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미 대장, '단독 남극점 완주' 쾌거…아시아 여성 최초 남극점 스키 완주

2023. 1. 17. 1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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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벽두에 날아든 낭보
한국인 최초 무지원 단독 남극점 도달
남극대륙 1,186km 홀로 걸어 51일 만에

[헤럴드경제 = 서병기 선임기자]'철의 여인' 김영미(43·노스페이스 애슬리트팀) 대장이 마침내 해냈다. 김 대장이 17일(한국 시각) 남위 90도 남극점에 우뚝 섰다.

지난해 11월 27일 오전 9시 20분(칠레 현지시각) 허큘리스 인렛을 출발해 2023년 1월 16일 오후 8시 57분(칠레 현지시각) 남위 90도 남극점에 도착했다. 총 50일 11시간 37분 동안 홀로 1,186.5km를 답파해낸 쾌거다.

허큘리스 인렛부터 남극점까지 직선거리는 1,130km이지만, 장애물을 피하거나 돌아가는 부분도 있어 실제로는 1,186.5km를 걸었다.

여름임에도 영하 30도를 밑도는 남극의 살인적 추위를 뚫고, 얼어붙은 길 아닌 길을 하루 11시간씩 걸었다. 식량 등 중간보급과 운송수단의 보조 없이 혼자 일궈낸 위업이다.

김영미는 이번 무지원·무보조 남극 원정에서 자신과의 혹독한 싸움 끝에 결국 승리했다. 무지원 단독 남극점 완주는 김영미가 한국인 최초다.

무지원(unsupported)이란 각종 재보급(resupplies) 및 위급상황의 지원이 없는 원정으로 무보급(no resupply)보다 더 큰 개념을 말한다. 무보조(unassisted)란 풍력 보조(연 사용), 개 보조(개 썰매), 차량 보조 등이 없이 인간의 힘으로만 동력을 얻는 원정을 뜻한다. 이때 스키, 썰매, 무전기, 나침반,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 등은 보조 여부에 해당하지 않는다.

김영미 대장의 이번 남극점 완주는 무지원·무보조에 단독 원정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남다르다. 목숨을 건 도전이었다. 곳곳에 똬리를 튼 위기와 위험들이 생명을 위협했다. 극점 자기장의 영향으로 나침반이 이상 작동하여 엉뚱한 방향으로 걷기도 했다. 10도 정도의 나침반 오류를 GPS와 비교, 확인해가며 겨우 제 길을 찾았다. 3㎞ 단위로 GPS를 대조하기도 했다.

이마저 미심쩍을 때는 자연에 기댔다. 태양과 그림자의 위치, 그리고 풍향으로 방향을 잡았다. 남극에서는 바람이 내내 정해진 방향에서 불기 때문에 풍향으로 나아갈 길을 찾아갈 수 있었다. 태양광 충전 배터리 2개 중 1개가 혹한을 견디지 못한 채 멈추기도 했다. 베테랑답게 이럴 경우에 대비해 여분을 준비했다.

화이트아웃도 훼방꾼이었다. 난반사 때문에 시야가 뿌옇게 돼 가시거리가 무척 짧아졌고 사방이 분간되지 않았다. 무풍 상태에서 36시간씩 눈이 내리기도 했다. 잠깐 휴식을 취하다 일어서면 동서남북을 분간하기 어려울 지경이었다.

김영미의 썰매 무게는 113㎏에 달했다. 50일치 식량 총 50kg, 연료 11kg을 썰매에 실었다. 촬영 장비를 포함한 전자장비 10kg뿐만 아니라, 수면을 위한 텐트 등 생존에 필요한 모든 것을 짊어졌다.

김영미의 무보급 단독 원정이 더 의미 있는 이유다. 무거운 썰매가 뒤에서 당기니 목 근육과 인대에 통증이 지속되었다. 준비해간 식량이 줄어들면서 짐이 점점 가벼워졌다는 점이 그나마 다행이었다.

종일 해가 떠있는 백야(白夜)로, 낮인지 밤인지 구분이 어려웠다. 하루 종일 밝은 태양은 바이오리듬을 무너뜨렸다. 알람 설정을 실수로 잘못해 3시간이나 일찍 일어나기도 했다. 뒤늦게 깨닫고 2시간 더 자려고 눈을 붙였지만 선잠, 쪽잠에 그칠 뿐이었다.

바람도 무서웠다. 눈보라를 동반한 초속 20m의 블리자드에 맞서 체온 조절과 동상 방지를 위해 쉬지 않고 몸을 움직여야 했다. 남극점은 해발고도가 2,840m로, 끊임없는 오르막길에 공기 중 산소 농도도 평지보다 부족해 한계에 부딪히기도 했다.

배고픔, 추위, 피로, 체중 감소 등 혹독한 고통을 겪었고 김영미는 이 모든 체력적 한계를 스스로 극복해 나갔다.

김영미는 "한국으로 돌아가서도 바람소리 환청이 들릴 것 같다. 사스투르기(요철지대) 사이사이에 고이 모셔다 둔 눈 웅덩이에서 썰매를 건져낼 때마다 몸에서 에너지가 한 주먹씩 바람 속으로 증발하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하루 일과에도 천국의 공간이 있었다. 텐트 안에 들어와 바람을 피하고 나면 나도 모르게 탄성이 터졌다. ‘후아! 살았다.’ 좋은 사람들을 떠올리며 남쪽 끝을 향해 걸었다.”고 전해 왔다.

한편, 김영미는 남극에서 세계와 소통했다. 한국의 원정 어드바이저 오영훈 박사와 주기적으로 통화했다. 위도 1도를 넘는 4~5일에 한 번씩은 이리디움 위성전화기로 문자나 음성, 사진도 발송했다. 전송된 일지나 보이스메일, 사진은 실시간으로 ‘화이트아웃’ 홈페이지(whiteout.kr)에 실렸다.

김영미의 혹독한 노정은 휴먼 다큐멘터리 ‘화이트아웃’(제작 에이스토리)에 담긴다. 국내에는 ‘화이트아웃’, 글로벌에서는 ‘WHITEOUT: Kim Young-mi’s Solo Expedition to the South Pole’이라는 타이틀로 상반기 OTT 플랫폼을 통해 50분물 2부작으로 방송된다.

제작진은 남극에서 김영미의 실시간 위치를 ‘화이트아웃’ 홈페이지 내 ZeroSixZero 시스템을 통해 실시간으로 예의주시하며 만약의 사태에 대비했다. 이동 궤적, 하루 이동거리(㎞), 누적 이동거리, 현 좌표(경·위도 도·분·초)를 수시로 체크했다.

김영미는 2003년 히말라야 등반을 시작, 2008년 에베레스트에 올랐다. 이후 국내 최연소로 7대륙 최고봉들을 완등했다. 2013년 알파인 스타일로 히말라야 암푸1봉(6840m) 세계 초등에 성공했다. 2017년에는 얼어붙은 바이칼 호수 723㎞를 혼자서 건넜다.

그리고 2023년 새해벽두, 남극점을 단독 도달한 최초의 아시아 여성으로 역사에 기록됐다. 하늘로 치솟은 수직의 산들에 이어 끝없이 펼쳐진 수평의 남극대륙마저 극복해내며 탐험가로서 자신의 철옹성을 더욱 굳건히 다졌다.

wp@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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