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에 인생 바치긴 좀” “애 안 낳고파”…딩크족·비혼족 8인 심층 인터뷰
男연구자 라이언(45) “부모 역할과 책임, 내 부모님만큼 할 자신 없어”
女공무원 어피치(31) “아이 없어 덜 행복할 수 있지만…덜 불행하기도”
女직장인 춘식(37) “육아하면 모든 일상이 아이 위주…원하던 삶 아냐”
[헤럴드경제=배두헌·김빛나·박지영·김영철 기자] 국내 주민등록 인구는 2020년부터 2022년까지 3년 연속으로 감소했다. 청년들은 점점 더 결혼을 꺼리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2021년 혼인 신고를 한 부부는 19만2507쌍. 2011년 32만9087쌍에서 10년 새 41.5%가량 줄었다. 혼자 사는 1인 가구는 계속 늘어 전체 가구 수의 절반(41.0%, 972만4256가구)에 육박했고, 3인·4인 가구 이상 비중은 꾸준히 줄고 있다.
결혼한 부부도 아이는 한 명만 낳거나 아예 안 낳는다. 대한민국의 합계출산율(여성이 가임기간에 낳을 것으로 기대되는 평균 출생아 수)은 이미 지난해 2분기 0.7명대, 세계 최하위로 떨어졌다. 이대로 가다가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먼저 소멸할 것이라는 공포의 예측도 나온다. 대한민국은 과연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 걸까. 헤럴드경제가 신년을 맞아 결혼하고도 아이를 낳지 않는 ‘딩크(DINK)족’ 4인, 결혼을 포기한 ‘비혼족’ 4인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인터뷰는 전화, SNS 등 다양한 방식으로 진행됐으며, 그래픽은 개별 인터뷰 내용을 카카오톡 대화 형식으로 재구성했다. 이름은 ‘프로도’, ‘라이언’ 등 SNS에서 쓰이는 가명을 사용했다.
▶“육아에 젊음 전부 투자, 받아들이기 힘들어”=세종시에 사는 프로도(38·은행원)와 그의 아내는 결혼 5년차 부부지만 아이를 낳을 계획이 전혀 없다. 프로도는 “육아에 내 젊음을 다 쏟아붓고 싶지 않다”고 했다. 두 사람은 연애할 때부터 아이를 낳지 않기로 하고 결혼했지만 아직도 ‘아이를 낳으면 어떨까’에 대해 대화하고 상의할 때가 있다고 한다. 그는 “하지만 언제나 결론은 ‘딩크가 좋다’로 귀결된다”고 했다.
은행원 부부로 합산 연소득이 세전 1억5000만원인 프로도는 “여행이나 골프 등 즐기고 싶은 취미가 많아서 경제적으로도 딩크가 유리하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경제적 문제 때문에 딩크를 선택한 건 아니지만 일정 부분 영향이 있다는 것이다. 그는 저출산 문제가 국가적 이슈가 되면서 ‘사회적 책임감’ 같은 걸 느끼지 않냐는 질문엔 “공동체에는 미안한 일이지만 우리의 일을 선택할 때 가장 중요한 건 우리”라며 “타인을 위해 아이를 가질 수는 없지 않느냐”고 했다.
서울의 한 대학에서 연구교수로 일하는 라이언(45·연구원) 부부도 딩크족이다. 라이언은 “아이를 낳는다고 하면 온전히 한 사회인으로서 자녀를 성장시켜야 하는 게 부모의 역할이고 책임인데 그걸 우리 부모님만큼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자신감이 없었다”고 했다. 자식을 위해 모든 걸 헌신하고 희생했던 부모세대처럼 키울 자신이 없다는 것이다.
라이언 부부 역시 합산 연소득이 1억3000만원가량 되지만 경제적 여건이 딩크 이유로 일부 작용했다. 그는 “뉴스에서 보면 자녀 1명 대학졸업까지 약 2억원 정도 든다고 하지 않나”라며 “물론 우리가 2억원이 없어서 안 낳는 건 아니다. 하지만 2억은 최소 금액이고 거기서 얼마나 더 해줄 수 있느냐가 관건 아니냐”고 반문했다.
다만 라이언 부부의 양가 부모는 지금도 손주를 기다린다고 한다. 그는 “처음엔 ‘저러다가 언젠간 낳겠지’라고 우리의 딩크 선언을 안 믿는 눈치였는데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라며 “부모님이 아무리 원하셔도 결정권은 우리에게 있다”고 했다.
▶“아이 없으면 덜 행복할 수 있지만 덜 불행할 수 있어”=서울 강서구에 사는 9급 공무원 어피치(31·여)는 성장 과정에서부터 ‘난 아이를 낳지 않겠다’는 생각을 굳히고 남편의 동의를 얻은 케이스다.
어피치는 “우리 부모의 의도와는 달리 그 누구도 잘못하지 않았지만 가정사로 불행해지는 순간이 있었다”며 “아이가 행복하도록 부모가 아무리 최선을 다해도 운이 나쁘면 불행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내가 불행한 건 괜찮아도 누군가를 책임지며 불행하게 만드는 건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했다.
그는 “남편은 ‘결혼하면 애는 당연히 낳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었지만 사귈 당시 헤어질 각오를 하고 진지하게 내 입장이 얼마나 공고한지 설명했고 이를 받아들여 줬다”며 “오히려 친정어머니가 몇 달 동안 잘못됐다고 얘기를 하셨다. 설득하기 위해 딩크 관련책도 보내고 유튜브 영상도 보내고 깊은 대화를 나눈 후부터 제 생각을 이해해주신다”고 말했다.
어피치는 “물론 아이를 낳아 키우면 보람도 있겠지만 내 시간이 너무 부족하고 내 젊은 시절이 그냥 휙 지나갈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며 “아이가 없는 삶이 아이 있는 삶보다 덜 행복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내겐 덜 행복하더라도 ‘덜 불행할 수 있는 삶’이란 생각이 든다”고 했다.
경기도에 사는 IT기업을 다니는 춘식(37·여)은 육아가 너무 힘들어 우울증을 앓거나 아이를 낳은 걸 후회하는 주변 사람들의 모습을 보고 딩크가 될 마음을 굳혔다.
결혼 5년차인 춘식은 “부부가 둘이 좋아 결혼했는데 아이를 낳고서는 ‘○○엄마, ○○아빠’라는 부모의 삶을 살게 되더라”며 “육아하는 부부를 보면 모든 일상이 아이 위주로 돌아가는데 그건 제가 원하던 삶이 아니다”고 했다.
딩크를 택하긴 했지만 아쉬움이 느껴졌다. 그는 “나는 아이를 싫어하는 게 아닌데 아이를 키우는 데에 지는 부담이 너무 크다. 여성의 희생이 더 많이 따르는 것도 사실”이라며 “사회 시스템이 부모로 사는 삶과 나 자신의 삶의 밸런스를 맞춰줄 수 있다면 아이를 낳는 일에 대한 고민이 조금은 줄어들 수 있지 않을까 싶다”고 했다.
나중에 후회할 수도 있다는 불안감도 여전히 마음 한구석에 남아 있다. 그는 “과거 불임·난임 같은 비자발적 딩크와 달리 지금 젊은 세대의 자발적 딩크는 앞서 간 선배, 선례가 적으니까 ‘나중에 후회하면 어쩌지’ 하는 걱정이 있는 게 사실”이라고 했다.
▶“비혼 결심? 아이 안 낳고 싶어서요”=경기도 김포에 사는 네오(30·여·중소기업 회사원)는 결혼적령기인데도 확고한 비혼주의자로, 부모님에 대한 설득이 이미 끝났다.
그는 “성장기 때 부모님이 많이 싸우셨다. 어릴 때부터 가정을 이루는 게 행복하지만을 않다는 걸 보면서 자라 결혼에 대한 환상이 없고, 혼자 사는 게 충분히 즐겁기 때문에 결혼할 마음이 생기지 않는다”고 했다. 장애가 있는 남동생을 돌봐야 한다는 책임감도 작용했다.
그녀의 비혼 선택은 출산을 거부하는 것과 맞닿아 있다. 네오는 “친언니가 출산 직전 만삭에도 일을 대신할 사람이 없어 무리하게 회사 출퇴근을 하다가 병원에 가는 등 마음 아픈 일이 많았다”며 “비혼을 결심하게 된 것에는 아이를 낳지 않고 싶은 마음도 있다”고 했다.
미국에 거주 중인 대학원생 무지(32·여)도 마찬가지다. 그는 “딩크를 약속하고 결혼한다고 해도 내 의지와 달리 떠밀려서 아이를 갖게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결혼에 부정적이 됐다”며 이미 수년 전부터 자신이 비혼주의자임을 주변에 알려왔다.
세상이 너무 치열하고 각박해 아이를 낳고 싶지 않다는 게 무지의 생각이다. 그는 “아이가 내가 커온 환경처럼 성적지상주의로 인해 고통을 겪는 게 싫다”고 했다. 그는 대학입학과 대학원, 현재 박사과정까지 끊임없이 공부를 하고 있다.
생명공학 관련 박사과정이라는 무지는 “생물학적 관점에서 보면 동물도 모체(母體)가 살기 힘든 상황에서 가끔 후손을 포기한다”며 “인간이 후손 낳기를 포기하는 건 우리가 스스로를 부양하기도 힘든 상황이기 때문 아닐까 싶다”고 말했다.
▶“자식 키우는 게 행복? 너무 많은 걸 포기하던데”=광고회사 PD로 일하는 직장인 튜브(29)는 남성인데도 ‘육아 거부’가 비혼을 택한 가장 큰 이유다. 그는 “부모님은 결혼해서 자식 키우는 게 또 하나의 행복이라고 하시지만 당신들도 넋두리처럼 ‘내가 결혼을 안 했다면’ ‘애가 없었다면 뭘 하지 않았을까’ 같은 말을 하시지 않나”라며 “결혼하고 자식을 키우려면 너무 많은 것을 포기하고 살아야 한다는 걸 깨달으면서 비혼을 결심했다”고 말했다.
튜브는 결혼 자체가 남녀 모두에 ‘불행’으로 그려지는 최근 유행 콘텐츠들에 매우 공감한다고도 했다. 그는 “아내에게 통장관리를 맡기는 남편은 경제권을 잃고 혼자일 때보다 적은 예산으로 살아가고, 아내들은 독박육아를 하거나 명절음식 준비 등 가부장적 문제들이 여전한 모습”이라며 “결혼을 안 하고 혼자 사는 게 행복하다는 내용들에 전적으로 이해되고 공감된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경제적 문제로 포기하는 ‘비자발적 비혼’에 대한 지원은 필요하다고 했다. 튜브는 “지인 중에 결혼을 결심하고 집을 구하러 다니다가 결혼을 포기하고 연애로 돌아간 분들이 종종 있었다”며 “당장 집 살 대출금 지원해주고 육아비를 지원해주기보다는 지방 인구분산을 통한 집값 하락, 지역일자리 등 국가의 전체적인 인프라 개선이 있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내로라하는 국내 5대 그룹 계열사에 다니는 제이지(51·대기업)도 자녀를 낳고 싶지 않아 비혼을 택했다. 제이지는 “결혼은 백번 양보해서 하더라도 출산은 절대 안 된다. 타협할 수 없는 부분”이라며 “대한민국에서 애를 낳아 초·중·고교, 사교육, 대학 등을 부담할 자신이 없다. 가령 내 자식을 하버드로 보낸다고 하면 내가 유학생활을 했던 것에 2배 이상은 족히 써야 하는데 가능할까. 교육 관련대책이 시급하다”고 했다.
그는 “앞으로 시간이 더 지나면 ‘결혼이 선택’이라는 의식이 더 정착될 것 같다”며 “비혼이 자연스러워지는 건 다양성을 존중하는 사회에서 나오는 당연한 현상”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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