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조출입기자들이 기억하는 '기사 안 쓰는 기자' 김만배

윤수현 기자 2023. 1. 17. 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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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기간 법조팀 터줏대감 "기자단 내에서 영향력 행사"
법조기자 명함은 '대장동 로비'에서 어떻게 활용됐을까

[미디어오늘 윤수현 기자]

화천대유 대주주 김만배 씨는 머니투데이 법조팀장이었다. 김 씨가 10여 년 동안 머니투데이 법조팀장을 맡으면서 법조기자단 내에서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이야기가 있는가 하면, 실제 영향력은 무의미했다는 반박도 나온다. 중요한 것은 그의 법조기자 명함이 대장동 개발 비리 의혹과 관련, 법조계과 언론계를 상대로 한 전방위 로비에 어떻게 활용되었느냐다.

김만배 씨는 머니투데이 법조팀의 '터줏대감'이었다. 김 씨가 법조팀에 있었던 기간은 10년이 넘는다. 2004년 6월 머니투데이에 경력직으로 입사한 김 씨는 곧바로 법조팀으로 발령받았다. 당시 머니투데이는 법조팀을 신설하면서 4명의 법조 경력기자를 채용했는데, 김 씨는 팀장직을 맡았다. 김 씨는 2019년 사회부 선임기자(부국장대우)로 임명되기 전까지 법조팀에 있었다.

▲ 화천대유자산관리 대주주 김만배씨가 지난해 12월5일 오전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대장동 개발 사업 로비·특혜 의혹 관련 1심 속행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법조팀 경력이 길었던 만큼 김만배 씨는 법조기자단 내에서 자연스럽게 인맥을 형성할 수 있었다. 김 씨는 기자단 업무를 총괄하는 법조기자단 간사를 맡기도 했다. 김 씨와의 금전거래가 드러난 한겨레·중앙일보·한국일보 기자들은 모두 '법조팀장'을 역임했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법조팀장들은 주로 대법원에 출입한다. 김씨로부터 수억원의 돈을 받은 사실이 드러나 해고된 석진환 전 한겨레 기자는 머니투데이가 법조기자단에 진입하는 과정에서 도움을 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김만배 씨가 머니투데이 계열사의 법조기자단 가입 과정에서 도움을 줬다는 의혹도 있다. 쿠키뉴스 '[단독] 김만배, 편집권 손 댔다…언론사 법조기사 삭제시켜' 보도에서 머니투데이 A계열사의 한 기자는 “김씨가 법조기자 사이에서 워낙 위세가 대단했다. 바늘구멍이라는 법조기자단 A사 가입여부도 김씨가 좌지우지할 정도였다”고 했다. 이 기자는 “A사뿐만 아니라 같은 계열사 법조팀 기자들과도 꾸준히 관계를 맺어 일정부분 영향력을 행사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A사는 뉴시스다.

머니투데이 그룹에서 재직한 기자 B씨는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김만배 씨가 머니투데이 계열사 법조기자들을 모아서 밥을 잘 사주고, 가끔 후배들 용돈도 줬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했다.

뉴스토마토가 17일 발행한 '토마토레터'를 보면 구체적인 내용을 파악할 수 있다. 뉴스토마토는 “(김만배 씨를) '돈 잘 쓰고 인맥 넓은 선배'로 기억하는 사람이 많다”며 “김 씨를 아는 기자들은 '한 번 인사한 사람은 모두 형·동생이 된다'는 말을 많이 했다. 김 씨는 성격도 거침없는 데다가 베푸는 것도 거침없었다고 한다”고 했다. 뉴스토마토는 “김 씨가 주로 '현금'을 썼다고 하는데, 김 씨가 돈을 쓰는 것을 본 사람들은 거침없이 쓰는 것에도 놀라지만 모두 현금이라는 데 더 놀랐다고 한다”며 “김 씨는 '내가 빚이 많아 카드를 쓰면 곧바로 차압이 들어오기 때문'이라고 말했다고 한다”고 설명했다.

김만배 씨와 안면이 있는 변호사 C씨 역시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김 씨는 자기가 챙겨줘야 하는 동생이나 친한 사람들에게는 밥 사주고 술 사주는 일을 잘 했다”고 했다. C씨는 김만배 씨와 관련된 특별한 첫인상은 없었다면서 “다만 다른 언론사의 법조팀장보다는 사람 관계를 적극적으로 다루고, 허풍을 떤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김만배 씨는 기사·취재 보다는 대외 활동으로 유명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김중호 노컷뉴스 법조팀장은 9일 CBS 라디오 '정다운의 뉴스톡 530'에서 김만배 씨가 “이 바닥(법조 분야)에서 오래 근무하기로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히는 기자”라고 소개했다. 이어 김만배 씨가 인맥이 넓다는 평가를 받아왔다면서 “인상적이었던 평가는 '기사를 안쓰는 기자'로 유명했다는 것이다. '기사를 안쓰는 기자'라는 것 자체가 비판적인 뉘앙스를 담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실제 김만배 씨가 2012년 1월1일부터 2018년 12월31일까지 7년간 작성한 기사는 200건이 채 되지 않는다. 김 씨 이름이 올라간 기사 다수는 법조팀 기자들이 공동으로 작성한 것이다. 뉴스타파가 공개한 '정영학 녹취록'에 따르면 당시 김만배 씨는 대장동 사업을 기획하고 있었다. 이에 대해 뉴스토마토는 16일 '토마토레터'에서 “2012년 4월부터 이듬해 9월까지 포털에 올라온 기사도 4꼭지에 불과하다. 정상적이지는 않다”며 “김만배 씨는 2014년 6월 아예 대장동 개발 시행사인 판교PFV의 지분 20%를 보유한 도시개발디앤피 지분 50%를 양수하면서 본격적으로 대장동 도시개발사업에 참여한다. 당연히 본업에는 충실할 수 없었다”고 했다.

또 김만배 씨는 2014년 박영수 전 특별검사가 48대 대한변호사협회장 선거에 출마할 당시 선거를 도왔으며, 홍선근 머니투데이 회장이 2007년 경영권 분쟁에 휘말렸을 때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이 사진은 기사와 직접적인 관련은 없습니다. ⓒ 연합뉴스

김만배 씨가 법조기자단 내에서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2017년 D매체는 법조기자단 가입 신청을 했으나 대법원 기자단은 이를 허락하지 않았다. 당시 대법원 기자단은 D매체의 법조팀 기자가 일반 사회 기사를 쓴 것을 문제 삼았다. 법조팀 기자는 법조 기사만 써야 한다는 것이다. D매체 관계자는 이에 대한 논의를 하기 위해 대법원 기자실에 찾아갔는데, 간사가 아닌 김 씨가 기자실 출입 불허 이유를 설명했다고 전했다. 당시 간사는 김 씨가 아닌 방송사 기자였다.

D매체 관계자는 “기자실에서 김만배 씨를 봤는데 '대법원 기자단에서 이 건으로 투표하면 부결이 날 것이고 그렇게 되면 향후 3년 간 투표를 못한다. 이번에 (출입을) 받지 않는 것이 더 유리하다'며 마치 통 크게 생각해주는 것처럼 꼬드겼다. 간사가 있었지만 내용 설명은 김 씨가 주로 했고, 속으로 '이 분은 간사도 아닌데 왜 이러지, 실세인가?'라고 생각했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김만배 씨가 오랜 시간 법조기자단에 소속됐고 고연차 기자라서 영향력이 있어 보일 뿐, 실제 영향력을 행사한 것은 아니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대법원에는 각사 법조팀장이 출입하는 만큼 김 씨가 마음대로 의사결정에 개입하기 어려웠다는 설명이다.

김만배 씨와 함께 대법원 기자단에서 활동했던 기자 E씨는 “김 씨가 법조 출입을 굉장히 오래 했는데, 처음에는 법조기자단 소속도 아니었다”면서 “이후 뉴시스, 뉴스1 등 계열사가 출입등록을 할 때 '도와달라'는 이야기는 했었지만 안 될 회사가 법조기자단에 들어오는 수준은 아니었다. 출입기자단 투표는 비밀투표이며, 종합적인 판단에 따라 투표하는 것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E씨는 “김만배 씨가 아무리 돈이 많다고 해도 각사 법조팀장들이 밥 얻어먹고 그럴 정도는 아니었다”고 했다.

한국기자협회는 지난 10일 “기자들이 금전적으로 부당한 이득을 취했다는 의혹은 그 자체만으로도 저널리즘에 상당한 생채기를 남겼고 일선 기자들에게 허탈감을 안겨주었다”며 반성문을 냈다. 주요 일간지 법조팀장들이 또 다른 법조팀장으로부터 부당한 돈 거래를 한 것으로 알려진 이번 사태는 언론계의 도덕 불감증과 함께 폐쇄적이며 권위적인 '이익공동체'로서 법조기자단의 단면을 보여줬다는 평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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