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경원의 ‘꺾이지 않는 마음’ [아침햇발]
[아침햇발]
최혜정 | 논설위원
당대표 출마를 고려 중인 나경원 국민의힘 전 의원은 요즘 윤심의 ‘심판대’에서 처절한 생존투쟁을 벌이는 중이다. 4선 관록 중견 정치인의 ‘출마할 자유’는 “정치낭인에 둘러싸인 헛발질”(장제원 의원)로 규정됐고, 까마득한 후배 의원들은 “羅(나) 홀로 집에” 패러디를 공유하며 조롱한다. 시도 때도 없이 자유를 외치던 윤석열 대통령은 나 전 의원의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 사직서 제출에는 사감 가득한 해임으로 답했다. 사실상 집단 괴롭힘의 현장인데, 이는 나 전 의원의 퇴로를 막아 출마로 내모는 역설로 이어지는 중이다.
나 전 의원은 연일 ‘윤핵관’(윤석열 핵심 관계자)을 겨냥하는 메시지를 내며 출마 채비를 서두르고 있다. 여권 내 지지율 1위인 나 전 의원의 출마는 윤 대통령이 구상한 계획은 아니다. ‘내부 총질하는 당대표’에 지친 윤 대통령이 원하는 대표상은 ‘스타’보다는 ‘머슴’에 가까워 보인다. 지난해 10월 윤 대통령이 나 전 의원을 대통령 직속 위원회의 장관급 자리에 임명하고, 차세대 의제를 수행하는 기후환경대사까지 얹어준 것은 ‘출마 생각 말고 공직에 매진하라’는 신호라는 게 정설이었다.
하지만 나 전 의원은 그간 불출마를 언급한 적이 없다. 되레 “비상근 자리여서 (출마에) 제한이 있는 것은 아니다”라고 출마 의지를 내비쳐왔다. 무엇보다 ‘선거만 있으면 나온다’는 수군거림이 있을 정도로, 그는 주요 선거판이 열릴 때마다 어김없이 등판해 남다른 권력의지와 승부욕을 과시해왔다. 최근만 해도 2020년 총선→2021년 서울시장 경선→2021년 당대표 선거에 쉼 없이 등장했다. 그런 그가 총선 공천권을 쥔 차기 당대표를 먼저 포기할 것으로 보는 이는 많지 않았다. 공직 임명은 그의 선거 본능을 선제적으로 제어하는 교통정리 시도였고, 이에 사직서는 ‘배신’으로 받아들여졌다. ‘집단 린치’는 이에 대한 응징이다.
개인의 참정권이 헌법에 보장된 민주국가에서 당대표에 출마하는 것이 대역죄 취급을 받을 이유는 없다. 오히려 많은 이들은 집권여당의 비상식적 행태를 보며 2016년의 ‘진박 감별사’ 기억을 소환한다. 박근혜 청와대의 ‘진정한 박근혜계’(진박) 공천 주문에, 이른바 ‘진박 감별사’들이 전국을 다니며 인증에 나섰다. 진박 일색 공천에 반발한 ‘비박’(비박근혜계) 김무성 대표가 공천안 날인을 거부하며 직인을 들고 지역구로 내려가버린 ‘옥새 들고 나르샤’ 사건은 국민의힘의 흑역사다. 결과는 집권당의 참패였다. 대통령실과 친윤 그룹은 당대표는 확실한 자기 사람으로 앉혀야 이런 사달을 미연에 막고 일사불란한 국정운영을 펼칠 수 있다고 확신하는 것 같다. 공천권을 무기로 국회의원들을 줄 세워 ‘윤석열당’으로 재편하는 것은 물론이다.
이를 위해 국민의힘은 여론조사 1위를 기록하던 유승민 전 의원을 배제하려 토론 한번 없이 당원 100% 투표로 규칙을 바꿨고, ‘친윤’ 대표를 안정적으로 뽑겠다며 결선투표제를 도입했다. 나 전 의원을 주저앉히기 위한 공개적인 모욕과 겁박도 서슴지 않고 있다. 김대기 대통령 비서실장은 17일 입장문까지 내어 “대통령께서 나 전 의원의 처신을 어떻게 생각하실지는 본인이 잘 알 것”이라며 쐐기를 박았다.
윤 대통령이 자신의 국정 철학과 가치를 공유하는 당대표를 원하는 것을 탓할 바는 아니다. 하지만 그 철학과 가치가 무엇인지를 설명한 적은 없다. 그러니 전당대회 내내 ‘윤석열 정부 성공’만 반복될 뿐, 무엇을 어떻게 성공시키겠다는 것인지 말하는 이를 찾을 수 없는 것이다. 전당대회 때마다 등장하던 그 흔한 ‘수평적 당-청 관계’ 공약 역시 자취를 감췄다. 윤심을 업은 ‘김-장(김기현-장제원) 연대’는 누가 배추고 누가 양념이냐는 조롱을 받는다. 철학이나 정책은 없고 ‘윤심팔이’만 난무한다.
나 전 의원이 당대표에 출마할지 여부는 결정되지 않았다. 나 전 의원은 당내 주류에 맞선 경험은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오히려 권력 주변을 맴도는 ‘곁불 정치’에 익숙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가 ‘본의 아니게’ 투사로 변모한다면, 이는 정치생명을 옥죄어 퇴로를 막아버린 윤 대통령이 자초한 것이다. 2016년의 집권당 총선 참패는 권력에 반기를 든 김무성 대표의 일탈 때문이 아닌, 권력의 오만에 민심이 등 돌린 결과였다. 나 전 의원의 출마는 결과와 관계없이 집권세력의 독선에 경종을 울리는 계기가 될 것이다. ‘나경원 소탕 작전’의 결말이 궁금한 이유다.
id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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