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 "UAE 적은 이란" 발언 파문…野, '순방 리스크' 총공세
당사국도 입장 발표…野 '외교 무능' 국면 전환 시도
[더팩트ㅣ국회=박숙현 기자] 아랍에미리트(UAE)를 국빈 방문 중인 윤석열 대통령이 이번에도 '해외 순방 리스크'에 휩싸였다. 더불어민주당은 "나갈 때마다 말썽"이라며 윤 대통령 '외교 무능론'을 정조준했다. 외교 라인과 대통령실 책임론까지 제기했다. 여당은 윤 대통령 방어에 나섰지만 재차 불거진 순방 발언 논란에 난감한 분위기다. 당대표 사법리스크로 '방탄' 굴레에 갇힌 민주당이 이번을 기점으로 국면 전환에 나설 수 있을지 주목된다.
윤 대통령은 지난 14일부터 6박 8일간 UAE와 스위스를 방문하는 해외 순방길에 올랐다. 윤 대통령 취임 후 네 번째 순방이자 새해 첫 순방이다. 대통령실은 이번 순방을 두고 '경제 외교'에 초점을 맞췄다. 앞서 세 차례 순방에서의 논란을 의식하듯 사전에 리스크 관리하는 모습도 보였다. 대통령실은 지난해 11월 동남아 순방 때와 달리 이번에는 MBC 기자의 전용기 탑승을 배제하지 않기로 했다.
그러나 대통령의 '입'에서 논란이 또 불거졌다. 윤 대통령이 지난 15일(현지시간) UAE에 주둔 중인 아크부대 장병들을 만나 "UAE의 적은 가장 위협적인 국가는 '이란'이고, 우리 적은 '북한'"이라고 한 것이다. 민감한 외교 관계를 고려하지 않은 부적절한 발언이라는 지적이 이어졌다. 당사국인 이란도 이례적으로 입장을 밝혔다. 타스님통신에 따르면 나세르 카니니 이란 외무부 대변인은 지난 16일(현지시간) 윤 대통령 발언에 대해 "페르시아만 연안 국가들과 역사적이고 우호적인 관계를 맺고 있는 것은 물론, 이와 관련해 빠르게 진행 중인 긍정적 발전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다"면서 한국 정부의 설명을 기다리겠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현지에서 "우리 장병들을 격려하기 위한 그런 취지의 말씀이셨다"며 "UAE가 당면한 엄중한 안보 현실을 직시하면서 열심히 근무해라, 그런 취지에서 한 발언이고, 현재의 한-이란 관계와는 무관하다"고 해명했다.
외교부도 17일 정례브리핑에서 "UAE에서 임무 수행 중인 우리 장병들에게 최선을 다해 달라는 취지로 그런 격려 차원의 말씀이었다"며 "개별 국가와의 외교 관계는 별개이고, 우리 대통령께서 이란과의 관계에 대해 언급한 적은 없다. 이란과의 관계 발전에 대한 우리 정부의 의지는 변함이 없다"고 말했다. 외교부는 또 "우리 정부는 서울과 테헤란, 양측의 외교채널을 통해서 이란 측에 우리 입장을 명확하게 설명했다"며 "이란도 우리 발언의 취지를 잘 알고 있을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고 했다.
대통령실과 정부의 진화 노력에도 논란은 수그러들지 않았다. 야당은 윤 대통령의 해당 발언을 '외교 참사'라고 규정하고 거침없이 몰아 세웠다.
박홍근 민주당 원내대표는 이날 의원총회에서 "외국만 나가면 사고연속"이라며 "코리아 디스카운트도, 거듭된 외교 결례와 실수도 당사자는 모두 윤석열 대통령 자신"이라고 했다. 김성환 정책위의장은 "윤 대통령의 '적군' 한 마디가 양국 관계에 찬물을 끼얹었다"면서 "국제관계를 '적군 또는 아군'으로 접근하는 대통령의 이분법적 외교 인식은 대한민국의 안보와 국가 안전을 위험에 빠뜨린다"고 지적했다. 박성준 대변인은 논평을 통해 "더 이상 외교 참사를 초래하지 않으려면 이번에는 잘못을 분명히 인정하고 바로잡을 것을 약속하라"면서 윤 대통령에게 사과를 촉구했다.
현안 질의를 위해 열린 국회 외교통일위원회에서도 야당은 윤 대통령 발언에 대한 비판을 쏟아냈다.
직전 국회의장을 지낸 박병석 의원은 "참모라는 분들이 할 이야기를 해야 되는 것"이라고 당부했다. 박 의원은 "최종 대통령행사는 용산에서 하지 않나. 용산팀하고 터놓고 싸울 때는 싸워야 한다. '당신들 어떻게 모셨길래 나갈 때마다 말썽이냐. 외교부 이야기 좀 들어라' 그래야 한다"고 했다. 같은 당 김상희 의원도 "이런 외교 참사를 벌인 데는 대통령의 경솔함도 문제가 있지만 전적으로 대통령실과 외교부의 책임이 있다고 생각한다"며 외교 라인의 책임을 물었다. 윤호중 의원은 UAE에 주둔한 아크 부대가 전투 수행을 위해 간 게 아니라며 "격려 차원"이라는 정부 해명은 어불성설이라고 지적했다.
국민의힘은 엄호에 나섰다. 비상대책위원장인 정진석 의원은 "UAE 국민은 이란을 최대 위협 국가로 보고 있고 적대적 인식을 갖고 있다"면서 윤 대통령을 감쌌다. 태영호 의원은 "UAE 국민이 아니라 아크부대 장병들 앞에서 이 나라(UAE)가 이란을 최대 적으로 간주하고 있으니 UAE를 위해 일하고 있는 너희는 본연의 임무에 충실하라, 군 통수권자가 이 정도 발언은 할 수 있는 것"이라며 "이게 왜 외교참사가 되나. 이걸 가지고 오히려 국내에서 갈등을 만드는 게 오히려 한-이란 관계를 해하는 행위"라고 주장했다.
다만 여당 내에서도 윤 대통령 발언이 아쉽다는 분위기가 감지된다. 윤재옥 의원은 "(UAE 방문에서) 엄청난 외교적 성과를 냈는데 불필요하게 확대해석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했다. 또 앞서 지난해 6월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정상회의 순방 때 전용기 민간인 동행 논란이나, 지난 9월 영국·미국·캐나다 순방 때 '바이든-날리면' 발언 논란 때와 달리 국민의힘이 반박 논평을 내는 등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았다.
윤 대통령의 말뿐만 아니라 행동도 구설에 올랐다. 지난 15일(현지시간) UAE 아부다비 대통령궁에서 모하메드 빈 자이드 알 나흐얀 대통령이 주최한 환영 행사에 참석한 윤대통령이 UAE 국가가 울려 퍼질 때 가슴에 손을 얹은 채 '국가에 대한 경례' 자세를 유지한 것이다. 이는 처음이 아니다. 윤 대통령은 앞서 취임 직후인 지난해 5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방한 환영식 때도 미국 국가에 경례 자세를 취했고, 지난해 9월 캐나다 방문 중에도 캐나다 국가에 가슴을 올렸다.
이와 관련 논란이 일자 대통령실은 상대국에 대한 존중의 표시이며 의전상 결례가 아니라는 입장을 밝혀왔다. 외국 국기나 국가에 경례를 해선 안 된다는 명확한 조항은 없다는 것이다. 다만 이번 UAE의 경우 국가적 의례에서 국가 연주 때 경례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이번 윤 대통령 국빈 방문 환영식 때 영상을 보면 모하메드 대통령과 참모들은 자국 국가가 울려 퍼져도 가슴에 손을 얹지 않았다.
정치권에선 거대 양당이 설 연휴를 앞두고 밥상머리 민심 주도권 경쟁을 벌이고 있다고 본다. 여당은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대장동 의혹' 검찰 소환 통보, 김성태 전 쌍방울 그룹 회장 귀국 등으로 '사법 리스크' 총공세를 펼치고 있다. 이에 대해 민주당도 윤 대통령 발언을 키우면서 '순방 리스크'로 맞대응해 국면 전환을 노린다는 해석이다. 이란 정부가 공개적으로 반발한 만큼 외교 라인과 대통령실 경질론까지 밀어붙일 가능성도 있다. 민주당은 지난 9월 순방 논란에 대한 책임을 물어 박진 외교부 장관 해임건의안을 단독 가결시킨 바 있다.
unon89@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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