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서 칼럼] 브라질 폭동, 민주주의 파괴 용납해선 안된다
'미국의 뒷마당'이라 불리는 브라질에서 민주주의를 훼손하는 폭동이 발생했다. 2년 전 미국에서 일어났던 '역사적 사건'과 판박이다.
지난 8일(현지시간) 오후 브라질 수도 브라질리아에서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시위대가 '폭도'로 변해 바리케이드를 뚫고 국회의사당, 대법원, 대통령궁 등 입법·사법·행정 3부 기관 건물에 난입한 것이다. 이들은 집기류를 내던지는 등 내부를 난장판으로 만들었다.
이 과정에서 다수의 예술작품이 부서지거나 도난당했다. 프랑스 루이 14세가 당시 브라질 국왕이었던 동 주어웅 6세에게 선물했던 17세기 진자시계는 산산조각이 났다. 일부는 의회 건물 지붕에 올라가 쿠데타를 촉구하는 '개입'이라는 뜻의 포르투갈어 플래카드를 펼치기도 했다.
이날 폭동은 지난 2021년 1월 6일 미국 연방의회 의사당 난입 사태의 재현이었다. 약 4000명이 폭동에 가담했고 약 1500명이 체포됐다. 이들은 '브라질의 트럼프'로 불리는 자이르 보우소나루 전 대통령의 지지자들이었다.
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폭도가 되었는지 궁금해진다. 사태의 발단은 지난 대통령 선거에서 찾을 수 있다. 지난해 10월 대선 결선에서 우파 보우소나루와 좌파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실바가 치열하게 싸웠다. 결선 투표에서 보우소나루는 49.1%, 룰라는 50.9%의 득표율을 기록했다. 근소한 차이로 룰라가 승리를 거머쥔 것이다. 룰라 정부는 지난 1월 1일 공식 출범했다.
그러나 보우소나루는 자신의 패배를 명시적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그는 브라질 전자투표 시스템이 조작하기 쉽다며 '선거 사기'를 주장했다. 이미 그는 대선 몇 달 전부터 브라질의 전자투표 시스템을 이용한 부정선거 전력이 있다는 가짜 뉴스를 퍼뜨려 왔었다. 보우소나루측은 대선 투표가 무효라며 최고선거법원에 대선 전자개표기 오류 검증을 신청했지만 기각됐다.
재미있는 부분은 그가 지난 2018년 대선에서 승리했을 때는 전자투표 시스템에 문제가 있다는 말을 전혀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정말로 전자투표 시스템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됐으면 재임 중에 수정했으면 될 일이었다.
그런데 이번 대선이 다가오면서 이 문제를 끄집어 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과 마찬가지로 소셜미디어에 명백한 증거를 제시하지 않은 채 "전자 투표 시스템이 조작에 취약하다"는 게시물을 퍼뜨려 유권자들 사이에 대립과 불안을 부추겼다. 부패 혐의로 수감된 룰라에게는 '도둑', '공산주의자'라는 낙인을 찍었다. 그 사이 국가 분열은 심화됐다.
보우소나루는 대선에서 패배했지만 보우소나루와 그의 지지자들은 선거 결과가 조작했다는 주장을 계속 밀어붙였다. 대선 불복 시위는 이어졌다. 보우소나루는 룰라의 취임식에도 참석하지 않고 미국 플로리다로 갔다. 현 행정부의 기소를 피하기 위한 도피로 보인다. 미국에 머물고 있는 보우소나루는 트위터를 통해 이번 폭동 행위를 비난했지만 자제를 요청하지는 않았다.
그가 폭력 시위를 하라고 직접적인 지령을 내리지는 않았지만 이번 폭동의 배후임에는 틀림없어 보인다. 보우소나루가 퍼뜨린 가짜뉴스가 폭동에 불을 댕긴 것은 확실하다. 이에 브라질 대법원은 보우소나루에 대한 수사를 허용했다.
민주주의 원칙은 선거 결과에 대한 복종이다. 불만이 있다고 해도 이 룰을 깨면 안된다. 자신의 주장이 절대적으로 옳다는 태도는 사회 분열을 심화시키고 민주주의를 좀먹는다. 더구나 폭력으로 비화되면 민주주의 기반은 통째로 흔들린다. 바이든 미 대통령 등 각국 정상들이 이번 사태를 규탄한 이유다.
브라질에서도 민주주의 기반이 흔들리고 있다. 민주주의 제도가 완벽하지는 않으나 우리는 적어도 기존 정치체제에서 민주주의가 '최고의 시스템'이란 것을 알고 있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민주주의에 위험한 일들이 전 세계적으로 일어나기 시작했다는 느낌이다. 국제사회는 함께 노력해 민주주의를 잘 관리해야할 의무가 있다. 위기감을 공유하면서 위험한 징후에 단호하게 맞서 나가야 한다.
박영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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