의 인플레이션은 세계적으로 높은 수치를 기록하고 있다.
2022년 여론조사 기관인 갤럽이 발표한 ‘글로벌 감정 보고서 2022’에 따르면, 레바논은 아프가니스탄에 이어 가장 부정적인 감정을 표출하는 행복하지 못한 국가로 선정되었다. 레바논인들은 ‘당신은 어제 분노의 감정을 느꼈나요?’라는 질문에 가장 높은 비율로 ‘그렇다’(49%)고 대답했다. 응답자의 절반가량이 분노의 나날을 보낸다고 답한 것이다. 이 보고서로 레바논 국민들이 겪고 있는 사회적, 경제적 압력과 제도적 실패에 대한 분노를 가늠해 볼 수 있다.
2020년 8월 베이루트의 항구 폭발은 레바논 국민들에게 크나큰 상처와 트라우마를 남겼다. 레바논 국민들은 이 사고에 대해 아무도 책임을 지지 않은 현실에 분노했다. 레바논의 열악한 환경과 높은 실업률에 지친 많은 젊은이와 숙련 노동자를 포함해 수백만명의 레바논인들이 조국을 떠나기로 결정한 것이다. 레바논 내 거주하는 시리아 난민들도 죽음을 각오한 탈출을 감행한다. 또한 레바논의 경제위기는 정치 혼란과 악순환의 고리를 끊지 못하고 있다. 종파주의로 인한 정치적, 사회적 혼란이 계속되면서, 마론파 기독교인들 중에서 선출되어야 할 대통령은 시아, 순니 이슬람과 기독교 종파로 나누어진 정당 간 합의를 이끌어내지 못하고 지난해 10월 이후 몇 개월 공백 상태에 있다.
레바논의 경제위기 문제는 곧 중동의 안보위기로도 이어질 수 있다. 레바논이 정치적, 경제적 혼란에 빠져 무장단체 헤즈볼라를 통제하지 못한다면 이스라엘도 결코 안전할 수 없다. 또한 친이란파 헤즈볼라의 시리아 아사드 정권에 대한 지원이 가능하면서 시리아 정치에도 큰 혼란을 줄 수 있다.
레바논의 젊은 세대들의 고민과 갈등을 다룬 다큐멘터리 <베이루트: 폭풍의 눈>에서 젊은 시위대들은 절규하며 외쳤다. “일어나라 베이루트! 국가는 강과 바다를 훔치고, 국민들을 바닷속에 던졌다!” 레바논과 시리아 난민 등 취약계층들이 더 이상 죽음의 바다를 건너지 않게 국제적인 관심과 인도적인 지원이 요구된다.
구기연 서울대 아시아연구소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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