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춘추] 세브란스씨가 쏘아 올린 작은 공
지난해 12월 성탄주간은 귀한 이야기 덕분에 따뜻했다. 10년 전 세브란스병원에서 수술비를 지원받은 소녀가 성인이 돼 첫 월급을 다시 환아 치료 기금으로 기부한 것이다. 자신이 받은 사랑을 다른 아이들도 느낄 수 있으면 좋겠다고 한다.
필자가 일하는 연세대의료원도 138년 전 제중원의 알렌이라는 의료선교사로부터 시작해 미국의 독지가 세브란스 씨의 1만달러 기금으로 자라난 기관이다. 이젠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의료기관으로 기금을 통해 국내는 물론 세계 각국의 어려운 환자를 치료해주고, 그들 국가의 의료인재들을 교육해 자국에서 스스로 병원을 운영하고 의술을 펼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기부의 선순환'이다.
안타깝게도 우리나라의 기부 온도는 여전히 차갑다. 영국 자선지원재단(CAF)의 '2022 세계기부지수' 발표에 따르면 우리나라 기부지수는 119개국 중 88위로 하위권에 머물러 있다. 국내총생산(GDP) 10위 성적과는 대조적이다.
세계에서 기부문화가 가장 잘 발달한 미국의 경우 2020년 한 해 동안 미국인들이 국내외에 기부한 액수는 총 4714억달러(약 588조원)라고 한다. 올해 한국 정부 예산(639조원)에 버금가는 액수다.
두 국가의 온도 차는 어디서 생겼을까. 필자는 '기부'에 대한 태도와 '기부를 받는 기관'에 대한 개념 때문이라 생각한다. 아직 우리나라에선 기부는 돈 많은 부자나 기업들이 하는 거고, 기부는 받는 기관에 득이 되는 행위로 여겨지는 것 같다.
기부는 '누구나' 참여할 수 있으며 기부를 받는 기관은 그 선한 의지를 실천할 수 있도록 '돕는 곳'이다. 위의 소녀와 같은 이야기가 알려지고,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차원의 기부 지원 정책이 맞물려 기부의 문턱이 조금씩 낮아지는 것 같다. 기부를 받는 기관들도 그 명분을 명확히 하고, 사용처에 대한 투명성을 높이며 기부자의 의도가 잘 실천되고 있는지를 알리는 데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런 노력의 변화는 의료계에서 먼저 보이는 것 같다. 2020년 상급종합병원 기부금 수입이 전년 대비 평균 160% 이상 증가했다. 특히 코로나19가 대거 발생한 대구·경북 지역 병원들을 중심으로 그 증가세가 두드러졌다. 2022년 연세대의료원에 답지한 기부금 총액도 400억원을 넘었다. 특히 국내에서 처음으로 가동을 앞두고 있는 중입자치료기를 직접 본 기부자들이 자신의 기부가 암환자들에게 큰 희망이 될 것에 자부심을 느끼고 추가로 기부를 약정하기도 했다. 이처럼 전염병과 난치병에 대응하는 병원의 역할과 사명에 사람들이 공감했고, 단순한 치료 공간이 아닌 사회문제에 대한 의학적 해결책을 구해내는 '공적 기관'으로 보기 시작한 것이다.
기부받는 기관의 행보가 기부자들의 마음을 움직여 하나의 문화를 조성한다. 의료기관들은 그 기대에 부응할 수 있도록 질병 퇴치, 난치병 극복을 위한 연구에 더욱 노력해야 할 것이다. 이번 겨울을 따뜻하게 해준 소녀의 이야기가 계속 이어지길 기대한다.
[윤동섭 연세의료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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