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이 ADHD 고치는 약 …'디지털 치료제' 세상이 열린다
게임 중독은 심각한 사회문제로 여겨진다. 게임 중독이 여러 사회문제를 일으키며 '질병이냐, 아니냐' 논란이 있었지만, 세계보건기구(WHO)는 2019년 게임 중독을 질병으로 규정하고 국제질병분류(ICD)에 반영했다. 그러나 골칫거리였던 게임이 이제는 병을 치료하는 디지털 치료제로 주목받고 있다. 디지털 치료제는 약물은 아니지만 질병을 치료하고 건강을 관리하는 소프트웨어를 말한다. 식품의약품안전처에서는 디지털 의료기기로 분류한다. 일반적으로 게임, 애플리케이션, 가상현실(VR) 등이 활용되며 1세대 합성의약품, 2세대 바이오의약품에 이은 3세대 치료제로 불린다.
주로 우울증, 주의력 결핍 과잉행동장애(ADHD), 약물중독 등 정신질환에 적응증을 갖지만 최근에는 당뇨, 비만, 암 등 여러 분야로 확대되고 있다. 디지털 치료제는 신약 개발보다 시간과 비용을 절약할 수 있다는 것, 의약품과 달리 독성이나 부작용이 거의 없다는 것이 장점으로 꼽힌다. 소프트웨어를 활용해 건강 관련 데이터를 축적할 수 있다는 것도 미래 치료제로 떠오른 이유다.
해외에서는 20개 이상의 디지털 치료제가 미국 식품의약국(FDA) 허가를 받았다. 최초의 디지털 치료제는 미국 페어테라퓨틱스(Pear Therapeutics)가 개발한 약물중독 치료 앱 '리셋(reSET)'이다. 2017년 FDA 허가를 획득했다. 리셋을 처방받은 환자는 12주 동안 프로그램을 따라 충동 대처법 등을 담은 강의를 듣고 내용에 대한 퀴즈를 풀어야 한다. 임상시험 결과 리셋을 사용한 환자군의 40.3%가 금욕을 유지해 기존 치료법을 사용한 대조군(17.6%)보다 2배 이상의 효과를 나타냈다. 2020년에는 최초의 게임형 디지털 치료제가 허가받았다. 아킬리인터랙티브(Akili Interactive)의 '인데버(Endeaver)Rx'다. 만 8~12세 어린이 ADHD 치료제로 승인받았다. 보기에는 일반 컴퓨터·모바일 게임과 비슷하다. 캐릭터가 목표 지점을 향해 가는 과정에서 장애물을 피하고 사냥해 미션을 깨는 방식이다.
해외에선 이미 여러 디지털 치료제가 FDA 승인을 받고 효능을 입증했지만, 국내에서는 아직 개발된 것이 없다. 게임 형태는 더욱 그렇다. 현재 7개 기업이 임상 마지막 단계인 확증임상을 진행 중이며, 이 중 품목허가를 신청한 기업도 있다. 업계에선 올해 국내 1호 디지털 치료제 탄생이 유력한 것으로 보고 있다.
게임형 디지털 치료제가 주목받으며 국내 게임 회사도 디지털 치료제 개발에 나서고 있다. 1인칭 슈팅게임(FPS)로 유명한 드래곤플라이는 지난해 11월 식약처에 게임형 ADHD 디지털 치료제 '가디언즈 DTx' 임상시험 계획서를 제출했다. 만 7~13세 ADHD 환자가 적용 대상이다.
엔씨소프트는 지난해 3월 중앙대병원과 '디지털 암 관리센터' 구축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했고, 8월에는 한국조지메이슨대와 산학협력 업무협약을 체결하며 디지털 치료제 관련 정책 개발 연구에 나서기로 했다.
제약업계도 마찬가지다. 한미약품은 KT와 디지털 치료제를 개발하는 '디지털팜'을 합작하고 알코올과 니코틴 등의 중독을 완화하는 치료제 개발에 나섰다. SK바이오팜은 2018년부터 뇌전증 발작 감지·예측 알고리즘과 디바이스 연구를 개발 중이고, 최근에는 미국 디지털 치료제 기업 칼라헬스에 투자했다.
디지털 치료제 시장 규모도 커지고 있다. 국가생명공학정책연구센터에 따르면 지난해 약 5조1895억원이었던 디지털 치료제 시장 규모는 연평균 20.5%씩 성장해 2030년 23조원까지 성장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정부도 디지털 치료제 산업에 주목하며 관련 정책을 펴고 있다. 2020년 '의료기기 산업육성 및 혁신의료기기지원법'을 제정하고 허가·심사 가이드라인을 발간해 웰니스 기기와 구분할 수 있도록 여건을 마련했다.
이 밖에도 정부는 인허가 가이드라인과 보험 정책을 꾸준히 업데이트하고, 보험 수가를 산정하는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은 디지털 치료제의 수가 책정 연구를 진행 중이다. 업계는 디지털 치료제 산업을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건강보험 적용 등 제도적 뒷받침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이상민 매경헬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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