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의눈] 기준금리 올랐는데 대출금리 인하 왜?
금융당국 인상 자제 압박 먹혀
일각 ‘한은 통화정책 무력화’ 우려
뭐든 지나친 개입은 독 될 수 있어
최근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3.5%로 종전보다 0.25%포인트 또 올렸다. 7차례 연속 인상이다. 주택담보대출(주담대) 등을 최대한 활용해 자산을 사들인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음)족’에게는 숨이 턱 막힐 만한 소식이다. 기준금리가 오르면 대출금리도 오르는 게 ‘상식’이니까.
시중 은행들은 17일부터 신규 주담대 변동금리에 이번에 공개된 코픽스 금리를 반영한다. KB국민은행의 경우 주담대 신규 코픽스 기준 변동금리가 기존 5.78∼7.48%에서 5.73∼7.43%로 낮아진다. 전세자금대출 금리도 그만큼 떨어진다. 다른 은행도 상황은 비슷하다.
통상 기준금리가 오르면 대출금리도 상승하는데, 이번에는 왜 다를까.
지난해 11월24일로 거슬러 올라가 보자.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그날 “수신(예·적금) 금리 과당 경쟁에 따른 ‘역머니무브 현상’이 최소화되도록 관리 감독을 강화해달라”고 말했다. 역머니무브 현상은 시중자금이 은행 예금 등 안전자산으로 몰리는 것을 말한다. 다음 날 김주현 금융위원장도 “금융권의 과도한 자금 확보 경쟁은 금융시장 안정에 교란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어 자제할 필요가 있다”고 거들었다. 이들이 수신금리 인상을 자제하라고 금융권을 압박한 것은 자금 쏠림 현상과 주담대 금리 급등의 원인이라고 봤기 때문이다.
지난해 10월까지만 해도 한은이 기준금리를 올릴 때마다 시중 은행들은 당일 수신금리 인상을 발표했으나, 두 금융 당국 수장의 압박 이후 태도가 바뀌었다. 은행들은 금융 당국 요구대로 예·적금 금리는 올리지 않았고, 이미 치솟은 대출금리는 그대로 뒀다. 예대(예금과 대출)금리차로 인한 수익은 더 커졌다. 서민은 대출 이자 부담으로 고통받고 있는데 은행만 배를 불리고 있다는 비난이 쏟아지는 것은 불 보듯 뻔했다.
그러자 이번에는 금융 당국과 정치권이 대출금리 인하 압박에 나섰다. 이 금감원장은 지난 10일 임원회의에서 “금리 상승기에 은행이 시장 금리 수준, 차주 신용도 등에 비춰 대출금리를 과도하게 올리는 일이 없도록 은행의 금리 산정·운영 실태를 지속해서 점검·모니터링해달라”고 주문했다. 이틀 뒤 국민의힘 주호영 원내대표는 금융 당국에 “서민들이 예대 이율 차이로 고통을 겪는 일이 없도록 합리적인 예대 이율을 설정해주실 것을 부탁드린다”며 압박의 강도를 높였다. 시중 은행들은 기준금리 발표나 코픽스 발표 전부터 하나둘 대출금리를 내렸다.
그동안의 흐름을 보면 금융 당국의 압박이 제대로 먹혀들고 있는 듯하다. 영끌족은 대출금리가 낮아지기만 한다면 대환영일 듯하다. 그런데 부작용은 없을까.
한은은 물가 안정을 중요한 목표로 삼고 있다. 지금은 목표치인 2%를 확실하게 웃도는 ‘고물가’ 시대다. 한은은 기준금리 조정을 통해 통화량을 조절한다. 그런데 기준금리를 올려도 금융권 금리가 예상대로 움직이지 않는다면 정책 의도를 달성할 수 없다. “기준금리 조정을 통한 통화정책이 무용지물이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시장은 균형을 찾아 스스로 움직인다는 말이 있다. 물론 과도한 쏠림이 나타날 때는 인위적인 개입이 필요할 수도 있다. 정부의 역할이기도 하다. 하지만 뭐든 지나치면 독이 될 수 있다.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을 보니 시장을 통한 재화나 용역의 거래를 중심으로 해 성립하는 경제는 ‘시장경제’, 한 나라의 경제 전체 부문이 국가의 의사에 따라 통일적·계획적으로 움직이는 구조는 ‘계획경제’라고 정의돼 있다. 지금 우리나라 경제는 어느 쪽에 가까울까.
우상규 경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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