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미희의동행]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다

2023. 1. 17. 2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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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는 한 젊은 친구는 올해도 자신의 꿈을 이루지 못했다.

십 년이면 강산이 변할 시간이고, 어떤 일에 일가를 이룰 시간인데 그 친구는 십 년 가까운 시간을 공부에만 매달리며 아쉽게 흘려보내버린 것이다.

그 모든 노력이 무위로 돌아가 버린 지금 누구보다 속상할 사람은 그 친구일 것이다.

그 친구가 약사가 되지 않아도 세상은 돌아가고 그 친구의 삶도 어떤 식으로든 흘러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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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는 한 젊은 친구는 올해도 자신의 꿈을 이루지 못했다. 시험에 낙방한 것이다. 대학을 졸업하고 좀 더 나은 평생 직업을 가져보겠다고 그 친구는 몇 년째 공부에만 매달렸다. 약학전문대학원 이야기다. 하지만 그 친구는 번번이 실패했고, 풀 죽은 얼굴로 다음 해를 기약했다. 다시 한 번 더 도전해보겠다는 그 친구의 말에 해줄 것은 격려밖에 없었다. 대체나 그동안 들인 시간과 노력이 아쉽기도 했고, 또 그 친구가 설계한 자신의 미래에 타인이 간섭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심으로는 다시 내년을 기약하는 그 친구가 답답하기도 했다.

기실 그 친구는 약학전문대학원만이 아니었다. 지방에서는 그래도 명문에 속한다는 대학교에 다닐 때에도 휴학계를 내고 의대 진학을 위해 다시 교과서와 참고서를 펴들었다. 그렇게 두 해를 수능 준비에 청춘의 시간을 바쳤다. 그때도 지금처럼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했다. 그 친구가 ‘더 좋은 직업’을 갖기 위해 들인 세월을 계산해보면 초·중·고 정규과정 외에도 팔 년을 꼬박 대학 입시에 매달린 셈이었다. 십 년이면 강산이 변할 시간이고, 어떤 일에 일가를 이룰 시간인데 그 친구는 십 년 가까운 시간을 공부에만 매달리며 아쉽게 흘려보내버린 것이다. 그 모든 노력이 무위로 돌아가 버린 지금 누구보다 속상할 사람은 그 친구일 것이다. 큰 점수 차로 떨어졌더라면 일찌감치 포기라도 했을 텐데 늘 아슬아슬하게 떨어지다 보니 얼른 마음을 접기가 아쉬웠던 모양이다.

이제 그 친구는 뭘 할까. 공부만 하느라 할 줄 아는 게 아무것도 없는데. 자신감마저 사라져버린 그 친구를 보는 일은 참 안타깝고 안쓰럽기만 하다. 그러나 이제부터 다시 자신의 인생을 설계하고 꿈을 꾸어야 할 것이다. 나는 행여 그 친구가 모든 것에 의욕을 잃고 자포자기할까 봐 조심스럽게 전화를 걸었다. 일부러 어투도 씩씩하게 꾸몄다. “풀 죽을 거 없어. 인생은 새옹지마야. 이 실패가 어떤 식으로 네 삶을 이끌어갈지 몰라. 그러니 미래에 대한 기대를 잃지 말고 열심히 살아봐. 넌 아직 젊으니까 많은 기회가 남아 있어”라고.

정말, 젊은이의 미래는 알 수 없다. 다가올 그 시간에 뭐가 들어있을지 누가 알 수 있을까. 그 친구가 약사가 되지 않아도 세상은 돌아가고 그 친구의 삶도 어떤 식으로든 흘러갈 것이다. 세상에 약사만 있다면 그 사회는 건강하지 못하다. 자동차 부품을 조립할 누군가도 필요하고, 농부도 필요하고, 거리를 청소할 사람도 필요하다. 어디든, 어느 곳이든, 어떤 자리든, 자신이 있는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다 보면 언젠가는 한세상을 만날 수도 있을 것이다. 혹 시험에 떨어져 시름에 잠겨 있는 이들이 있다면 그 친구에게 했던 말을 들려주고 싶다. 출발이 조금 늦었을 뿐이니 너무 상심하지 말라고.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다고. 그러니 다시 꿈을 꾸라고.

은미희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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