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간 보급도 없이… 김영미, 한국인 처음 단독으로 남극점 밟아
한국의 대표 여성 산악인 김영미(43)씨가 단독으로 남위 90도 남극점을 밟았다.
김영미 씨는 지난해 11월 27일(현지 시각) 남극 대륙 서쪽 허큘리스 인렛을 출발한 지 50일 11시간 37분 만인 2023년 1월 16일 오후 8시 57분 남극점에 도달했다. 한국인 최초이자 아시아 여성으로선 처음으로 식량과 연료 등 중간 보급 없이, 그것도 단독으로 남극점 완주에 성공했다. 그동안 단독으로 남극점을 밟은 여성은 캐나다, 프랑스, 독일, 아이슬란드, 영국인 등 총 17명이다. 아시아인은 없다. 이 중 무보급, 즉 중간에 식량이나 물자를 지원받지 않은 채 남극점에 도달한 여성은 김씨에 앞서 10명뿐이다.
김씨는 국내에선 알아주는 베테랑 산악인이다. 2003년 히말라야 등반을 시작, 2008년 에베레스트 등정에 성공했다. 이후 국내 최연소로 7대륙 최고봉들을 완등했다. 2017년 겨울엔 얼어붙은 바이칼 호수 723㎞를 단독 종주하기도 했다. 2014년에는 조선일보의 통일 기원 사업인 ‘원코리아 뉴라시아 자전거 평화대장정’ 원정대의 유일한 홍일점 대원으로 참가해 100일 동안 1만5000㎞를 완주하기도 했다.
허큘리스 인렛부터 남극점까지 직선거리는 1130㎞다. 하지만 김씨가 평균 영하 30도를 오르내리는 혹한과 칼바람을 이겨내고 무게 110㎏이 넘는 장비를 실은 썰매를 끌면서, 하루 11시간씩 스키를 타거나 걸어서 장애물을 헤치고 종단한 거리는 1186.5㎞였다.
김씨의 도전은 그만큼 목숨을 건 사투였다. 그는 “화이트아웃(눈 표면에 가스나 안개가 생겨 주변의 모든 것이 하얗게 보이는 현상)이 최대 훼방꾼이었다”며 “난반사 때문에 시야가 뿌옇게 돼 가시거리를 구분 못 할 정도였고, 방향을 잡느라 애를 먹었다”고 했다.
방향감각을 잃었을 때는 베테랑 산악인다운 경험을 살려 태양과 그림자의 위치, 그리고 풍향으로 방향을 잡았다. 남극에서는 바람이 내내 정해진 방향에서 불기 때문에 풍향으로 나아갈 길을 찾아갈 수 있었다고 한다. 태양광 충전 배터리 2개 중 1개가 혹한을 견디지 못한 채 멈춘 적도 있었다. 지난 7일 남극 88도 도착 하루 전엔 썰매를 끌던 슬링(몸과 썰매를 연결한 끈)이 떨어져 나가 애를 먹기도 했다.
극점 자기장의 영향으로 나침반이 이상 작동해 엉뚱한 방향으로 가는 것을 수차례 되풀이하기도 했다. 그는 원정 도중 페이스북을 통해 “10° 정도의 나침반 오류를 GPS와 비교해 수정할 수 있었다”며 “3㎞를 전진할 때마다 GPS를 확인해야 했다”고 했다.
김씨의 이번 남극점 도전은 2011년 안나푸르나 등정 중 사망한 선배 산악인 박영석 대장을 추모하고 그리워하면서 시작됐다. 박영석 대장은 허영호 대장과 함께 남극점 원정에 성공한 ‘유이’한 한국인이다. 둘 다 단독 원정이 아닌 4명 이상 팀을 구성해 남극점에 닿았다. 김씨는 이번 도전을 시작하면서 “박 대장님이 들려준 남극점 도달 과정이 나를 끝없이 자극했다”고 했다. 김씨는 이번 도전을 위해 지난해 노르웨이와 러시아 아무르강, 네팔 히말라야를 찾아 강도 높은 전지훈련을 했고, 박 대장보다 더 고통스러운 도전을 추구했다.
원정을 하면서 중간 보급은 물론 위급 상황에서의 지원도 받지 않았고, 풍력(연 사용), 개 보조(개 썰매), 차량 보조 등이 없이 오로지 자신의 힘으로 이용해 걷거나 스키를 탔고, 썰매를 끌었다. 무전기, 나침반,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 등은 보조 여부에 해당하지 않는다.
김 씨는 남극점에 선 뒤 “부상(동상) 없이 열 손가락, 열 발가락 짝 맞춰서 데려갑니다. 오늘 20여㎞를 걸어야 하는데 동상이 염려되어 어젯밤 잠들기 전까지 내내 걱정이 됐어요. 어떻게 1000㎞ 넘는 거리를 썰매를 끌고 여기까지 왔는지 모르겠습니다. 오늘 남극점에 섰지만, 50여 일의 여정이 하룻밤 꿈 같아요”라고 소감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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