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24시] MZ 농부를 맞을 준비
I턴 현상이라는 말이 있다. 도시 토박이가 농촌으로 이주하는 걸 뜻한다. 1980년대 일본 도쿄 북서쪽 150㎞에 있는 나가노현에서 월급쟁이들에게 이주를 권유하면서 생긴 말인데, 도시에서 시골로 이동하는 동선이 직선 I자와 같아 이러한 이름이 붙었다. 한국 농촌도 그런 일이 흔해질 시기가 됐다. 과거 귀농은 고향으로 돌아가는 U턴을 뜻했다. 대부분이 도시에 사는 요즘엔 어떤 청년이 귀농했다면 그건 U턴보다는 I턴일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그들은 과거 농부와는 많이 다르다. 지난주 인터뷰했던 귀농 청년도 그랬다. 그들을 추동하는 건 고향의 노스탤지어가 아니고, 학교에서 배운 농업 지식과 정보통신기술과 농업을 결합할 줄 아는 개방성이고 창의성이다. 다른 MZ세대와 마찬가지로 합리와 공정에도 민감할 수밖에 없다. 디지털화된 비닐하우스를 차리고, 그 안에서 허리를 꼿꼿이 세운 채 스마트 모빌리티를 타고 누비며 농작물 상태를 확인한다. 인맥보다는 자신만의 브랜드로 온라인쇼핑몰에서 판로를 개척한다.
반면에 농촌은 그들을 맞을 준비가 돼 있지 않은 것 같다. 귀농 청년은 가장 어려운 점으로 판로 확보를 꼽았다. 청년 농업인은 텃세와 거래처와의 신뢰 관계 부족으로 공판장에서 농산물의 제값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지역 농업박람회, 행사 등에서 자리를 잡는 게 혈연, 지연으로 결정되는 경우가 여전히 많다. 이장이 귀촌 청년에게 마을발전기금을 요구한 사례가 보도된 적도 있다.
청년 농업인 증가는 농업 경쟁력을 강화하는 원동력으로 얘기된다. 플랫폼 산업을 기반으로 하는 스마트 영농부터 1차 산업에 2차, 4차 산업과 융합해 고부가가치를 만들어내는 농업까지 귀농은 진화에 진화를 거듭할 수도 있다. U턴보다 I턴의 성공 확률이 높다는 전문기관의 조사도 있다.
농촌의 어른이 보다 넓은 품으로 청년을 품어야 한다. 농업법인, 협동조합, 지역사회 농업인 등이 나섰으면 한다. 농민이 되려는 청년에게 2년 정도 파종부터 판매까지 모든 과정을 직접 경험해 볼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다. 판로 확보를 돕고 농산물 판매 수입을 가져가는 즐거움도 느끼게 해줘야 한다. '새파랗게 젊다는 게 한밑천'이라고 했다.
[이효석 오피니언부 thehyo@m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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