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우정 칼럼] 칠곡 할매와 신영복
세련된 위선보다 투박한 진실을,
부수는 사람보다 만드는 사람을 나는 응원한다
새벽 146번 버스를 타는 청소원들의 숙원 하나가 해결됐다. 승객의 출근길 편의를 위해 첫차 출발을 15분 앞당긴 일이다. 한덕수 총리가 새해 새벽 버스에 올라 해결을 약속한 지 보름 만에 실현됐다. 서울시, 버스회사, 운전기사의 협조가 있었다. 새벽 노동자들에겐 선물이었다. 그런데 노동자 정당이라는 정의당이 “정치 쇼 그만하라”라고 했다. “더 빨리 운행되는 버스를 타고 더 긴 노동을 하는 것은 기업의 바람”이라는 것이다. 호의를 착취로 읽었다. 아직 세상을 이렇게 보는 사람들이 있구나 싶었다.
새벽 버스는 정의당의 상징이다. 2012년 노회찬 의원의 ‘6411번 새벽 버스 투명 노동자’ 연설은 지금 들어도 뭉클하다. 이후 정의당은 ‘6411 정신’을 내세웠다. 그런데 10년 동안 노동자의 15분 숙원을 해결하지 못했다. 힘이 없어서 그런가 했는데 아니었다. 그들에게 15분 호의는 노동을 더 뽑아내려는 자본주의의 당근이다. 세계관이 이러니 정의당엔 재벌 해체, 노동 해방처럼 뜬구름 잡는 구호만 넘친다. 그러면서 실질적으로 돕는 사람을 비난한다.
외교부가 징용 판결 문제를 풀기 위해 해법 일부를 발표하자 민주당이 성토 대회를 열었다. “저자세 굴종 외교.” “자해적, 반민족적, 반역사적 외교.” “일본을 위해 간도, 쓸개도 다 내줄 수 있다는 자세.” “국익과 동떨어진 무면허 폭주.” 모두 이재명 대표에게서 나온 말이다. 해법은 일본과 대결해서 이기자는 게 전부였다.
한일 과거사에 대한 논의 과정을 보면 한국 정치의 본질 일부를 알 수 있다. 보수·진보는 철 지난 구분에 불과하다. 미래를 만드는 자와 부수는 자의 대결이 한국 정치의 본질이 아닐까 한다.
한일 국교 정상화 때 박정희 정부는 유무상 5억 달러를 일본으로부터 받아냈다. 고도성장의 출발점이었다. 노태우 정부는 별도의 일본 자금을 받아 한인 원폭 피해자 지원과 사할린 잔류 한인의 영구 귀국 사업을 시작했다. 김영삼 정부는 일본의 위안부 사죄를 담은 고노담화를 이끌었다. 그런데 김대중 정부는 이들 문제에 침묵했다. 차라리 이 편이 나을 수도 있다. 노무현 정부는 “해결되지 않았다”며 이들 문제를 원점으로 돌렸다. 그런데 말만 하고 해결을 위해 노력하지 않다가 위안부 피해자들에게 소송을 당했다.
이 짐을 이명박 정부가 떠안았다. 일본과 해법을 모색했으나 실패했다. 박근혜 정부가 이룬 ‘한일 위안부 합의’는 노 정부가 물려준 난제를 해결한 것이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는 갖은 악담을 퍼붓고 합의를 깼다. 징용 판결 문제는 죽창가를 부르면서 국내 정치에 이용했을 뿐이다. 이 짐을 윤석열 정부가 물려받아 ‘대리 보상’이라는 해법 일부를 냈다. 이번에도 똑같은 반응이다. 다시 망치 들고 달려들었다. 이 패턴이 끝없이 반복된다.
노동·교육·연금 개혁은 젊은 세대를 위한 것이다. 한국이 존속하기 위해 필요하다. 그런데 문 정권은 손대지 않았다. 민노총, 전교조, 사교육 시장 등 자신의 지지 기반이 개혁 대상이기 때문일 것이다. 표가 떨어진다고 연금 개혁을 안 한 유일한 정권도 그들이다. 윤 정부가 짐을 떠맡으려고 하자 다시 이재명 대표는 “일방적이고 폭력적인 국정”이라고 했다.
문 정권 때 ‘정부 서체’처럼 쓰인 글씨가 신영복체다. 신영복의 유명한 문장이 있다. ‘돕는다는 것은 우산을 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함께 비를 맞는 것입니다.’ 15분 당긴 첫차, 징용 해법을 그가 말한 ‘우산’에 비유할 수 있다. 그래선 안 된다고 한다. 함께 비를 맞아야 진정한 도움이라고 한다. 말뿐이다. 과문한 탓인지 ‘6411 정신’을 말하는 정의당 의원들이 버스나 지하철로 출퇴근한다는 얘기를 듣지 못했다. 민주당은 대리 보상을 바라는 다수 징용 피해자를 무시한다. 전장연에게 당하는 수십만 지하철 출근 노동자의 손실과 불편, 분노를 외면한다. 무슨 비를 함께 맞았다는 것인가.
요즘 신영복체처럼 유명해진 서체가 칠곡 할매체다. 경북 칠곡군 성인문해교실에서 뒤늦게 한글을 깨친 어르신들 글씨로 만들었다고 한다. 이들이 낸 시집 ‘시가 뭐고?’는 늦공부의 고충을 말한다. ‘80 너머가 공부할라카이/ 보고 도라서이 이자부고/ 눈 뜨만 이자분다.(공부·곽두조)’ 문해교실은 할매들에게 ‘우산’이었을 것이다. 신영복 문장에 나오는 ‘비’에 관한 시도 있다. ‘비가 쏟아져 오면 좋겠다/ 풍년이 와야지대겠다/ 졸졸 와야지/ 고구마, 고추, 콩, 도라지/ 그래야 생산이 나지.(비가 와야대겠다·김말순)’ 세계관이 다르면 비의 의미도 달라진다.
상징으로서 칠곡 할매와 신영복은 신구 시대의 성격을 선명하게 대비한다. 세련된 위선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나는 투박한 진실에 박수를 보낸다. 함께 비를 맞겠다는 사람보다 우산을 들어주는 사람, 부수는 사람보다 만드는 사람, 비난하는 사람보다 노력하는 사람을 응원한다. 그런 이들이 미래 한국의 주역이 됐으면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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