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레카] 박항서 감독과 ‘문지방’ / 김창금

김창금 2023. 1. 17. 1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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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학 등에서 문지방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박항서 베트남 축구대표팀 감독이 2022 아세안축구연맹(AFF) 축구대회 준우승을 끝으로 사령탑에서 사실상 물러났다.

히딩크 감독이 세계 축구의 주변부인 한국 축구를 월드컵 4강에 올리기 위해 나름의 '축구 문화'를 이식했듯이, 박 감독 역시 아시아의 변방인 베트남 축구를 개조하기 위해 훈련 방식, 선수들과의 소통, 미디어 대응 등을 알맞게 활용했다.

박항서 감독은 당분간 자연인으로 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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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레카]

박항서 감독과 문지방. 김재욱 화백

인류학 등에서 문지방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이도 저도 아닌 어중간한 상태, 양다리를 걸친 상태, 경계의 상태인 문지방은 정체성의 불안정성을 드러내지만, 다른 한편 창조성이 폭발하거나 혼돈에 빠지는 지점이기도 하다.

훈련소에 입소하는 신병은 사회인의 때를 벗고, 군번도 없는 훈련병으로 일시적인 격리 기간을 거쳐야 진짜 군인이 된다. 이때 훈련소는 문지방이 된다. 교회와 사찰은 도시 안에서 볼 수 있지만, 그 공간의 문턱을 넘으면 속(俗)에서 성(聖)으로 이동하게 된다. 경계에서는 기존의 논리나 합리성이 전복되면서, 잠재력이 터져 나오기도 한다.

박항서 베트남 축구대표팀 감독이 2022 아세안축구연맹(AFF) 축구대회 준우승을 끝으로 사령탑에서 사실상 물러났다. 그가 베트남 대표팀을 지휘한 지난 5년 동안 베트남 축구는 사상 첫 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 진출의 성과를 냈다. 국제관계 차원에서는 베트남 국민에게 친근한 한국의 이미지를 심는 민간 외교관 구실을 했다.

베트남의 ‘히딩크’로 불리는 박 감독의 성공 배경은 여럿이다. 축구 발전을 위한 베트남 당국의 유럽 선진축구 습득 노력과 청소년 축구 육성, 경제성장에 따른 문화영역 투자 증대 등의 시대적 환경이 딱 들어맞았다.

2002 한·일 월드컵 때 거스 히딩크 감독을 보좌하면서 얻은 노하우도 큰 구실을 했다. 히딩크 감독이 세계 축구의 주변부인 한국 축구를 월드컵 4강에 올리기 위해 나름의 ‘축구 문화’를 이식했듯이, 박 감독 역시 아시아의 변방인 베트남 축구를 개조하기 위해 훈련 방식, 선수들과의 소통, 미디어 대응 등을 알맞게 활용했다.

박 감독은 국내 프로팀에서 성공하지 못했다. 3부 리그 감독도 맡았다. 하지만 동남아 시장의 새 영역에 도전했고, 국내에서의 실패를 바탕으로 초심을 잃지 않았다. 현지의 문화와 관습을 존중하고, 코치진과 끊임없이 연구하고 노력해 베트남 축구의 문지방을 통과했다. 이후 타이,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를 포함해 동남아 축구의 붐이 일어났고, 한국 지도자들의 동남아 진출이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박항서 감독은 당분간 자연인으로 돌아간다. 그는 축구를 떠날 수 없다고 했지만, 다시금 정체성이 불분명한 경계에 서게 됐다. 그가 앞으로 어떤 선택을 하게 될지 주목된다.

김창금 스포츠팀 선임기자 kimc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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