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고미술품의 아름다움 더불어 즐기고자 공개했어요”

김경애 2023. 1. 17. 2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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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짬][짬] 삼세영미술관 이규성 관장

이규성 삼세영미술관장이 지난 5일 상설 전시장에서 2000년 첫 수집한 고가구인 통영산 농을 소개하고 있다. 김경애 기자

‘자문밖’으로 불리는 서울 평창동·부암동·구기동 일대에는 미술관·갤러리 등 예술 관련 시설이 70개를 넘어 예술인마을로 손꼽힌다. 가나아트센터, 토탈미술관, 김환기미술관, 김종영미술관, 영인문학관 등 명소들도 많다. 하지만 개인 컬렉터들이 소유한 소규모 미술관이 대부분이어서 상설 전시나 공연을 하는 곳은 그리 많지 않다. 그런 가운데 평창동의 한 신생 미술관이 고미술품 상설전을 비롯해 신진 작가 공모전, 음악회 등 다양한 행사를 열어 애호가들의 발길을 끌어모으고 있다.

“개인적인 취미로 20여 년 전부터 우리 고미술품들을 모으기 시작했는데 볼수록 아름다워 더불어 함께 공유하고 싶어 공간을 마련했어요. ‘그때, 지금, 그리고 영원히’(과거·현재·미래) 삼세의 아름다움이 어우러져(영) 이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 미술관 이름도 직접 지었죠.”

삼세영미술관 이규성 관장의 얘기다. 본업은 에이비씨(ABC)무역 대표이사인 그의 남다른 예술 사랑을 새해 초 전시장을 함께 둘러보며 들어봤다.

정밀측정장비 전문 ABDC무역 창업주
2000년초 우연히 고가구에 끌려 수집
“점차 소박한 고려·조선 도자기 집중”
평창동에 미술관 마련해 150여점 공유

개관 1돌 상설전 ‘김원교 여백의 꿈’
신진작가 공모전·공연 등 문화공간

이규성 삼세영미술관장이 지난 1월5일 상설전시장을 배경으로 개관 1돌 기념 ‘단아한 백자전-여백의 꿈’을 소개하고 있다. 김경애 기자

“2000년 초반 우연히 티브이에서 한·일 고가구를 비교하는 다큐 프로그램을 보고 ‘우리 것의 아름다움’에 눈을 떴어요. 곧바로 아내와 함께 답십리 고가구거리를 둘러보러 갔다가 통영산 농 2개를 구입한 게 첫 수집이었어요.”

그의 말대로, 그때까지 그는 고미술품이나 예술과는 거리가 먼 이력을 지녔다. 서울에서 태어나 넉넉치 않은 집안에서 자란 그는 부친의 권유대로 취직이 보장된 이공계를 전공했다. 1988년 미국 정밀계측장비업체 대리점으로 에이비씨무역을 설립했고,1994년부터는 독일의 전문업체 헤드 어쿠스틱스(HEAD acoustics GmbH)와 독점 계약을 맺었다. “환경 관련 규제가 날로 엄격해지면서 국내 자동차, 전자, 중공업, 조선 등의 산업체를 비롯 학계, 연구소 등 전 분야에 소음진동·분진·유체분야의 최첨단 측정장비를 공급하게 됐어요. 초미세먼지 측정기가 대표적이죠.”

창업 20여년 만에 ‘알짜기업’을 키운 그는 2012년 서울 역삼동에 신사옥을 짓고, 2016년 헤드 어쿠스틱스 코리아로 별도 법인도 설립하는 등 착실한 사업기반을 다져왔다.

“무역회사이다보니 세계 여러나라로 출장도 자주 가고 외국 기업인들을 초대해 접대를 할 때도 많아요. 그럴 때마다 사업을 넘어 우리나라 문화를 제대로 알려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시간 날 때마다 답십리와 장안평 일대를 둘러보고 좋은 전시를 찾아다니며 고미술에 대한 공부를 하게 됐어요.”

집안 대대로 물려받거나 전공도 하지 않은 ‘독학파’인 그의 눈에는 기존의 고가 명품보다는 작고 소박한 도자기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요즘 달항아리가 인기 좋지만, 청아한 고려 청자나 묵묵한 분청사기, 단아한 백자 연적이나 청화백자에 더 끌려요. 소장품 중에는 억대 분청도 있긴 하지만, 일본 오사카에서 구입한 고려백자 국화문과 번개문 술잔 2개를 가장 ‘애정’하죠.”

작은 도자기들은 상대적으로 운반도 간편하고 공간도 덜 차지하는 잇점도 있었다. “그래도 20년쯤 쌓이니 150점이나 됐어요.”

‘미술관 건립 프로젝트’는 아들이 결혼해 같이 살면서 정원이 있는 단독주택을 찾아 2009년께 평창동으로 이사를 오면서부터 구상했다. 처음부터 함께 수집을 해온 부인 김애희 부관장의 ‘결단’이 큰 힘이 됐다. “외가인 제주에서 예총 회장을 맡고 있는 김선영 서예가가 큰언니여서, 그 영향으로 어릴 때부터 우리 옛 것에 익숙했어요. 수집품들이 늘어나니 집 안에 두기보다는 별도의 공간을 마련해 제대로 보관하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이처럼 부인의 동의를 얻어낸 이 관장은 수년동안 자문밖 일대의 땅을 샅샅히 뒤진 끝에 마땅한 터를 찾아낼 수 있었다. “모퉁이를 낀 자투리 터에 자리한 낡은 집이어서 언뜻 보기엔 좁고 답답했는데, 헐고 보니 높다란 바위벽과 낙낙장송들이 뒷편에 숨어 있었죠. 선정릉의 자연을 고스란히 품도록 신사옥을 설계해준 장영철 건축가(와이즈건축) 덕분에 미술관에도 자연경관을 최대한 살리면서 소장품 상설전시장과 다목적 문화공간을 모두 마련할 수 있었어요.”

지난 1월5일 삼세영미술관 개관 1돌 기념 ‘단아한 백자전-여백의 꿈’ 콜라보 전시 포스터 앞에서 이규성 관장, 한국화가 김원교 작가, 김애희 부관장이 함께했다. 김경애 기자
삼세영미술관 상설전시장에 이규성 관장의 소장품인 갖가지 모양의 연적에 맞춰 그린 김원교 작가의 먹그림이 함께 전시되어 있다. 김경애 기자
삼세영미술관은 지난 2022년 12월 말 다목적 공간에서 개관 1돌 기념 음악회 ‘이방인의 노래’ 공연을 열었다. 김경애 기자

실제로 소장품 상설전시장에서는 오는 4월까지 <단아한 백자전>이 열리고, 다목적 공간에서는 지난 연말 송년 음악회에 이어 올해도 현대미술작가 공모전 선정 작가들의 전시와 건축 강연, 분기별로 지역주민들과 함께하는 마켓 등 다양한 문화 행사를 진행할 예정이다. 특히 ‘여백의 꿈-김원교의 먹그림과 함께'를 주제로한 상설전은 소장품 가운데 조선의 대표적인 백자들을 보고 김 작가가 창작한 한국화 11점을 선보이는 콜라보로 기획력이 돋보인다. 젊은 작가들에게 전시 기회를 주고자 마련한 공모전에서는 사내 큐레이터 3명과 외부 전문가 2명으로 구성된 선정위원회에서 개인전(강덕현·장영은)과 단체전(김도윤·최산호·제이 리) 작가를 뽑았다.

“어쩌면 중학교 때까지 살던 청량리의 집이 한옥이어서 내 유전자 안에 전통적인 미감이 깃들어 있지 싶어요. 앞으로 외국의 세계적인 갤러리나 박물관과 교류전도 하고 싶고, 한옥 미술관을 멋지게 지어 외국인들이 찾아오는 명소도 만들고 싶고…자꾸 새로운 꿈이 생기네요.”

독실한 기독교인이기도한 이 관장은 “우선은 삼세영미술관을 누구나 부담없이 찾아와 예술품을 즐기며 재미와 휴식과 치유를 경험할 수 있는 공간으로 가꾸겠다”고 약속했다.

김경애 기자 ccandor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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