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현진의 돈과 세상] [106] 질투와 버블
질투에 빠지면 중요한 것을 못 본다. ‘질투는 나의 힘’이라는 시에서 시인 기형도는 “나의 생은 미친 듯이 사랑을 찾아 헤매었으나/ 단 한 번도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았노라”고 후회했다. 탈무드는 “질투는 천 개의 눈을 가지고 있지만, 하나도 올바로 보지 못한다”고 경고한다.
질투는 개인의 문제일 뿐만 아니라 국가의 문제가 될 수도 있다. 미국이 국채를 처음 발행할 때 가장 큰 장애물은 질투였다. 독립전쟁 시절 식민지 정부가 발행했던 임시 채권은 액면가의 20~25% 수준에서 거래되었는데, 헌법을 통해 새로 출범한 연방정부가 이를 새 국채로 교환해 주겠다고 발표했다. 그러자 값이 두 배로 뛰었다. 그것을 이미 팔아버린 사람들은 배가 아파서 국채 발행을 극렬히 반대했다.
비슷한 일이 우리나라에서도 일어났다. 한국전쟁이 끝난 뒤 재정을 건실하게 만들자는 의견과 산업 시설 복구를 위해서 재정 지출을 늘려야 한다는 의견이 팽팽하게 맞붙었다. 국채 발행의 자제냐 확대냐의 이 논쟁은 국채 가격의 등락과 직결된다. 매매 차익을 노리는 투기꾼들은 대한증권거래소(현재 한국거래소)에 몰려들어 미친 듯이 매매 주문을 넣었다. 당시에는 모든 거래가 월말에 정산되었고, 정산할 때까지는 돈과 채권이 없어도 무제한 매매 주문을 넣을 수 있었다. 소위 허수 거래였다. 국채 시장이 투전판으로 변했다.
좌고우면하던 정부가 재정 건실화 계획을 발표했다. 국채 가격은 폭등하고 그것을 이미 팔아버린 사람들은 배가 아파 그 정책을 반대했다. 결국 정부가 열흘 만에 방침을 뒤집었다. 이번에는 가격이 폭락하고, 허수로 주문을 냈던 매수자들이 집단 결제 불능 상태에 빠졌다.
1958년 1월 17일 정부는 거래소를 폐쇄하고 전날 체결된 국채 매매 계약 즉, 42억환의 거래는 전액 무효화되었다. 금융시장이 충격에 빠졌다. 대한민국 최초의 버블 붕괴 드라마는 국채가 주연, 질투가 조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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