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人] 어민의 삶을 지키다…‘대장장이’ 추일봉
[KBS 창원] [앵커]
불에 달군 무쇠로 농기구와 생활용품을 만드는 대장간, 요즘은 만나기 힘든 공간인데요.
수요가 뜸한 지금도 묵묵히 망치를 두드리며 대장간을 지키는 장인을 경남인에서 만나보시죠.
[리포트]
1,300도로 달군 쇳덩이를 두드려 구부리고 다시 두드리길 반복해 어구의 부품 하나가 나옵니다.
진가를 알고 찾아오는 이들을 위해 추일봉 씨는 50년간 망치를 두드렸습니다.
[추일봉/대장장이 : "이걸 안 만들어주면 어디 가서 만들어 쓰겠어요? 가뜩이나 통영 같은 바닷가에서는 사업이 안 된다 아닙니까?"]
통영 바다에서 갓 올라온 수산물로 활기찬 시장 뒷골목.
세월을 고스란히 간직한 간판 하나가 눈길을 끕니다.
닻과 같은 선박 부품과 어구, 농기구까지 쇠로 못 만드는 게 없는 공작소는 대장간의 또 다른 이름입니다.
바다와 접해 있다 보니 주 고객은 어민이고, 취급 품목도 갯일에 필요한 것들이 많습니다.
[추일봉/대장장이 : "바지락 파고 밭도 매고 김도 매고 하는 거고 호미. 굴 껍데기 구멍 뚫는 것. 이것 역시 성게 잡고 멍게 따고 하는 거고, 이건 해녀들 쓰는 거고…."]
전복 따는 어구에 제철 맞은 굴 칼도 50년 장인의 손끝에서 나온 명품입니다.
[추일봉/대장장이 : "쇠 자체가 굴을 까면 끝이 오그라지고 하는데 이건 그런 게 없다고. 수작업을 하기 때문에 몇 개 안 나와요."]
지름 5센티미터의 쇠가락이 어구로 변신하려면 십여 차례의 공정을 거쳐야 합니다.
[추일봉/대장장이 : "처음에 꺾는 것, 그다음에 앞뒤 네 번, 이것까지 다섯 번. 이게 배에 통발 같은 것 떨어지면 건져 올리는 건데, 이게 네 발짜리도 있고 여섯 발짜리도 있고 그래요."]
바다가 곧 밭인 어민의 필수품, 호미입니다.
뭉툭한 쇠를 두드려 모양을 만든 뒤 다시 불에 달궈 마술처럼 호미로 둔갑시킵니다.
낫 한 자루도 대충 만드는 법이 없는 손이 무쇠보다 더 고집스러운데요.
기계로 찍어낸 제품이나 중국산에 비할 수 없는 강도는 불과 망치질에서 나옵니다.
[추일봉/대장장이 : "원래는 이만큼 이렇게 높은 것이거든요. 그런데 이게 닳아서 그런 겁니다. 얼마나 많이 썼으면 이렇게 닳았을까? 내가 한 것만 해도 50년이 넘었으니까 한 100년 넘어 안 됐을까요? 전에 위 선배들 쓰던 것…."]
망치질에 닳아서 낮아진 작업대. 화롯가에 빼곡한 연장은 그의 수족인데요.
낡은 화로와 연장에선 얼마나 많은 어구가 나왔을까요?
이 자체도 신기한 볼거리입니다.
[이환희/전북 김제시 황산면 : "유튜브로 보는 것보다 기계들이 더 많아서 신기했습니다. 힘들고 엄청 정성이 들어가 있는 느낌..."]
[김덕인/통영 서호시장 상인 : "이렇게 명맥을 유지해 오시고 통영의 명물이에요. 친절하게 잘 해 주시고 인간문화재..."]
근대박물관 같은 대장간에서 유물처럼 자리를 지켜온 장비들은 주인과 같이 나이 들어가는 일꾼입니다.
식기 전에 모양을 잡아야 해서 손은 손대로 발은 발대로 숨 돌릴 틈조차 없는데요.
페달을 밟아 세기를 조절하는 장비마저 없던 시절에 비하면 수월해졌다고 할 만큼 고된 작업입니다.
[추일봉/대장장이 : "이것도 얼마 안 남았어요. 전부 다 기계에다 찍어서 나오니까 찍어서 갈기만 갈면 되는데 우리는 전부 다 수작업을 해야 하니까…."]
일꾼 대여섯 명도 부족할 만큼 주문이 밀리던 시절도 있었지만 어업이 기울면서 일감도 끊어졌습니다.
수십 년 단골도 세상을 떠나고 더는 일을 배울 사람조차 없는 대장간 풍경이 쓸쓸하기만 합니다.
[류태수/사진가 : "이분들 작업 그만두고 나면 누가 이걸 하려고 하겠어요? 기록 잘해서 기록으로라도 후손들에게 남길 수 있도록 단디 찍어가이소."]
찾는 발길이 뜸해도 그는 대장간 문을 닫을 수가 없습니다.
[추일봉/대장장이 : "힘닿는 데까지는 할 건데 그렇게 오래 하겠습니까? 해 줘서 고맙다고 하지 뭐 있어 줘서 고맙고…."]
어민들의 삶을 지킨 고마운 손.
KBS 지역국
Copyright © K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이용(AI 학습 포함) 금지
- [단독] ‘강제동원’ 일본 사도광산 기록…“차마 볼 수 없는 폭력”
- 의원님의 수상한 법카…“반론을 기다립니다”
- 이란 “심각하게 지켜봐”…외교부 “관계 발전 변함없어”
- [영상] 6개월 만에 음속 벽 넘었다…KF-21 개발 순항
- 광주 공무원 7500명이 거리로 나선 까닭은?
- 초등학교 교사 학생 폭행 의혹…교육청, 직위해제
- [ET] “학폭 징계 수위 낮춰 드립니다”…‘수임료 수천만 원’ 학폭 전문 로펌까지?!
- ‘스토킹’ 재판받던 50대, 고소인 살해 혐의 체포
- “이기영 집에서 나온 혈흔, 전 동거녀 DNA와 일치”
- “법치! 사상무장!” 통제 몰두하는 북한…오로지 정권 보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