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6년 ‘파독 간호사 첫 주선’ 재독 이수길 박사 별세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1960년대 간호사 파독의 물꼬를 튼 이수길 박사가 지난 13일(현지시각) 오전 2시 독일 마인츠 자택에서 세상을 떠났다고 유족이 17일 전했다.
소아과와 방사선과 전문의로 독일 국립 대학병원에서 일하다 1974년 마인츠에 소아과 의원을 개업했다.
고인은 1965년 4월 마인츠와 프랑크푸르트의 10여개 병원에 편지를 보내 한국 간호사들의 독일 취업을 타진한 뒤 한국 보건사회부와 협의 끝에 1966년 1월 파독 간호사 1진 128명이 프랑크푸르트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1959년 독일 유학…마인츠에서 개업
현지 병원마다 편지 보내 ‘취업’ 타진
‘동베를린 사건’ 얽혀 혹독한 고문도
1960년대 간호사 파독의 물꼬를 튼 이수길 박사가 지난 13일(현지시각) 오전 2시 독일 마인츠 자택에서 세상을 떠났다고 유족이 17일 전했다. 향년 94.
함남 북청에서 태어난 고인은 3살 때 소아마비에 걸려 왼쪽 다리 장애를 얻었다. 1950년 원산의학전문학교를 졸업한 뒤 한국전쟁 때 월남했고, 1955년 서울에서 ‘이수길 의원'을 운영하다 1959년 독일로 유학을 떠났다. 소아과와 방사선과 전문의로 독일 국립 대학병원에서 일하다 1974년 마인츠에 소아과 의원을 개업했다. 1963년 일본 도호쿠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고인은 1965년 4월 마인츠와 프랑크푸르트의 10여개 병원에 편지를 보내 한국 간호사들의 독일 취업을 타진한 뒤 한국 보건사회부와 협의 끝에 1966년 1월 파독 간호사 1진 128명이 프랑크푸르트에 도착할 수 있었다. 1993년 12월 파독 광원 3년 뒤였다. 이후 1969∼76년 정부 차원에서 파견에 나서 총 1만564명의 간호사가 독일에서 일했다.
하지만 1967년 6월 중앙정보부의 ‘동베를린 간첩단 사건'에 얽혀 국내로 끌려와 혹독한 고문을 받았던 고인은 독일 언론과 사회단체들의 석방운동 끝에 무혐의로 풀려났다. 1971년 온가족 독일 국적으로 바꾼 뒤에야 다시 고국을 오갈 수 있었다. 그는 2006년 귀국해 기자회견을 열고 김형욱 전 중정 부장에 의한 동베를린 사건 조작 사실 등 진상규명과 언론의 공정보도를 촉구하기도 했다.
그는 1973년부터 한국 심장기형 아동의 수술을 지원하는 운동을 벌이고 한국소아마비협회 창립 초대회장, 한독협회 창립 등 한·독교류에 헌신해 2018년 독일 연방정부가 주는 최고공로상을 받았다.
저서로 회고록 <한강과 라인강 위에 무지개다리를 놓다>(1997)와 자서전 <개천에서 나온 용>(2021년) 등이 있다.
최형우 전 내무부장관의 사돈이다. 유족은 부인 이영자씨와 사이에 지숙(의사)·원진(사업)·원철(의사)·지혜씨 등이 있다. 오는 26일 프랑크푸르트한인성당에서 영결 미사를 거쳐 오후 2시 마인츠시립 중앙공원묘지에 안장될 예정이다.
김경애 기자, 연합뉴스 ccandori@hani.co.kr
Copyright © 한겨레신문사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 박지원, 윤 대통령 ‘UAE-이란’ 발언에 “아무것도 모르고 큰 소리”
- 이재명 또 소환에 한동훈은 여론전…민주당, ‘김건희 특검’ 맞불
- ‘알 수 없음’ 뜬 그리운 내 가족…프로필로도 10년간 “기억할게”
- 정진석 “나경원, 해임 받아들여야…대통령 결부 말고 계획 밝혀라”
- 코레일 증원은 않고 ‘3조2교대’ 되돌린다는 정부…안전 역주행
- 나경원에 철벽 친 대통령실…‘친윤’ 부각 안간힘에도 공개반박
- 시무식서 ‘찬송가’ 부른 공수처장 사과…조계종 “사퇴하라”
- ‘이란=UAE의 적’ 윤 대통령 발언 외교문제로…정부, 해명에 진땀
- 이태원서 떠난 27살 대학 새내기…장례식에 친구만 600명
- 김성태 귀국…‘이재명 변호사비 대납 의혹’ 수사 속도 낼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