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STORY] 임도형 아비커스 대표 "올해 수주 모든 선박에 자율운항 적용···'바다의 테슬라' 될 것"
연구개발 조직서 분사···기술력 입증
선원 없이 원격제어 '3단계'도 속도
자율항법솔루션 상용화 국내 유일
'하이나스2.0'은 세계 첫 ABS 인증
260건 이상 수주···30척 넘게 운항
테슬라도 막대한 주행 데이터 앞세워
자율주행차 시장 '퍼스트 무버' 등극
자율운항기술 '국제 표준' 선점으로
2030년 2.6조달러 해양시장 정조준
자율운항 선박은 바다의 무한한 잠재력을 실현할 수 있는 핵심 열쇠다. 도로 위를 달리는 자율주행 자동차가 모빌리티의 영역을 확장했듯이 자율운항 선박은 인류가 드넓은 바다를 새로운 방식으로 정의하고 활용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자율운항 선박을 ‘바다 위의 테슬라’라고 부르는 이유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2030년 글로벌 해양 경제의 규모가 2조 6000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추산한다. 바다를 선박과 물류의 통로 창구로만 생각한다면 절대 이 시장을 선점할 수가 없다.
HD현대(267250)의 자회사 아비커스를 이끌고 있는 임도형(51) 대표는 누구보다 이를 잘 알고 있다. HD현대가 한국조선해양(009540) 자율운항연구실장이던 그를 2021년 아비커스의 대표에 앉힌 이유이기도 하다. 선박 제조 분야에서 국내 조선사들을 턱밑까지 쫓아온 중국과의 기술 격차를 다시 벌리기 위해서라도 아비커스의 성공이 중요하다.
아비커스는 HD현대의 자율운항 선박 시스템 개발 자회사다. HD현대 역사상 그룹 내 연구개발(R&D) 조직을 최초로 분사한 사례다. 자체 개발한 자율운항 기술을 활용해 2020년 4월에는 세계에서 처음으로 대형 상선용 항해 보조 시스템을 상용화하는 데 성공했다. 현재는 자율운항 2단계(선원의 개입 아래 자율운항) 수준으로 선원 없이 원격제어가 가능한 3단계 기술 개발에 속도를 내고 있다. 임 대표는 이달 초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세계 최대 전자·정보기술(IT) 전시회인 ‘CES 2023’에서 “한국조선해양에서 수주하는 모든 선박에 자율운항 솔루션을 적용해 자율운항 기술을 조기 상용화하겠다”고 밝혔다. 임 대표의 발언이 현실화되면 십수 년 안에 한국의 자율운항 기술이 적용된 대형 상선이 전 세계 바다를 본격 항해하는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임 대표가 조기 기술 상용화를 강조하는 것은 그만큼 국내 조선업이 백척간두에 처해 있음을 보여준다. 2000년 HD현대(옛 현대중공업(329180)) 공채로 입사한 그는 20여 년간 한국 조선업의 흥망성쇠를 지켜봤다. 2000년대 중반 쏟아지는 발주에 선박과 추가 도크를 동시에 짓는 일까지 벌어졌다. 그러다 2010년대 전 세계적인 불황과 가격 경쟁력을 확보한 중국 조선소의 추격에 한국 조선업은 서서히 경쟁력을 잃어갔다. 단순한 가격 싸움으로 수천억 원대 적자까지 기록한 국내 조선사들의 상황을 체감한 임 대표는 핵심 기술에 대한 우위를 선제적으로 점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절실히 깨달았다. 임 대표는 “인공지능(AI) 기반의 솔루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데이터 축적”이라며 “자율운항 솔루션의 조기 상용화를 통한 데이터 리더십은 아비커스의 가장 큰 경쟁력”이라고 말했다.
임 대표는 올해부터 한국조선해양의 조선 3사의 전체 수주 물량에 자율운항 솔루션을 적용할 방침이다. 이미 한국조선해양 산하 조선사들은 지난 50여 년간 수천 척의 선박을 건조하며 엄청난 양의 데이터를 확보하고 있다. 글로벌 자율운항 선박 시장을 선점하는 데 유리한 위치에 서 있는 것이다. 테슬라가 자율주행 자동차 시장에서 앞서가는 이유가 자동차 제조 기술이 아니라 막대한 데이터 수집과 분석 능력인 것처럼 아비커스도 한국조선해양의 조선 3사의 대규모 수주 물량을 통해 데이터 리더십을 확보해나갈 계획이다.
실제 임 대표의 속도전으로 아비커스의 자율운항 기술 개발 속도는 글로벌 경쟁사 가운데 가장 빠르다. 국내 조선 3사 모두 AI를 통한 자율운항 기술을 구현하고 있지만 상용화에 성공한 것은 아비커스가 현재까지 유일하다. 특히 아직 초기 자율운항 단계인 중국 조선소와 비교해도 기술 개발과 상용화 속도가 빠른 편이다. 아비커스의 항해 보조 시스템 ‘하이나스(HiNAS) 2.0’은 최근 세계 최초로 미국선급협회(ABS)로부터 인증서를 받기도 했다.
아비커스의 하이나스는 AI가 선박 주변을 자동으로 인식해 충돌 위험을 스스로 판단하고 이를 증강현실(AR) 기술로 보여준다. 특히 6개 광학 및 열화상 카메라를 이용해 야간 등의 시간 및 해무에 관계없이 전방 180도 내의 장애물을 자동으로 탐지하는 기능을 보유하고 있다. 임 대표는 “하이나스에는 딥러닝 기술이 적용돼 선원이 선박의 기존 센서로 장애물을 미처 발견하지 못해도 시스템이 자동 탐지해 위험을 경고하고 충돌을 방지하는 등 안전성이 크게 높아진다”며 “자율운항 기술을 통해 연간 수백 건에 달하는 충돌과 좌초에 의한 해양 사고를 막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HD현대의 조선 중간지주사인 한국조선해양은 전 세계 조선 1위 기업이지만 최근 중국 조선소의 저가 수주로 점유율이 지난 수년간 빠르게 빠지고 있다. 인력에 의존하는 전통적인 방식으로는 한국 조선업의 미래가 없는 것이 현실이다. 임 대표는 “중국 조선소의 인건비 경쟁력 우위에 국내 조선업이 넘어갈 뻔했다”며 “친환경과 디지털 R&D 확대로 조선 패러다임을 선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같은 조선업의 트렌드 변화에 따라 HD현대는 ‘오션트랜스포메이션(해양 대전환)’이라는 새로운 비전을 공개하며 기존 제조업 중심의 조선업에서 종합 해양 솔루션 기업으로 변신하겠다고 공언했다. 임 대표가 맡고 있는 자율운항뿐 아니라 친환경 에너지, 소형모듈원전(SMR) 등 다양한 친환경·디지털 사업을 확대하고 있다. 이 중에서도 가장 가시적인 성과를 내고 있는 것이 아비커스다.
글로벌 선주들도 아비커스의 자율운항 기술을 점점 신뢰하고 있다. 임 대표의 속도전으로 현재까지 아비커스의 자율운항 솔루션은 260건 이상의 수주 실적을 올렸으며 현재 30척 이상의 선박에 설치돼 실제 운항 중이다. 특히 지난해에는 SK해운과 함께 18만 ㎥급 초대형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 ‘프리즘커리지’호의 자율운항을 성공적으로 마쳤다. 이 선박에는 아비커스의 2단계 자율운항 솔루션 ‘하이나스 2.0’이 탑재됐다. 그간 소형 선박에 대한 자율운항 시도는 많았지만 대형 선박이 자율운항을 기반으로 태평양을 횡단한 것은 아비커스가 처음이다. 임 대표는 “이 선박은 자율운항 기술로 연료 효율을 7% 높이고 온실가스 배출도 5%가량 줄인 것으로 나타났다”며 “이 밖에 운항 중 다른 선박의 위치를 스스로 인지해 충돌 위험 상황을 100회나 회피했다”고 전했다.
이처럼 글로벌 조선 산업이 세계적인 환경 규제와 이에 따른 디지털 전환을 맞은 상황에서 임 대표는 하루라도 빨리 아비커스의 자율운항 기술을 국제표준으로 인정받아야 미래 조선업의 주도권을 확보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중국 조선소와의 원가 경쟁력에서 다소 밀리더라도 자율운항과 같은 기술을 통해 경쟁력을 높일 수 있다고 본 것이다.
LNG 화물창 기술에서 사실상 국제표준 역할을 하고 있는 프랑스의 GTT사의 경우 한 척당 100억 원이 넘는 기술 사용료 수익도 올리고 있다. 한 번 국제표준으로 인정되면 쉽게 되돌릴 수 없기 때문에 임 대표 역시 기술 상용화 속도에 총력을 다하고 있다.
임 대표는 정부도 설득해 선박의 자율운항 글로벌 기술 표준 정립과 각종 규제 타파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현재 국제해사기구(IMO)에 따르면 선박에는 반드시 견시 인원이 상주해야 한다는 규정이 있다. 이 때문에 자율운항이 상용화되기 위해서는 국제 규제 완화도 함께 선결돼야 한다. 이에 아비커스는 산업통상자원부가 진행하는 자율운항 기술 표준 정립에 참여하고 있다. 특히 아비커스와 정부의 노력으로 자율운항 선박 시험 운항 시에는 관련 법령 적용을 면제하는 규제특례법상 특례도 올 1분기 안에 법 개정 작업이 마무리될 것으로 전망된다.
임 대표는 자율운항 상용화를 확대하기 위해 주요 레저보트용 선박·엔진 기업으로부터 투자를 받을 계획도 세웠다. 임 대표는 “앞으로 많은 선박에 아비커스의 자율운항 기술이 들어가기 위해서는 속도전이 필요하기 때문에 이를 위해 해외 선박·엔진 기업에서 투자 유치도 받을 생각”이라고 설명했다. 투자와 사업 협력을 통해 아비커스의 자율운항 기술을 빠르게 보급하겠다는 전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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