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서형 "父 죽음 떠올라…머리부터 발끝까지 에너지 다 끌어모아 소진해 연기"('오매라')[TEN인터뷰]
"쥐어짜서 한 번에 연기"
"멘탈 관리 방법 따로 없어…난 가끔 너무 한량 같아"
추억이 담긴 음식은 "어머니가 만들어준 카스텔라"
[텐아시아=김지원 기자]
"'봇물 터지듯 자극적 작품들이 쏟아지는 요즘, 이런 숨 쉴 수 있게 하는 드라마가 있어?' 싶었어요."
시한부 선고를 받은 워킹맘이 가족들과 이별의 순간을 즐겁게 준비한다. 이혼 위기까지 갔던 남편과의 관계도 회복된다. 왓챠 시리즈 '오늘은 좀 매울지도 몰라'에 출연한 배우 김서형은 이번 드라마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17일 서울 신사동의 한 카페에서 왓챠 '오늘은 좀 매울지도 몰라'(이하 '오매라')에 출연한 배우 김서형을 만났다. '오늘은 좀 매울지도 몰라'는 대장암 선고를 받고 한 끼 식사가 소중해진 아내를 위해 서투르지만 정성 가득 음식 만들기에 도전하는 남편과, 그의 가족의 이야기를 그린 휴먼 드라마. 김서형은 출판사 대표이자 말기 암을 선고받고 삶의 끝자락을 준비하는 다정 역을 맡았다. 한석규가 연기한 창욱은 살면서 단 한 번도 음식을 해본 적이 없지만 아픈 아내를 위해 좋은 식재료로 건강 레시피의 음식을 하는 인물이다.
극 중 시한부 캐릭터를 연기하며 핼쑥한 얼굴을 보여준 김서형은 "만나면 다들 살이 많이 빠졌다고는 하는데, 똑같았다. 시한부라서 살을 안 빼거나 덜 빼거나 빼거나 그런 건 아니었다. 작품이 시작되면 몰입이 되고 고민과 생각이 많아져서 자연스럽게 그런 것들이 드러난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살이 빠져서 빠졌다기보다 구현해내야 하는 게 많으니 혼자 진이 빠진 것 같다"고 전했다. 또한 "몇 그램씩 빠지는 게 겉으로 확 드러나는 편인 것 같다. 연기를 하는 시간이 아니라도 고민 아닌 고민을 하게 되지 않나. 제가 잠을 잘 못 자서 빠지는 몇 그램 차이가 도드라지는 것 같다"고 했다.
김서형은 평소 "죽도록 무언가를 다 소진하고 연기하는 성향이다. 끝까지 밀어붙이고 놓을 때까지 하는 게 제 성향"이라고 했다. 응축한 에너지를 단번에 표출하는 방식으로 연기를 해오고 있는 것. 김서형의 연기에 단단함과 설득력이 서려 있는 이유였다. 김서형은 "병실 세트장에서 며칠씩 찍거나 주사를 맞는 신 같은 건 한 번에 가야 더 좋지 않나 했다. 두세 번 가면 더 힘들다. 한 번에 할 때 쥐어짜서 보여주는 게 오히려 좋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있는 거 없는 거 다 끌어모아서 집중했다"고 말했다. 이어 "시한부 캐릭터가 아니더라도 그런 식으로 연기에 집중한다"며 "시한부 캐릭터든 어떤 캐릭터든 작품 안에서 만나는 캐릭터들에게 다 똑같다"고 전했다.
다정 캐릭터는 김서형에게 십여 년 전 폐암으로 돌아가신 아버지를 떠오르게 했다. 김서형은 "감독님과 작품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면서 시한부 얘기를 끌고 간다기보다 삶에 대한 이야기를 더 하자고 했다. 삶이 얼마나 소중한가를 얘기하고 싶으셨던 거다. 그러다보니 저도 아빠 얘기를 꺼내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 "이 작품을 하면서 내내 아빠를 떠올리며 슬퍼한 게 아니다. 3~4개월 병석에 있는 동안 아빠는 어떤 이름으로 어떤 삶을 살았고, 무엇이 소중했고, 그런 것들을 물어보고 싶었는데, 그러한 시간이 있을 거라는 착각을 했던 거다. 듣고 싶었던 말이 있었던 건 아니고 아무런 대화를 못 하고 헤어진 것에 대한 아쉬움이 있다. 그런 의미에서 다정이에는 내 생각이 많이 담긴 것 같다"고 털어놨다.
작품에 몰입한 김서형은 평소에도 "전작이 대단했든 아니든 나는 차기작을 빨리 정하진 못한다. 스스로 여기서 다 소진했다고 생각하는데, 바로 넘어가기까지 시간이 좀 필요하다고 느끼는 것 같다"고 말했다. 멘탈 관리 방법에 대해 묻자 "가끔 저는 일하다 쉴 때 '내가 너무 한량인가?' 싶다. 가끔 아무런 생각을 하지 않는다. 저한텐 이불이 최고다. 집에서 나갈 때 이불의 폭신한 소리 같은 걸 생각하면서 나가고 들어왔을 때 그 소리를 들으면 편하다"며 웃었다.
극 중 다정은 남편의 정성이 담긴 요리를 먹으며 하루하루 죽음을 담담히 준비해간다. 추억이 있는 음식이 있냐는 물음에 김서형은 "저희 엄마가 요리하는 걸 좋아했다. 엄마가 음식 솜씨가 좋았다. 엄마가 어릴 때부터 직접 카스텔라를 해주셨다. 지금도 해달라면 해주실 거다. 제 고향이 강릉이지 않나. 예전에 버스 타고 대관령을 오갈 때, 비닐에 싸서 서울 가면서 먹기도 했다"고 밝혔다. 이어 "엄마가 차멀미하지 말라며 오징어를 주시기도 했다. 토하지 않으려고 오징어를 질겅질겅 씹으며 탔다"고 회상했다.
김지원 텐아시아 기자 bella@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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