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딩크' 박항서, 베트남과 동행 마침표... "함께한 모든 순간 잊지 못할 것"
2018 미쓰비시컵·2019 동아시안게임 우승
베트남 최초 월드컵 최종예선 진출 등 업적
"한국 대표팀 감독 생각 없다" 일축
'축구 변방' 베트남을 아시아 축구 다크호스에 올려놓으며 신드롬을 일으킨 박항서 감독이 베트남 축구와 5년 동행에 마침표를 찍었다.
박 감독이 이끄는 베트남은 16일(한국시간) 태국 빠툼타니의 탐마삿 스타디움에서 열린 태국과의 2022 아세안축구연맹(AFF) 미쓰비시 일렉트릭컵(미쓰비시컵) 결승 2차전에서 0-1로 패했다. 지난 13일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1차전에서 2-2로 비긴 베트남은 1·2차전 합계 2-3으로 준우승에 머물렀다.
앞서 이번 대회를 끝으로 베트남 축구대표팀 지휘봉을 내려놓겠다고 선언한 박 감독은 비록 애초 목표했던 우승컵은 들지 못했지만 동남아시아 최강 태국을 상대로 선전하며 유종의 미를 거뒀다.
박 감독은 현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태국 대표팀과 마노 폴킹 감독에게 축하를 전한다. 베트남 팬들에게 우승이라는 선물을 주고 싶었지만 그렇지 못해 죄송하다”고 이번 대회를 마친 소감을 전했다. 이어 “베트남 축구가 계속 발전할 것이라 확신한다”며 “난 더 이상 베트남 감독이 아니지만 팬으로 남게 될 것이다. 국가대표팀과 23세 이하(U-23) 팀을 열렬히 응원하겠다. 서로에 대한 좋은 추억을 영원히 간직하길 바란다”고 작별 인사를 전했다.
2017년 10월 베트남 축구대표팀 감독으로 부임한 박 감독은 임기 내내 꾸준한 성과를 내며 베트남 대표팀 역대 최고 감독으로 자리매김했다. ‘박항서 매직’은 2018 아시아축구연맹(AFC) U-23 챔피언십부터 시작됐다. 그는 부임 후 불과 3개월 만에 출전한 이 대회에서 베트남 U-23 대표팀을 준우승으로 이끌었다. 동남아시아국가가 이 대회 결승에 진출한 건 이때가 처음이었다.
이어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서 베트남 역사상 최초로 4강 진출에 성공했고, 2019년에 치러진 동남아시안(SEA)게임에서는 베트남에 60년 만에 우승 트로피를 안겼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1년 연기돼 열린 2021 SEA에서도 또다시 정상에 서며 대회 2연패의 대업도 달성했다.
박 감독은 성인 대표팀을 이끌고도 승승장구했다. 2018 미쓰비시컵(당시 스즈키컵)에서는 2008년 이후 10년 만이자 통산 2번째 우승을 일궈냈고, 2019 AFC 아시안컵에서도 12년 만에 베트남을 8강에 올려놓았다.
백미는 2022 카타르 월드컵 지역예선이었다. 박 감독이 이끄는 베트남은 아시아 2차 예선에서 아랍에미리트(UAE), 태국,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에 밀리지 않는 경기력을 선보이며 조 2위를 기록, 최종예선에 진출했다. 베트남 대표팀이 월드컵 최종예선에 진출한 건 사상 처음이었다.
호주, 일본, 사우디아라비아, 중국, 오만과 함께 최종예선 B조에 편성된 베트남은 비록 조 최하위로 본선 진출에는 실패했지만, 한 수 위로 평가 받는 일본과 1-1로 비기고 중국을 3-1로 꺾으며 베트남 축구의 가능성을 보여줬다.
부임 초기 베트남 대표팀을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 100위 안에 진입시키겠다던 약속도 지켜냈다. 박 감독은 부임 당시 FIFA 랭킹 130위권이었던 베트남 대표팀을 2021년 92위까지 끌어올렸고, 현재도 100위권 내 랭킹(지난해 12월 기준 96위)을 유지 중이다.
베트남 축구사를 새로 쓴 그는 베트남 정부로부터 노동훈장을 받는 등 국민적 영웅으로 떠올랐고, 2002 한·일 월드컵 당시 한국의 4강 진출을 이끌었던 거스 히딩크를 본떠 ‘쌀딩크’라 불리기도 했다. 또 부상 선수에게 비행기 비즈니스석을 양보하거나 선수가 입원한 병원을 직접 찾는 박 감독의 자상한 리더십 덕분에 ‘파파박’이라는 애칭도 얻었다.
박 감독 역시 마지막까지 베트남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그는 지난 5년을 돌아보며 “치료실에서 선수들과 대화를 나누며 치료해줬던 때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베트남 선수들과 함께했던 모든 순간들을 평생 잊지 못할 것”이라며 “(미쓰비시컵 결승전이 끝난) 지금 이 순간도 옆방에서는 선수들이 떠들고 있는데, 이제 이들과 더는 함께하지 못한다는 게 아쉽다”고 말했다.
박 감독의 향후 행보에도 관심이 쏠린다. 그는 “내 미래는 (회사) 대표, 가족과 상의할 것”이라면서도 “한국에서는 현장 감독을 할 생각이 없다. 나보다 나은 후배 감독들이 많다”며 한국 대표팀 사령탑으로는 부임하지 않겠다고 못 박았다.
박주희 기자 jxp938@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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