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서나 보던 돈거래 기자들, 눈 앞 현실로 보게 되다니…"
한겨레, 한국일보, 중앙일보 등 주요 종합일간지 편집국 간부들이 ‘대장동 의혹’ 핵심 인물인 김만배씨와 수억원대 금전거래를 했다는 사실이 보도를 통해 알려진 지 2주가 지났다. 그사이 각 언론사는 해당 간부를 해고하거나 사표를 수리하고 사과문을 발표하는 등 후속 조치를 했지만, 기자사회가 체감하는 충격은 여전하다. 이번 사태로 더욱 거세진 기자에 대한 불신과 비난은 취재 현장에 있는 저연차 기자들에게 뼈아픈 화살이 되고 있다.
“김만배 돈거래 기자들, 대장동 떠오른 직후 시인했거나 비보도 부서 자원했어야”
기자협회보는 ‘김만배 돈거래’ 사건을 지켜본 10년차 이하 젊은 기자들의 시각을 물었다. 근래에 기자 개인의 금품수수 의혹이 발각된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 2021년 중견 언론인들이 자칭 수산업자 김모씨가 건넨 금품을 받은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이른바 ‘가짜 수산업자 사건’ 등도 있었다. 다만 저연차 기자들은 김만배 돈거래 사건의 경우 드러난 액수만 9억원에 달하는 데다, 2019~2020년에 이뤄진 거래 시기 등에 비춰 기자윤리 측면에서 심각하면서도 또 이례적이라는 반응이었다.
방송사 7년차 A 기자는 “영화나 드라마에서 사회적 병폐 집단으로 그려진 기자사회가 내 눈앞에 벌어지고 있어 충격받았고 창피했다”고 말했다. 당사자들은 김씨와 동료 기자 사이일 때 정상적인 거래를 했다고 주장하지만, A 기자는 “김씨가 이미 대장동 사업에 직접 관여하고 있었고 누가 봐도 비정상적인 거래 방식”이라는 점에서 단순히 사인 간의 거래로만 볼 수 없다고 지적했다.
주간지 6년차 B 기자는 “보수, 진보 매체를 가리지 않고 언론사 기자들과 자금거래를 한 걸 보고 김씨는 정말 ‘사업꾼’이다 싶었다”며 “각각의 언론사를 자기편이라 여기던 독자들도 기자 전체에 실망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사건으로 비난의 화살은 기자 전반 또는 법조 기자에게 쏠린다. 하지만, 특히 2016년 청탁금지법 시행 이후 입사한 저연차들은 취재 문화나 언론 환경, 기자들에 대한 인식 등이 사건 당사자들이 현장에 있었던 과거와 분명한 차이가 있다고 했다.
방송사 법조팀에서 근무하는 C 기자는 “여전히 과거 취재문화를 호시절처럼 얘기하는 선배들이 있긴 하다. 하지만 청탁금지법 시행 이후 입사한 저희는 관련 교육을 많이 받아서 의식적으로 주고받는 관행을 피하려 한다”며 “가뜩이나 기자라는 직업 자체의 위상이 깎였는데 이런 일이 반복돼 전체 업계의 사기도 떨어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종합일간지 8년차 D 기자는 “돈으로 기사를 막을 수 있다는 생각도 이제는 비현실적”이라고 말했다. 그는 “만약 내가 쓴 기사가 막혔다고 해도 다른 매체가 다 쓰는 세상”이라며 “지금도 취재원에게 비싼 밥을 얻어먹고 골프 접대를 받는 분들도 있겠지만 저희에겐 더 이상 받아들여지지 않는 일”이라고 했다.
직접적인 돈거래 외에도 김씨가 골프 접대 등을 통해 언론인 수십 명에게 한 사람당 100만원에서 수백만원을 건넨 정황이 추가로 드러난 상황이다. 이번 사태가 반복되지 않으려면 지금까지 당연시해 온 출입처 문화, 취재 관행 문제부터 고쳐나가야 한다는 의견도 적지 않다.
B 기자는 “한두 명이 받았다면 특이한 케이스일 수 있는데 수십 명이 받았다는 건 그런 문화가 만연해있다는 것”이라며 “1~2년차에는 당연히 제안도 없겠지만 6~7년차만 돼도 선배나 동료가 저러는 모습들이 가랑비 젖는 듯 익숙해질 수 있다”고 말했다. C 기자도 “경제부나 산업부 등에서 기업 홍보팀한테 대접받는 걸 자랑하듯 이야기하는 건 부적절하다. 기자 스스로 위상을 떨어뜨리는 일”이라며 “받는 게 당연한 게 되면 별거 아니라고 생각해 안일하게 대처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번 사태에서 저연차 기자들이 가장 크게 지적한 점은 2021년 9월 대장동 의혹이 드러난 뒤에도 당사자들이 김씨와의 돈거래 사실을 회사에 알리지 않은 채 뉴스룸에서 주요 보직을 맡아왔다는 것이다. 기자라는 직무를 망각한, 개인의 윤리 의식 부재는 이번 사건이 일어난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A 기자는 “대장동 사건에서 김만배라는 이름이 나온 이후에도 부서장, 부문장, 에디터 같은 자리에 있었던 사람은 변명의 여지가 없다고 본다”며 “대장동 사건이 떠오른 직후 돈거래를 했다고 시인하거나, 하다못해 비보도 부서로 자원했어야 한다”고 말했다.
법조를 담당했던 경제지 E 기자는 “기자 출신이 기업 홍보와 같은 다른 직군으로 가면 누구보다 기자에게 접근하기 쉽고 또 기자들은 기자 출신에게 마음이 약해지는 것도 사실”이라며 “그런 관계에서 기자가 비리의 대상이 되기 쉬웠다고 본다”고 말했다.
기자 해고, 사과문 발표 등 언론사들의 발 빠른 후속 조치를 두고 저연차 기자들은 대체로 긍정적이라고 평가했다. 어떤 집단이든 개인의 일탈을 완벽하게 막을 수 없겠지만, 엄격한 사후 조치로 “모든 걸 잃게 될 수 있다”는 모습을 보여주는 게 “시민들을 향해 기자사회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도리”라는 의견이었다.
해고나 사표 수리로 표면적인 조치는 이뤄졌지만, 기자사회와 해당 언론사에 남긴 상처가 봉합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돈거래 당사자가 속한 언론사의 한 기자는 “해고나 국장, 대표이사 사퇴 등은 해결방안을 모색하는 길의 아주 작은 시작일 뿐”이라고 말했다. 이어 “창간할 때의 초심으로 되돌아가 기본부터 하나하나 살피고 취재 윤리를 기자들이 몸으로 체화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며 “단기간에 끝나긴 어려울 거라고 생각한다. 모두가 상처받았으니 서로 잘 보듬으며 함께 머리를 맞댔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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