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 기금 쌓기보단 보장성 강화를…기금고갈땐 국고투입"
"국민연금, 본질적 기능 회복하는 방향으로 추진돼야"
(서울=연합뉴스) 조민정 기자 = 국민연금 개혁과 관련된 논의에서 기금 고갈 문제가 대두되는 가운데 안정적 재원 마련을 위해 기금을 필요 이상으로 적립하는 것은 국가 경제에 오히려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주장이 나왔다.
보험료를 대폭 올려 대규모의 기금을 쌓으면서 소비를 위축시키기보다는 연금을 부과식으로 운영하면서 소득재분배 기능을 발휘해야 한다는 논리다.
정세은 충남대 교수는 17일 서울 여의도의 한 식당에서 열린 공적연금강화국민행동 기자간담회에서 "공적연금은 보통 부과식 연금제도를 채택해 원래 기금 축적이 필요 없고, 갑자기 경제 위기가 찾아오는 경우 등의 상황을 가정해 예비적 차원에서 소규모의 완충 기금만 보유하면 된다"며 이같이 주장했다.
2018년 이뤄진 4차 재정계산에서는 국민연금의 기금이 2057년에 고갈되는 것으로 추산됐으며, 올해 진행 중인 5차 재정계산에서는 고갈 시점 전망이 더욱 당겨질 것으로 예상된다.
2020년 기준 우리나라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공적연금기금 적립금의 비율은 45.1%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고 수준이다. 핀란드, 룩셈부르크, 일본, 스웨덴 등이 30% 초반으로 비교적 높지만, 우리나라보다는 상당히 낮다.
정 교수는 "과도하게 많은 기금은 가계의 소비 여력을 떨어뜨리고 금융 불안정을 일으킬 소지가 있다"며 "과도기적, 예비적 이유로 기금을 일부 보유하는 것을 넘어서 대규모로 기금을 쌓는 것은 국민 경제 전체에 마이너스"라고 강조했다.
일각의 주장처럼 기금 고갈 우려에 보험료를 대폭 올리면서 보장성 강화는 미진하다면 경제활동 및 소비 감소가 우려된다는 것이다.
반면 그는 공적연금의 보장성을 강화할 경우 노후소득보장 목적을 달성하는 동시에 소비촉진→일자리 창출→소득 증가→소비촉진의 선순환이 작동할 것으로 봤다.
정 교수는 보험료율 상한을 정하고 서서히 인상하면서 보장성을 강화하되 부족한 재원은 국고 지원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그는 "4차 재정계산에 따르면 장기적으로 연금급여액은 GDP의 9.4% 정도로, 현행 보험료율 하에서 기금 소진 후 매년 적자 규모는 GDP 대비 6.6%가 된다. 보험료율을 어느 정도 인상한다면 부족분에 대해서 국고를 투입해도 크게 부담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특히 고령화율은 높아지고 미래세대의 인구수는 줄어드는 상황에서 미래세대에 부담을 전가해서는 안 되며 세금 등을 통해 사회 전체가 노인 부양에 책임을 다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이날 또 다른 발제자로 나선 남찬섭 동아대 교수도 "공적연금의 본질적 기능은 노후빈곤 방지와 퇴직 전 생활 수준의 유지"라며 "연금개혁은 이 본질적 기능을 회복하는 방향으로 추진돼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노후 적정생활 수준 보장이 관건"이라고 주장했다.
남 교수에 따르면 우리나라 퇴직 세대의 가처분소득 중 공적연금이 차지하는 비중은 32.2%로, OECD 평균(66.6%)의 절반 수준이다. 평균 임금가입자 기준 소득대체율도 31.2%로 OECD 평균 42.2%에 미치지 못한다.
그는 특히 통계청 사회조사에서 '주된 노후준비 수단이 국민연금'이라고 생각하는 비율이 2005년에는 20대와 30대에서 각각 33.9%, 30.0%이었던 것이 2021년에는 61.2%, 60.1%로 2배 넘게 뛰었다는 점을 지적하며 국민연금 의존도가 높아진 만큼 노후보장성도 강화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정 교수는 재정추계의 한계를 지적하기도 했다.
그는 "재정추계는 보수적인 가정을 향후 70년간 고정해 전망하는 것으로 0.8이라는 합계 출생률, 은퇴 연령 65세, 낮은 여성 경제활동참가율 등을 전제로 하고 있다"며 "중기적으로 출생률을 OECD 평균 수준으로 끌어올린다면 국민연금의 재정 문제는 크게 완화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출산 등 정책에서의 여지를 고려하지 않고 국민연금이라는 틀로만 해결하려고 하면 해결책이 크게 제한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chomj@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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