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적 파장 일으킨 윤 대통령의 ‘가벼운 입’···단순하고 편향된 국제정세 인식이 문제라는 지적도
윤석열 대통령의 ‘가벼운 입’이 또 논란을 낳고 있다. 이번에는 국내 문제가 아닌 국제적 이슈, 그중에서도 중동 국가들과 미국 등 서방의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힌 민감한 문제에 대한 발언이어서 상당한 외교적 파장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아랍에미리트연합(UAE)을 국빈 방문 중인 윤 대통령은 지난 15일 UAE에 파병된 아크부대를 찾아 장병들을 격려하는 자리에서 “우리의 형제 국가인 UAE의 안보는 바로 우리의 안보”라며 “UAE의 적은, 가장 위협적인 국가는 이란이고 우리 적은 북한이기 때문에 우리와 UAE는 매우 유사한 입장”이라고 말했다. 이 발언은 UAE와 이란을 적으로 단정했다는 점에서 문제다. 또 UAE가 한국과 형제 국가라고 설명함으로써 한국과 이란은 적이라는 논리가 성립될 수 있는 위험한 발언이다. UAE가 이란과 껄끄러운 관계인 것은 맞지만, 중동의 정세가 이같은 단순한 논리로 정리될 수 있는 상황은 아니기 때문이다.
UAE와 이란은 각각 이슬람 수니파와 시아파 국가로 종교적 배경이 다르다. 또 페르시아만의 아부 무사 섬 등을 놓고 영토 분쟁을 겪고 있다. UAE가 국경을 맞대고 있는 중동의 강국 이란으로부터 위협을 느끼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윤 대통령의 발언은 이같은 상황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UAE가 이란과 오랜 갈등을 겪었다는 점, 미국과 이란이 적대적 관계를 형성하고 있고 미국이 UAE의 전략적 중요성을 인정하고 있다는 점 등을 근거로 미국과 UAE가 이란에 대해 같은 입장을 갖고 있을 것이라고 판단했을 개연성이 높다. 하지만 중동 정세를 세밀히 살펴보면 UAE와 이란, 미국의 관계가 매우 복잡하고 중층적으로 엮여 있음을 쉽게 알 수 있다.
UAE와 이란은 경제·안보적으로 서로 무시할 수 없는, 매우 조심스러운 사이다. 두 나라의 교역량도 상당하다. 관계가 좋지 않을 때도 두바이를 통한 밀무역이 성행했다. 이같은 상호 의존성 때문에 두 나라는 물밑에서 관계 회복을 모색해오다 2021년 UAE가 이란에 특사를 파견한 것을 계기로 다시 화해 분위기를 조성했고 지난해 8월 UAE가 다시 테헤란에 대사를 파견해 관계를 복원했다. 미국과 UAE의 관계도 조 바이든 정부 들어 변화의 조짐을 보이고 있다. 전임 도널드 트럼프 정부 때 아브라함 협정을 맺고 미국산 무기를 수입했던 UAE는 바이든 정부가 이란과의 핵협정(JCPOA)를 복원하려는 시도에 반발해 중국에 손을 내밀었다.
대통령실은 “UAE가 당면한 엄중한 안보 현실을 직시하면서 열심히 근무하라는 취지에서 하신 발언”이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윤 대통령의 이번 발언은 가뜩이나 살얼음판을 걷고 있는 이란과의 관계를 악화시킬 수 있는 위험이 있는데다 UAE까지도 난처하게 만들 수 있는 ‘대형 사고’다.
실제로 이란은 16일(현지시간) 윤 대통령의 발언에 대해 공식적으로 문제를 제기했다. 나세르 칸아니 이란 외무부 대변인은 윤 대통령의 발언에 대해 “완전히 무지하다”면서 “외교적으로 부적절한 한국 대통령의 발언을 심각하게 지켜보고 있고 있으며 한국 외교부의 설명을 기다린다”며 공개 해명을 요구했다. 이에 외교부는 17일 “장병 격려 차원 말씀”이라며 “이란과의 관계 등 국가 간의 관계와는 무관한 바, 불필요하게 확대해석되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고 재차 해명했다.
하지만 정부의 해명에 대해 국내에서도 강한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한 외교소식통은 “대통령이 하지 말아야 할 발언을 해놓고 ‘불필요한 오해’를 하지 말라는 것은 상대 입장에서 보면 적반하장”이라며 “실수를 인정하고 사과하는 것이 먼저”라고 지적했다. 다른 소식통은 윤 대통령의 핵보유 발언·일본 방위비 증강 관련 발언 등을 지적하면서 “외교·대외전략과 관계된 사안에 대해 대통령이 너무 단순하고 안이한 인식으로 문제 발언을 계속 쏟아내고 있다”고 우려를 표시했다.
일각에서는 대통령실 참모들이 대통령에게 브리핑을 잘못한 게 아니냐는 비판을 제기하고 있다. 대통령의 공개적으로 위험한 발언을 한 것에 대해 외교안보 참모들이 책임져야 한다는 것이다. 반면 윤 대통령의 잘못이 더 크다는 지적도 많다. 외교 의전에 밝은 한 소식통은 “대통령 발언에 대본 써주듯 세세하게 개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면서 “본인이 정확히 이해하고 신중하게 판단해서 해야할 일”이라고 말했다.
이번 발언이 단순 실수가 아닌 대통령의 국제관계에 대한 잘못된 인식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복잡한 국제정세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전략적 사고 대신 외교 상대국마저 ‘아군과 적군’으로 편을 갈라 구별하려는 편향적 인식에서 나온 발언이라는 해석이다. 외교관 출신의 전직 관료는 “대외관계에 대한 대통령의 발언은 전세계가 오디언스이기 때문에 매우 신중하고 계산적이어야 한다”면서 “불필요한 오해를 막기 위해 대통령의 공개발언 기회를 지금보다 줄이는 것이 필요해 보인다”고 말했다.
유신모 기자 simo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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