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중앙의료원 확충 좌초에 각계 반발…"경제성만 따지나"
의료원 전문의들·총동문회 가세…"인력도 못 구하는 실정"
(서울=뉴스1) 강승지 기자 = 국가 중앙병원으로서 상급종합병원 규모로 병상 등 인프라를 확충하려던 국립중앙의료원이 기획재정부 반대로 난관에 봉착한 가운데 의료원 내 의료진을 포함한 각계에서 반발하고 있다.
앞서 보건복지부와 의료원은 1050병상(의료원 본원 800병상·중앙감염병병원 150병상·중앙외상센터 100병상) 규모의 운영 사업비를 기재부에 요구했으나 기재부는 760병상(본원 526병상·중앙감염병병원 134병상·중앙외상센터 100병상) 규모 사업비를 통보했다.
1조2341억원에서 1조1726억원으로 줄어들게 됐는데 기재부는 "의료원이 이전하려는 곳 인근에 대형병원이 여럿 있어 병상을 1000개 이상 운영하는 것은 과도하다는 판단"이라고 밝혔다.
공공기관 운영에 관한 정책을 세우는 정부출연 연구기관 한국조세재정연구원을 통해 의료원의 신축·이전 사업계획의 적정성을 재검토한 결과라는 게 기재부 입장이다. 이를 두고 경제성만 따지고, 공공의료 분야를 정부가 외면하고 있다는 각계 비판이 제기된다.
국립중앙의료원 전문의협의회는 17일 대국민 호소문을 내고 "기재부의 결정은 현재의 병원 규모로 건물만 새로 지으라는 통보"라며 "국가의 미래를 위해 절대 받아들일 수 없어 국민의 이해를 구하며 지지를 호소한다"고 밝혔다.
이어 "본원은 감염병 위기 시 감염병병원을 지원하는 동시에 일정 규모 이상의 필수 병상을 유지해야 한다"며 "특히 복합적 질환과 임상적 난도 높은 질환의 취약계층에 적정한 진료를 할 수 없다면 공공의료의 안전망은 포기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기재부가 지적한 병상 이용률의 경우, 의료원 신축 이전 논의가 20년 넘게 지지부진한 가운데 제대로 된 투자도 없었던 점과 메르스, 코로나19 사태를 맞아 기존 입원 환자들을 억지로 내보내 가며 감염병 대응을 한 점을 고려했는지 궁금하다"고 비판했다.
의료원 총동문회도 전날 성명서를 통해 "분노와 배신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예산 당국이 신축·이전 공동추진단이 수립한 기본원칙을 무시하고 총사업비를 조정해 사업 규모를 대폭 축소한 것은 경제 논리만 앞세운 결정"이라며 철회를 요구했다.
보건의료단체인 좋은공공병원만들기운동본부와 무상의료운동본부는 전날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가 공공의료 공격에 나선 상징적 사건"이라며 "돈 없고 힘없는 사람들의 목숨과 건강을 빼앗는 짓"이라고 규탄했다.
그러면서 "감염병과 같은 재난 의료는 시장에 맡겨두면 실패할 수밖에 없어 공공병원을 늘려야 한다는 사실은 지난 3년간 충분히 입증됐다"며 "서민의 생명과 건강의 보루이자 공공의료의 상징인 중앙의료원 확충을 축소하면 국민의 반대를 부를 것"이라고 밝혔다.
국회 복지위 소속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은 지난 12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지난해 복지부 소관 2023년도 예산안을 수정 의결할 당시 의료원 병상 규모 확대를 위해 노력한다는 부대 의견이 여야 합의로 채택됐었다"고 강조했다.
민주당 의원들은 "국회 예산 심의권을 무시하는 행위"라며 "이건희 회장 유족 측에서 기부하며 맺었던 약정사항의 핵심은 '중앙감염병병원을 150병상 규모로 건립한다'는 것"이라며 "정부는 당시 약정을 명백히 위반했다. 제대로 된 계획을 다시 마련하라"고 했다.
1958년 서울 중구 을지로6가에 설립된 의료원은 공간이 비좁고 시설이 낙후해 2003년부터 이전 논의가 이뤄졌다. 2015년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유행을 계기로 의료원이 중앙감염병병원이 돼, 병원 이전과 함께 중앙감염병병원을 새로 짓는 사업을 추진해왔다.
서울 서초구 원지동으로 옮기는 방안을 추진했으나 주민 반대와 환경영향평가에 따라 16년 만에 사업 추진 불가로 결론이 났다. 그러다 지난 2020년 박원순 당시 서울시장이 의료원 인근 미국 공병단 터에 의료원을 짓자고 제안하며 이전·신축 사업이 본격화됐다.
특히 2021년 4월 고(故) 이건희 회장의 유지에 따라 7000억원을 기부해 지지부진하던 이전 사업이 속도를 붙겠다는 기대도 컸다. 이 회장이 보태준 금액으로 정부도 예산을 아끼게 된 셈이지만 기재부는 그보다 축소하는 결정을 내렸다.
한편, 각계 주장에 연장선으로 국립중앙의료원은 의사 구인난을 타개하기 위해 현재 만 60세인 의료원 이사들의 정년 연장을 추진하고 있다. 공공 병원들은 연봉 등 처우가 민간 병원만큼 좋지 않아 의사를 구하는 데 애를 먹고 있다.
의료원 전문의 평균 연봉은 1억4891만원으로 2020년 기준 전체 의사 평균 연봉인 약 2억원을 크게 밑돌고 있다. 또한 의사 결원율은 19%로 전년 대비 3.1%p(포인트) 상승했다.
ksj@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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