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시론]도전, 세계 1등 수소경제 국가
에너지 수입 의존도 93%인 자원 빈국. 하지만 세계 여섯 번째 원전 수출국이면서 유럽사업자요건(EUR)과 미국 원자력규제위원회 설계인증(NRC)을 동시에 취득한 신형 원전 ARP1400을 보유한 나라. 세계 다섯 번째로 국산화에 성공한 발전용 대형 가스터빈 기술을 갖추고 있는 나라. 바로 대한민국이다.
우리나라는 지하자원 없이 세계 최고 수준의 에너지 관련 기술과 인프라를 보유하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고품질 전력을 바탕으로 반도체, 철강 등 주력 산업 분야에서 세계 시장을 선도하는 등 경쟁력이 탄탄하다. 세계 108위 면적을 보유한 작은 국가이지만 정말 대단하고 자랑스럽다.
필자는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소속으로 의정활동을 하고 있다. 에너지 분야도 포함돼 있다 보니 에너지를 주제로 이야기할 기회가 자주 있다. 그때마다 망설임 없이 '에너지는 과학'이라고 주장한다. 무엇보다 국가 에너지 정책은 과학적 법칙을 바탕으로 발전원별 특성과 기후, 환경, 산업구조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서 수립돼야 한다.
과학적 법칙은 해가 바뀌거나 사람이 바뀐다고 해서 변하는 것이 아니다. 이 때문에 에너지 정책은 정권 및 정치와 상관없이 언제나 일관성을 유지해야 함이 마땅하다. 그러나 지난 정부의 탈원전으로 대표되는 에너지 정책은 과학과 거리가 멀었다. 에너지가 정치와 이념의 이슈로 되면서 과학적 근거 및 판단이 외면받은 것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지난 11일 정부는 국회에 제10차 전력수급기본계획(전기본)을 보고했다. 2년마다 수립되는 전기본은 원자력발전·석탄발전·액화천연가스(LNG)발전·신재생에너지발전 등 전원 구성 관련 전망과 송·배전설비 건설 계획, 발전량 전망, 온실가스 감축 방안 등을 내용으로 담고 있다.
10차 전기본에서는 주로 원자력발전과 재생에너지발전 비중 논의가 이어졌다. 이와 함께 무탄소 신전원의 도입과 확대를 위해 '수소'에 주목해야 한다는 내용도 담겼다.
수소에 쏠린 관심은 세계 공통이다. 기후 위기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 세계 각국은 청정에너지 육성에 집중하고 있다. 그 가운데에서도 특히 수소에 집중하며 다양한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미국은 연방정부 차원의 수소 프로그램을 가동하면서 수소 중심으로 전력그리드와 천연가스 인프라 통합에 나섰다. 유럽연합(EU)은 수소 전략을 발표하고 오는 2030년까지 수전해 설비에 420억유로, 수소 운송저장충전에 650억유로를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일본도 녹색성장전략을 수립하고 2030년까지 수소차 80만대와 가정용 수소연료전지 530만대 공급을 목표로 정했다.
우리 정부는 지난해 11월 세계 1등 수소 산업 육성전략과 청정수소 생태계 조성 방안 등을 발표하면서 수소산업 먹거리 선점에 나서고 있다. 2030년까지 경제적 파급효과 47조원, 고용 유발 10만명, 화석연료 의존도 감소 및 에너지 공급망 다변화, 온실가스 대규모 감축 등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밖에 수소 경제 확대 차원에서 다양한 지원 정책도 마련했다. 지방자치단체가 수소버스를 구매할 때 정부 보조금을 상향하고, 발전 출력 조절이 유연하고 효율이 우수한 소형 수소터빈과 수소엔진 개발을 추진한다. 또한 민·관 공동투자를 통해 해외 현지의 청정수소 생산시설 구축 시범사업을 실시하고, 해외수소사업 자금 지원을 위한 대규모 융자와 보증 제도도 도입할 계획이다.
지역에서의 움직임도 활발하다. 오는 6월 11일 강원특별자치도로 새롭게 출발하는 강원도는 액화수소산업 규제자유특구로 지정돼 생태계 구축 실증에 착수했다. 기체인 수소를 초저온으로 액화시키면 부피가 800분의 1로 줄어들어 대용량 저장이 가능하고, 압력도 낮아져서 안정적인 상태로 운송할 수 있다. 이런 특례를 토대로 △액화 수소 배관 및 밸브 제작 △액화수소 용기 및 저장탱크 제작 △액화수소 저장·운송용 탱크로리 제작 △액화수소충전소 구축 △이동형 액화수소 충전소 구축 △액화수소 연료전지 선박 제작 및 운항 △액화수소 드론 운항 제작 및 운항 등을 실증할 계획이다.
하지만 이제 첫걸음으로, 아직 갈 길이 멀다. 수소에너지가 탄소중립에 기여하기 위해서는 실질적인 사용에서는 물론 이를 생산하는 단계에서부터 온실가스 등 유해 물질을 배출하지 않아야 한다.
현재 국내에 유통되고 있는 수소 대부분은 LNG에서 추출하거나 석유화학 공정을 통해 생산되고 있다. 수소 자체는 친환경이지만 이를 생산하는 원재료는 화석연료인 셈이다. 이렇게 화석연료에서 생산되는 수소를 '그레이수소'라고 부른다. 좀 더 친환경적인 수소 활용을 위해서는 앞으로 연구개발(R&D)을 통해 이산화탄소 포집 기술을 적용한 '블루수소', 재생에너지를 물의 전기분해로 활용해 얻는 '그린수소' 생산 및 상용화로 나아가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국회와 정부의 노력이 중요하다. 지난해 11월 필자가 주최한 '청정수소인증제도 도입' 토론회에서도 관련 논의가 진행됐다. 에너지 전문가들은 무엇이 청정수소인지 정의하고 이를 인증하는 제도 도입과 정착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또한 글로벌 규범과 정합성을 맞추면서도 우리나라 실정에 맞는 수소 산업 육성 전략을 세우고, 기술 투자를 확대해 나가면서, 생산저장운송활용 등 전 주기 R&D를 지원해야 한다. 새로운 에너지의 활용을 위한 규제 혁파도 당연하다.
인류는 언제나 미래를 준비해 왔다. 자원 빈국인 우리는 도전을 주저하지 않았고, 결국 인간의 두뇌로 만든 유일한 에너지인 원자력 분야의 강국으로 당당히 자리매김했다. 다음은 수소다. 원자력발전을 이용한 '핑크수소', 지하에서 자연적으로 생성된 '화이트수소' 등 청정수소로 활용할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이 있다. 이와 함께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지정학적 특징 또한 긍정적 시너지효과를 낼 수 있다.
세계 1등 수소경제 국가에 도전하자. 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마음이다.
노용호 국민의힘 의원 ryh4711@naver.com
〈필자〉노용호 의원은 대학에서 산업공학을 전공했지만 총학생회 활동을 시작으로 줄곧 문과 인생을 살았다. 졸업 후 신한국당 공채 5기로 정당에 입문, 강원도당에서 18년 동안 일하며 도내 선거만 20번 가까이 치렀고, 중앙당 조직국 'E총무국' E기획조정국장을 거치며 당직자 경력의 정점을 찍었다.
2022년 5월 비례대표직을 승계해서 산업통상자원위원회 위원으로 임명됐다. '스마트제조혁신법'을 1호 법안으로 발의하는 등 전공을 살린 의정활동을 활발하게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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