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타냐후 ‘사법부 무력화’에… 대학생들 반정부 시위
이스라엘 보수 우파의 상징적 인물인 베냐민 네타냐후(74)가 작년 말 총리로서 여섯 번째 임기를 시작한 후 이스라엘 안팎에서 그를 둘러싼 논란이 커지고 있다. 네타냐후가 작년 11월 근본주의 유대교 정당, 이스라엘 극우 정당 등과 손잡고 총선에서 승리한 뒤 초강경 행보를 이어가자 이스라엘 시민들이 반발하고, 중동 및 국제사회에서도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16일(현지 시각) 이스라엘 전역의 수십 개 대학에서는 학생과 교수들이 강의실을 박차고 나와 사법부를 사실상 무력화하고 총리 권한을 강화하는 법안 철회를 요구하는 시위를 벌였다. 예루살렘포스트 등 현지 언론에 따르면, 이날 예루살렘 히브리 대학과 텔아비브 대학, 벤구리온 대학 등에서 수천 명의 학생과 교수들이 반정부 집회에 참석했다. 남부 네게브의 벤구리온 대학에서 집회를 주최한 ‘학생 저항’은 “의회 다수 의석을 무기로 폭압을 일삼는 정부를 멈춰 세워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스라엘에서 정부에 반대하는 대규모 학생 시위는 이례적이다.
지난 12일 야리브 레빈 법무부 장관이 발의한 법안의 요지는 권력 균형을 위해 사법부 권한을 축소한다는 것이다. 개정안에 따르면, 각급 법원 인사를 결정하는 사법 선출위원회 위원수를 9명에서 11명으로 확대하면서 장관급 각료 3명, 크네세트(의회) 의원 3명(야권 1명), 법무부 장관이 지명한 공익단체 대표 2명, 대법원 판사 3명으로 위원회를 구성하게 했다. 타임스오브이스라엘은 “정권이 최소 7명을 통제할 수 있는 상황에서 대법관 임명안 가결 정족수는 6명이라 사실상 여당이 대법관 인사를 손쉽게 주무를 수 있는 시스템”이라고 했다. 또한 대법원이 내린 위헌 결정을 의회가 과반 찬성으로 뒤집을 수 있게 했다. 크네세트는 120석 중 집권 우파 연합이 64석, 야권이 56석을 차지하고 있다. 네타냐후는 지난해 말 자신의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총리직에 다시 취임하면서 노욕(老慾)을 부린다는 비판이 나온다.
지난 14일엔 전국 주요 도시에서 10만명 이상의 시민이 네타냐후의 사법 무력화에 저항하는 대규모 시위를 벌였다. AP통신은 “시위 참가자들이 ‘민주주의의 종말’ ‘범죄 정부’ ‘우린 이란은 되지 않겠다’ 등의 구호가 적힌 플래카드를 들고 나왔다”고 전했다. 중도파인 베니 간츠 전 부총리는 “이스라엘의 민주주의와 법치를 지키기 위해 거리로 나오라”며 시민들의 시위 참여를 독려했다.
야권은 사법부의 독립성을 훼손하고 민주주의 근간을 흔드는 방안이라며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다. 야이르 라피드 전 총리는 “이것은 사법 개혁이 아니라 ‘정치적 쿠데타’”라고 비판했다. 에스더 하윳 이스라엘 대법원장은 “이번 개정안은 시민권을 침해하는 법이라도 의회가 원한다면 통과시킬 수 있도록 하는 ‘백지수표’와 같다”고 말했다. 야권에선 특히 이번 개정안이 네타냐후 정부가 사법권을 입맛대로 휘둘러 ‘셀프 면죄부’를 받기 위한 꼼수라고 주장한다. 네타냐후 총리는 현재 3건의 부패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다. 요르단강 서안의 유대인 정착촌 확장과 성 소수자 차별 등 논란에 휩싸인 정책을 강행하는 과정에서 사법부 견제를 받지 않겠다는 뜻도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뉴욕타임스는 “네타냐후 정권이 전례 없이 빠른 속도로 극우 의제를 실행에 옮기며 사회를 분열시키고 있다”고 했다.
지난달 의회 연설에서 “이란의 핵 프로그램을 좌절시키며, 이스라엘의 군사적 능력을 키우는 것이 최우선 과제”라며 “야당 의원들은 민주주의와 국가의 종말을 외치지만 선거에 졌다고 민주주의가 끝나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네타냐후의 거침없는 행보에 국제사회도 긴장하고 있다. 지난 2일 극우 성향의 이타마르 벤그비르 국가안보장관이 이슬람교의 3대 성지인 알아크사 사원이 있는 동예루살렘 방문을 강행하자 알아크사 사원 관리 권한을 가진 요르단이 자국 주재 이스라엘 대사를 초치하는 등 아랍권이 일제히 반발했다. 네타냐후가 이란 위협에 대항해 관계를 강화하려는 수니파 맹주 사우디아라비아는 물론 지난 2020년 ‘아브라함 협약’을 맺고 외교를 정상화한 UAE(아랍에미리트)도 비판 대열에 동참하며 중동 정세가 요동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은 이번 달 말 이스라엘을 방문해 네타냐후와 만나 팔레스타인 문제 등을 논의하며 현상 변경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전달할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지난달 “유대인 정착촌 확대와 요르단강 서안 병합 등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이 평화 공존하는) ‘두 국가 해법’ 전망을 훼손하는 정책에 반대한다”고 밝힌 바 있다.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58세 핵주먹’ 타이슨 패했지만…30살 어린 복서, 고개 숙였다
- 美검찰, ‘월가 마진콜 사태’ 한국계 투자가 빌 황에 징역 21년 구형
- 아이폰부터 클래식 공연, 피자까지… 수능마친 ‘수험생’ 잡기 총력전
- “사법부 흑역사…이재명과 함께 끝까지 싸울 것” 野 비상투쟁 돌입
- 방탄소년단 진의 저력, 신보 ‘해피’ 발매 첫날 84만장 팔려
- [부음]김동규 한신대학교 홍보팀장 빙모상
- 소아·청소년병원 입원 10명 중 9명, 폐렴 등 감염병
- “오 마이”… 린가드도 혀 내두른 수능 영어 문제, 뭐길래
- 목포대-순천대, ‘대학 통합·통합 의대 추진’ 합의...공동추진위 구성
- “이스라엘, 지난달 보복공습으로 이란 핵 기밀시설 파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