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동 초입 노점들 하루새 사라져... “자릿세 냈다” vs “사유지라 철거”

오주비 기자 2023. 1. 17. 1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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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6일 오후 5시쯤 서울 중구 명동의 한 골목에 노점 7곳이 철거된 잔해물들이 쌓여 있다. /오주비 기자

17일 오전 11시 50분쯤 서울 중구 명동 거리 초입에 있는 한성화교소학교(초등학교) 근처 골목에서 서울 중구청 공무원 30여명과 현장 작업자들이 골목에 널브러진 쇠철판과 부서진 나무 판자 등을 5톤 트럭에 싣고 있었다. 이 골목에서 수십년간 장사 해온 노점 7곳의 철거 잔해물이다.

이곳에 있던 노점들은 지난 16일 오전 1시 학교 측 리모델링 업체에 의해 강제 철거됐다. 구청이 아닌 사설 업체에서 노점 영업이 끝난 새벽 시간 기습 철거를 한 것이다. 학교는 이 골목에서 장사해 온 7개의 노점들 바로 뒤에 있는 건물 소유주로, 건물 리모델링을 위해 이 노점들을 철거했다고 했다. 이날 이 골목 40여m 거리에서 나온 폐기물은 20톤이 넘었다.

철거 당일인 지난 16일 만난 노점 주인 김모(68)씨는 멍한 눈으로 잔해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철거 전날인 15일 오후 11시까지 장사를 하고 평소처럼 집에 들어갔다가 이튿날 오전 4시쯤 식자재 운송업체로부터 “노점이 부서져 있으니 얼른 와 보라”는 연락을 받았다고 한다. 김씨가 부랴부랴 도착했을 때 이미 골목은 철거물들로 가득했다고 한다. 김씨는 “평생을 이곳에서 장사하며 살았는데 하루아침에 그 터전이 사라지니 말문이 막힌다”며 눈물을 흘렸다.

50년간 떡볶이 등을 팔아왔다는 양모(74)씨도 이날 부서진 노점 물건들과 가판대가 치워지는 모습을 우두커니 서서 바라봤다. 그는 “평생 장사해 온 일터가 하루만에 사라진 게 믿기지 않는다”며 한숨을 쉬었다.

17일 오전 11시 50분쯤 서울 중구 명동의 한 골목에 쌓인 노점 철거 잔해물들을 공무원들과 현장 작업자들이 트럭에 옮겨 담고 있다. /이민준 기자

이곳에서 35년간 노점을 운영했다는 한 상인은 “학교나 구청으로부터 철거 요청을 받은 적은 없고, 학교 건물 리모델링하는 업체에서 우리가 장사하는 곳에 건물 입구를 낼 거니 철거하라는 얘기만 들었다”며 “언제 철거한다는 말은 없었다”고 했다. 상인회 측은 “우리가 학교 측에 보상금 10억원을 달라고 했다는 얘기들이 나오는데, 그런 요구를 한 적도 없고 요구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다”며 “변호사를 선임할 계획”이라고 했다.

철거를 진행한 학교 측 리모델링 업체 관계자는 “계속해서 철거 요청을 해왔다”며 “8개월 전부터 이야기를 한 것이고 갑작스레 벌어진 일이 아니다”고 설명했다.

이곳 노점상인들은 “매년 5000만원에 달하는 ‘자릿세’를 냈기에 정당하게 장사하는 것”이라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중구청에 따르면 이들이 합법적으로 장사를 한 것은 아니다. 상인들이 말하는 자릿세는 ‘공유재산 변상금’으로, 허가 받지 않은 이들이 골목 일부를 무단 점유·사용했기 때문에 부과되는 징벌적 의미의 행정 제재금이다.

구청은 이들에게 2018년부터 변상금을 부과해왔다고 밝혔다. 명동 일대 도로점용 허가 등을 담당하는 중구청 관계자는 “학교 측 사유지를 제외, 노점이 무단 점거하고 있는 공용 도로에 대해서 변상금을 부과해왔다”며 “이를 낸다고 하더라도 합법이 되는 것은 아니다”고 했다. 또 “변상금을 부과하기 이전부터 허가 받지 않고 도로를 점유해 장사하면 안 된다고 계도를 꾸준히 해왔다”고 말했다.

철거 통보도 없이 갑자기 노점을 철거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노점 상인들의 주장에 구청 관계자는 “노점이 사용하던 자리가 학교의 사유지이고, 사유지에 대해선 구청에서 조치를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했다. 또 “학교 측에서 구청에 이 노점들 철거 가능한지 문의해왔을 때도 구청은 사유지에 관해 관여하지 못한다고 답변한 바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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