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경원, 대통령이 그간 처신 어찌 생각할지 본인이 잘 알 것”···尹, 여당 전대 노골적 개입
윤석열 대통령과 나경원 전 국민의힘 의원이 17일 정면 충돌했다. 나 전 의원이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직 해임은 “(윤석열) 대통령의 본의가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하자 윤 대통령이 김대기 대통령 비서실장을 통해 “정확한 진상 파악에 따른 결정”이라고 즉각 반박했다. 전당대회 규칙 개정, 나 전 의원 저출산위 부위원장직 해임에 이은 윤 대통령의 노골적 당대표 선거 개입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나 전 의원은 이날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쓴 글에서 “저에 대한 해임은 분명 최종적으로 대통령이 내린 결정일 것”이라면서도 “대통령이 결정을 내리기까지 저의 부족도 있었겠지만 전달 과정의 왜곡도 있었다고 본다. 그렇기에 해임이 대통령의 본의가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윤 대통령 주변 참모들의 ‘왜곡된 전달’로 윤 대통령이 ‘본의 아닌 결정’을 내렸다고 주장한 것이다. 윤 대통령은 지난 13일 나 전 의원을 저출산위 부위원장직과 기후환경대사직에서 해임했다.
나 전 의원은 “윤석열 정부 성공과 내년 총선 승리를 위해 국민과 대통령을 이간하는 당대표가 아닌, 국민의 뜻을 있는 그대로 전달하고 일부 참모들의 왜곡된 보고를 시정하는 당대표가 필요하다”며 “대통령을 에워싸서 눈과 귀를 가리는 여당 지도부는 결국 대통령과 대통령 지지세력을 서로 멀어지게 할 것”이라고 밝혔다. 윤 대통령은 옹호하고 ‘윤핵관’(윤 대통령 측 핵심 관계자)은 비판하는 분리 대응 전략을 취한 것이다.
아랍에미리트(UAE)를 순방 중인 윤 대통령은 나 전 의원이 글을 쓴 지 6시간도 되지 않아 이에 정면 반박하는 입장을 내놨다. 김대기 비서실장은 이날 출입기자단에 “대통령은 누구보다 여러 국정 현안에 대해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다”며 “나 전 의원 해임은 대통령의 정확한 진상 파악에 따른 결정”이라고 전했다. 김 실장은 “국익을 위해 분초를 아껴가며 경제외교 활동을 하고 있는 대통령이 나 전 의원의 그간 처신을 어떻게 생각할지는 본인이 잘 알 것”이라고 했다. 윤 대통령이 나 전 의원 행보로 순방 성과가 가려지는 데 대한 불쾌감을 감추지 않은 것이다. 윤 대통령이 사실상 ‘당신은 내 사람이 아니다’라고 공표했다는 해석이 나온다.
윤 대통령이 직접 나서면서 나 전 의원은 점점 고립되는 형국이다. 친윤(석열)계인 박수영·배현진·유상범·이용 의원 등 여당 초선의원 48명은 이날 성명을 내고 “말로는 대통령을 위한다면서 대통령을 무능한 리더라고 모욕하는 건 묵과할 수 없는 위선이며 대한민국에서 추방돼야 할 정치적 사기행위”라며 나 전 의원에게 대통령에 대한 공식 사과를 촉구했다. 국민의힘 초선의원은 총 63명이다.
‘윤심(윤 대통령 의중) 후보’인 김기현 의원은 “대통령이 먼 나라까지 가서 세일즈 외교를 펼치는데 국내에서 대통령의 해임 결정을 자신의 정치적 이익을 위해 왜곡 해석한다면 온당한 태도가 아니라고 본다”며 “당의 자산에서 분열의 씨앗으로 변하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란다”고 말했다. 홍준표 대구시장은 SNS에서 “아직 임기가 4년도 더 남은 대통령을 진심으로 위한다면 이제 그만 자중하는 게 좋지 않을까”라고 했다.
나 전 의원 측은 “대통령비서실장의 입장문과 초선의원 성명서에 대해 그 배경과 파장에 대해 깊이 숙고하며 특별한 입장이 없다”고 전했다.
이번 사태의 직접적인 발단은 나 전 의원의 ‘출산시 부채 탕감 검토’ 발언이다. 하지만 이는 나 전 의원 당대표 출마를 막기 위한 구실에 불과한 것으로 보인다. 나 전 의원 발언 이후 대통령실에서 나 전 의원에 대한 거친 비판이 쏟아졌고, 장제원 의원 등 국민의힘 내 윤핵관들도 “유승민·이준석과 뭐가 다르냐” “반윤의 우두머리”라고 맹비난했다. 이날 김 실장이 낸 입장으로 대통령실·윤핵관의 나 전 의원 비난에 윤 대통령 뜻이 담겨있음이 명확해졌다.
여당을 자신의 ‘2중대’로 만들기 위한 윤 대통령의 무리한 당무 개입은 대통령 취임 이후 계속돼 왔다. 지난해 7월 윤 대통령의 “내부총질 당대표” 문자 메시지 노출 이후 이준석 당시 국민의힘 대표가 결국 쫓겨났다. 친윤계가 당헌·당규까지 개정해가며 이 전 대표를 몰아내는 과정에서 국민의힘은 석 달 동안 지도부가 세 차례나 바뀌는 극심한 혼란을 빚었다. 국민의힘이 당내 강한 반발에도 민심을 배제하는 ‘당원 100%’로 전당대회 규칙을 개정한 것도 자신의 뜻을 거스르지 않을 당대표를 세우기 위한 윤 대통령 의중이 강하게 반영됐다.
한 여당 의원은 “대통령과 윤핵관들의 행동이 너무 지나치다”며 “공포감마저 느껴진다”고 말했다. 김형오 전 국회의장은 지난 15일 “과연 나 전 의원이 그렇게 비난받을 일을 했는가. 당내에서 이만한 일도 용납되지 않는다는 말인가”라며 “선거도 하기 전에 내부 갈라치기부터 하면 선거 후의 모습이 지극히 우려스럽다”고 밝혔다.
정대연 기자 hoan@kyunghyang.com, 유설희 기자 sorry@kyunghyang.com, 이두리 기자 red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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