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상기온 0도, 눈 올까 비 올까... 기상청서 벌어진 팽팽한 설전
눈 종류따라 적설량 수십배 차이
“사회적 약자가 눈 피해 가장 취약...민감도 커”
지난 6일 오후 서울 동작구 기상청 재해기상대응팀 사무실. 이날 밤 수도권 예보를 두고 팀원 7명이 ‘눈파’ 4명과 ‘비파’ 3명으로 나뉘어 설전(舌戰)을 벌였다. 저기압이 서해상을 통과하며 만들어지는 비구름대가 수도권에 그대로 비를 뿌릴 지, 아니면 하강 과정에서 얼어 붙어 눈으로 내릴 지 의견이 첨예했다. 여러 수치예보모델이 산출한 강수 예측 결과도 제각각이라서 ‘강설’과 ‘강우’ 중 어떤 단어를 선택할지는 오로지 예보관 손에 달려있었다.
◇‘1도’의 전쟁…비 1㎜에 적설량 4cm 차이
관건은 ‘1도’였다. 밤사이 내륙의 기온이 떨어져 0도 아래로 내려가면 물방울이 얼어붙어 눈이 되고, 낮까지 따뜻했던 기온이 그대로 영상을 유지하면 비가 되는 상황이었다. 통상 예보에서 인정되는 기온 오차범위는 ‘2도’다. 예보 기온과 실제 온도 차이가 2도 안쪽이면 예보가 맞았다는 뜻이다.
그런데 예상 기온이 0도에 걸쳐있고 비까지 내리면 얘기가 달라진다. 특히 눈 예보는 난도가 높다. 내리자마자 녹아버리는 진눈깨비인지, 습기 많이 머금은 습설(濕雪)인지 뻑뻑한 건설(乾雪)인지, 바람은 얼마나 부는 지에 따라 적설량 차이가 크다. 게다가 기온 오차범위와 상관없이 눈인지 비인지 맞히지 못하면 기상청 입장에선 곧바로 ‘오보’가 된다.
기상청이 눈 예보에 민감한 이유는 사회적 약자가 눈 피해에 더 취약하기 때문이다. 대단지 아파트 보단 골목길, 도시 보단 농촌, 평지 보단 언덕의 제설 상태가 더 나쁠 수 밖에 없고, 제때 치우지 않은 눈이 꽁꽁 얼면 빙판길이 돼 사고 확률이 커진다.
배달, 택배, 화물 운송처럼 차량을 이용하는 직업이나 도심에 집을 구하지 못하고 장거리 출퇴근을 하는 사람들은 눈이 내린 후 생긴 도로 위 ‘블랙 아이스’에 다칠 위험이 커진다. 지난 15일 밤 경기 포천에서 발생한 차량 47대 연쇄 추돌 사고 역시 이런 도로 결빙이 원인이었다.
◇마라톤 회의 끝 ‘눈’ 결론…결말은
점심도 거른 채 이어진 마라톤 회의 끝에 재해기상대응팀은 이날 밤 수도권을 적실 물방울 형태를 ‘눈’으로 결론냈다. 기상청 본청과 전국 지방청이 모두 참여하는 전체 회의를 거쳐, 6일 밤부터 7일 새벽 사이 전국에 1~5cm의 눈이 내릴 거라는 최종 예보가 나갔다. 퇴근 시간이 한참 지났으나 예보관들은 오랫동안 창밖을 지켜봤다.
한 예보관은 “우리 예보 믿고 빙판길 사고 날까봐 택시 운행 쉰 사람들, 폐지 한 장 더 주우려다가 리어카 끌기를 포기한 사람들, 하다못해 금요일밤 즐거운 술자리를 눈 때문에 일찍 파한 사람들에게 혹여 누를 끼치지 않을까 걱정된다”고 했다.
하늘이 잠잠하다가 밤 9시반쯤 굵은 눈송이가 바닥에 쌓이기 시작했다. 낮동안 포근했던 날씨도 언제 그랬냐는듯 칼바람과 함께 추워졌다. 기상청 사람들은 그제서야 외투 앞섶을 여미고 하나 둘 퇴근길에 올랐다. 이튿날인 7일 오후, 눈이 그치고 집계된 적설량은 서울 2.7cm 등 기상청 예보와 대체로 일치했다. “눈 예보 믿고 외출 안 해 눈길에 다칠 뻔했던 사람들이 많이 줄었을테니 다행이다”라며 한 예보관이 웃었다. 이날 오후는 그의 얼굴처럼 날이 쨍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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