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 없는 희망은 없기에… 내 삶이 가장 캄캄할때도 나는 썼다 [신달자 에세이]
나에게 가장 많은 것은 '타인의 생각'이다. 인간의 성장은 타인의 생각으로 이루어진다. 나도 타인의 생각으로 여기까지 왔다. 아기, 어린이, 학생, 청소년, 처녀, 아줌마, 선생님, 노인, 어른, 할머니까지 오는 데 가장 많은 영양분은 '타인의 생각'이었다.
학교에서 배우는 과목 모두가 다른 사람의 생각을 익히고 배우는 과정이다. 자신의 생각 하나로 인간 사회 안에서는 생활이 어렵다. 타인의 생각을 받아들일 때 내 생각이 설 자리가 생긴다. 그것이 사회인이 되는 과정이고, 그것을 인간의 품성이고 인격이라고도 한다.
'타인의 생각'으로 성장한 우리,
남을 존중할 때 내 설자리도 생겨
그것이 인간의 품성이고 인격
타인의 생각을 가장 편안하고 내 것으로 가질 수 있는 방법은 바로 책과 신문이었다. 한 달에 책 3권, 하루에 3개의 신문만 읽어도 하루의 영양은 벅차고 넘친다. 좋은 생각, 알아야 할 지식, 반드시 나도 실천해야 할 일들이 책과 신문 안에는 있다.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이야기를 만나면 신문값을 더 내고 싶어진다. 이렇게 '타인의 생각'으로 정신의 영양을 채우면서 산 결과 중에 중요한 하나는 '삶의 너울'이다. 생명은 물속에서 태어나서일까. 삶에는 분명 파도가 있다는 것이다. 그 뼈대가 고통이다.
우리는 기쁨, 즐거움, 환희를 좋아하고 그것이 왔을 때 오는 미소, 웃음소리, 벅찬 충만감을 좋아하고 그것을 갖기 위한 '희망'이란 말, '소망'이란 말을 좋아한다. 그런데 인생사는 기쁨, 즐거움, 환희가 절대로 공짜로 주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밤 다음에 아침이 오고, 겨울 다음에 봄이 오고, 고통 그다음에 생명을 얻듯이 내가 무엇인가 견디고 이를 악물었을 때 그다음에 기쁨과 즐거움과 환희가 온다는 것은 거의 철칙처럼 보였다.
그리고 인간에게 누구나 반드시 죽음이 온다는 것도 사무치게 두려운 경고라는 것을 신문에 실리는 부고란이나 책에서 많이 보아 온 사례인 것이다. 누가 신문을 잘 차려진 밥상이라고 했던가. 이 밥상에서 밥과 국은 기쁨과 고통이라고 생각된다. 기본 주제라는 이야기다.
우리 삶에는 분명 파도가 있어
고난 뒤 '철칙'처럼 따라오는 건,
기쁨이라는 벅찬 충만감
'부잣집 딸' '장미집 딸'이라는 이름을 들으며 성장했고 여고 시절을 부산에서, 대학은 서울에서 다니며 시골 여학생이었던 나는 어머니의 외로움을 빼고는 고통이라는 것을 몰랐다. 용돈은 넉넉해서 여고 시절 부산의 부자 냄새가 나는 청탑 그릴에서 친구들을 데리고 함박스테이크를 먹었고 신나게 돈을 냈다. 그러나 그렇게 잘나가지 못했다. 아버지의 사업이 와르르 무너졌고, 우리 가족도 더불어 무너졌다. 결혼생활도 막막했다. 아이 셋을 낳고 막내가 두 살 때 남편이 쓰러졌고, 우리 가족은 모두 땅바닥을 기어야 했다. 다음 해 시어머니가 쓰러져 내 옆방에 누우셨고, 나는 거대환자 두 명과 아이들이 있는 집에 상상도 할 수 없었던 가장(家長)이 되어 있었다.
그러나 나는 생각한다. 내게 그런 악몽의 시간들이 없었으면 내 자신의 삶의 진로에 대해 어려운 것은 슬쩍 피했을 수 있다. 삶을 싸움이라고 인식할 때 단 한 번도 남에게 이겨 본 적 없는 무능한 내 도전력에 근육이 붙기 시작한 것도 무너져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내 삶이 팍팍한 사막이었을 때도
물줄기가 있다는 확신 버리지않아
그 믿음이 나를 여기까지 데려와
'타인의 생각'으로 성장하면서 얻은 지식은 금덩어리하고는 무게가 달랐다. 보이지 않는 도전 속에 목표설정이 이루어지고, 지금의 부끄러움을 허용하고, 내일 미래의 부끄러움을 용서치 않는 경건한 자기약속을 쌓아가는 것이다. 한때 나는 6인용 입원실 변기 위에서 글을 썼고 한 시간 안에 적어도 열 번은 더 문을 열고 나갔다 들어갔다. 그래도 썼고 그래도 희망을 믿었다. 이상하지. 그 캄캄한 시간에도 빛이 존재함을 의심하지 않았다. 운명의 뺨을 내리치고 싶을 때도 있었지만 뺨을 치는 에너지를 그런 것에 빼앗기고 싶지 않았다. 내가 그린 삶의 길이 팍팍한 사막이었지만 반드시 물줄기가 흘러 올 것이라는 확신에 매달렸다. 그 확신이 내가 바라는 지점에 데려다줄 것을 나는 믿었던 것이다.
그래도 푸른 하늘이, 그래도 시퍼런 나무들이, 그래도 태양이, 그래도 달이 별이, 그래도 찬란한 꽃들이, 그래도 처절함으로 작은 생명들에게 위로를 주는 예술품이 함성을 지르고 있거니. 그래도 '타인의 생각'을 존중하며 믿고 가는 사회가 있으리라는 믿음으로 밥을 씹었다. 그러니'타인의 생각'의 주인공들의 경험이야말로 말로, 글로 남긴 그 소중한 자산이야말로 살이 으스러지도록 간절함으로 살아가려는 사람들에게 얼마나 축복된 것인가를 나는 지금도 눈물겹도록 되새긴다. 타인의 생각이여! 스승이여! 생명으로 태어나 가장 존귀한 인연들이여! 감사합니다.
■신달자 시인은... 1943년 경남 거창에서 태어났다. 숙명여대 국문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64년 '여상' 여류신인문학상 수상으로 등단한 뒤 1972년 박목월 시인 추천으로 재등단했다. 평택대 국문과 교수, 명지전문대 문창과 교수, 한국시인협회장 등을 지냈다. 은관문화훈장, 대한민국문학상, 한국시인협회상 등 화려한 문학상 수상 경력이 있다. 시집 '봉헌문자' '아가' '겨울축제' 등을 냈다. 수필집 '백치애인', 소설 '물 위를 걷는 여자' 등은 선풍적 인기를 끌며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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