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급 경제위기' 언론이 부추기는 것 아닌가
경기침체? 경제위기? 용어 혼용하며 긴장감 조성
외신, 전문가들은 '침체' 선호, 국내언론 제목에선 '위기' 둔갑
한국은행 "지나친 우려 경제위기 자초한다" 경계
"위기는 주관적 단어…필요한 부분 한정해 정확하게 써야"
[미디어오늘 박재령 기자]
2023년 새해가 밝으면서 경제전망 기사가 쏟아지고 있다. '경기침체', '경제위기' 등의 단어가 긴장감을 조성한다. 정말 올해는 한반도가 휘청일 정도로 '위기'일까. 전문가들은 명확한 정의는 없지만 '침체'와 '위기'는 구분해야 한다고 말했다. 경각심을 가지는 것은 좋지만 위기를 남발해선 안 된다는 지적이다.
올해 한국이 저성장 국면에 들어섰다는 건 세계 공통적인 의견이다. IMF는 한국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2%로 잡았고 OECD는 1.8%, 기획재정부는 1.6%로 잡았다. 대체로 국내외 기관들은 1%대 중반으로 한국 경제성장률을 예상했다.
이를 놓고 '경기침체'와 '경제위기'라는 평가가 공존한다. SBS는 6일 기사에서 “2023년도에 심각한 경기침체와 경제위기가 온다는 전망이 우세하다”고 했고 연합뉴스는 2일 기업 총수와 금융CEO들의 목소리를 전하며 '경제위기'라는 제목을 달았다. 뉴스1은 5일 기사 본문에선 '경기침체'라고 했지만 제목에선 '경제위기'라고 했다. 전문가들이 '경기침체'라고 해도 제목에서 '경제위기'로 둔갑하는 식이다. 이외에도 '몰아치는 경제위기', '역대급 경제위기' 등의 표현이 난무했다.
언론과 달리 전문가들은 '경기침체'라는 표현을 선호한다. '위기'는 1997년 IMF 금융위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최근의 팬데믹 경제위기 등 역성장이 예상되는 굵직한 사건들에만 붙었다. 김광석 한국경제산업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지난 3일 유튜브 '삼프로TV'에서 “60년대 이후 국내엔 4번의 경제위기가 있었다. 위기와 침체는 구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개인적으로 경기침체 정의를 잠재성장률에 못 미칠 때라고 본다. 지금 2%도 안 되기 때문에 경기침체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해외에서도 마찬가지다. 지난 16일(현지시간) 개최된 다보스포럼에선 세계 경제학자 3분의 2가 올해 글로벌 경기침체(recession)가 올 것이라고 예상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15일 경제학자 71명을 대상으로 지난 6~10일 설문한 결과 61%가 향후 12개월 동안 경기침체(recession)를 예상했다고 보도했다. 구글에 영어로 '경제위기(economy crisis)'를 검색해봐도 외신은 '침체(recession)'라는 표현을 쓰고 있다.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부 교수는 16일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언론에선 경제위기라고 흔히 쓰는데 명확한 정의가 있는 말은 아니다. 경기침체라는 용어도 앞뒤 흐름을 봐야 하기 때문에 마찬가지”라며 “경제위기는 주관적인 부분이 많이 들어가 있다. 어느 기업의 오너가 직원들을 격려하며 '우리는 위기'라고 할 수도 있는 것이다. 사용자가 어떤 의도를 가지고 이야기하느냐가 중요해 보인다”고 말했다.
한국의 '경제위기'설은 경제성장률이 3%대를 기록했던 2017년과 2018년에도 등장했다. 세계일보는 2017년 1월 'IMF 외환위기 다시 오나? 고개 든 韓 경제 위기설'이라는 칼럼을 냈고 매일경제는 '美·中·日이 삼성 반도체 타도 협공, 한국 경제 위기다'라는 사설을 냈다. 매일경제는 사설에서 “미국·중국·일본과 국내의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며 정부에 반도체 관련 규제 완화를 요구했다.
하준경 교수는 “위기라는 단어를 언론이 자주 쓰는 경향이 있긴 하다. 지난 20년 언론보도만 놓고 보면 경제가 위기가 아니었던 적이 없다. 객관적으로 지표들이 괜찮아도 경제는 항상 위기라고 주장했다”며 “경제는 심리적인 영역이 크다. 아무래도 위축되는 효과가 있어서 위기 표현을 남발하면 진짜 위기가 올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한국은행은 실제로 올해 지나친 우려가 경제위기를 자초한다고 경계했다. 이종렬 한은 부총재보는 지난 9일 한국은행 블로그에서 “향후 닥쳐올 위험요인에 적극 대비하는 것은 반드시 필요하지만 그 위험을 지나치게 확대해석하거나 위험 대응능력을 현실과 다르게 과소평가해 오히려 위험을 증폭시키는 우를 범하지 말아야 할 것”이라며 “현재의 위험도 올바른 정책 대응으로 관리 가능한 수준”이라고 했다.
2019년 '미디어공공성포럼 세미나'에서 이봉수 당시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대학원장은 “경제 관련 '가짜뉴스'는 통계까지 선별적으로 오용·남용하기 때문에 일반인들이 사실로 믿기 쉽다”며 “이는 소비심리와 투자심리를 위축시켜 실제로 경기침체를 가속화한다”고 지적했다. 특히 '경제위기설' 관련 보도에서 전반적으로 과장이 심하다고 밝혔다.
이런 가운데 경제 전망 기사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은 경제지는 갈수록 자극적으로 변하고 있다. 지난해 10월 한국언론학회에선 기사 제목에 '공포' 혹은 '분노'를 쓰는 비율이 32년간 증가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는데, 언론사별 보도 수 평균을 보면 경제지가 가장 '공포'와 '분노'를 빈번하게 썼다. 경제지 4개(매일경제, 서울경제, 한국경제, 해럴드경제)의 언론사별 평균 보도 수는 공포 2106건, 분노 1353건으로 일간지 보도 수(공포 1541건, 분노 1139건)를 뛰어넘었다.
언론이 '경제위기'라는 표현을 쓸 수는 있다. 다만 필요한 부분에 정확하게 써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하준경 교수는 “위기를 남발하면 사회가 진짜 위기인 부분을 못 느낄 수 있다. 사람들이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게 언론이 포인트를 짚어줄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지금 거시지표는 좋지만 성장 잠재력 면에서 위기라든지, 지표가 안정돼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출산율이 떨어져 위기라는 식으로 어떤 위기인지 언론이 규정해야 한다”며 “그래야 사람들이 무엇이 위기인지 이해하니까 불필요한 심리적 효과가 나오지 않을 수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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