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거리서 만난 10대들 “마약 팔아요”...빛 잃어가는 샌프란시스코
주요 도시 중 재정 가장 필요…美 서부 최대 금융도시
이면은 ‘범죄와 마약’과 전쟁…골목 점령한 홈리스
길거리에 찌든 대마초…대낮에 청소년 마약거래도
‘안개 도시’ ‘금문교’로 대변되던 도시는 한때 한국인에겐 ‘가고 싶은’ 대표적인 서부 관광 도시로 손꼽혔다. 도심을 달리는 트램과 도심 언덕길을 따라 들어선 형형색색 집들은 문화와 부의 조화를 상징하는 대표하는 아이콘이었다.
미국 서부를 대표하던 아름답던 도시는 최근 10여년새 마약과 범죄의 도시로 전락하고 있다. 2020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당시 봉쇄령 조치로 잠시 주춤하던 범죄 발생 건수는 최근 가파르게 올랐고 도심 한복판은 대마초(마리화나) 냄새가 코를 자극하고 있다.
길거리 곳곳에선 누군가 약물을 투여하고 버린 주사기들이 어렵지 않게 눈에 띄었다. 세계 최대 제약·바이오 투자 행사가 열린 미국 서부의 대표 도시 샌프란시스코의 민낯이다. 이달 9일(현지 시각)부터 12일까지 JP모건 헬스케어 콘퍼런스 참석을 위해 찾은 샌프란시스코에서는 불과 200m 거리 차이로 ‘극과 극’을 경험할 수 있었다.
행사가 열린 더웨스틴세인트프란시스 호텔 인근은 아침 저녁으로 이른바 ‘화이트칼라’로 불리는 사무직 종사자들이 이른 아침부터 정장을 빼입고 바쁘게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행사장 일대의 메리어트호텔을 비롯해 주변 호텔은 콘퍼런스 참가를 위해 샌프란시스코를 찾은 해외 제약사와 바이오기업, 투자자들로 ‘특수’를 누렸다. 이번 행사에는 세계에서 550여개 기업, 1만명이 넘는 참가자가 등록했다.
평소 하루 숙박비가 20만원대인 호텔 가격은 행사가 진행되는 한 주간 이전보다 5배 이상 뛰었다. 100만원 이상을 지불해도 방 잡기가 ‘하늘의 별따기’였던 셈이다.
행사장 인근은 사무직에겐 ‘쇼핑 천국’이다. 신호등 하나만 건너면 미국 최대 백화점으로 꼽히는 메이시스와 노드스트롬에 닿는다.
바로 옆으로 루이비통, 구찌, 몽클레어, 롤렉스와 같은 명품 매장도 즐비해 있다. 매장 앞은 총기를 소지한 건장한 보안요원이 손님을 맞았다. 여기까지는 여느 미국 도시와 크게 다르지 않은 모습이다.
샌프란시스코는 소득이 높은 금융 도시다. 과거 19세기 금광을 찾는 이들의 발길이 이어지며 자연스레 금융이 발달했다. 샌프란시스코 상징인 ‘금문교’의 역사이기도 하다.
그 뒤로 애플, 구글, 인텔, 넷플릭스 등 글로벌 빅테크가 실리콘밸리에 둥지를 틀면서 차로 1시간가량 걸리는 샌프란시스코도 덕분에 호황을 맞았다.
지난해 금융서비스 회사 찰스슈왑이 미국 내 12개 주요 대도시 시민을 대상으로 ‘재정적 안정을 위해 필요한 금액’을 묻는 설문조사에서 샌프란시스코는 170만달러로 1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2위인 뉴욕(140만달러)보다 30만달러 많은 금액이다.
반면 행사장에서 불과 200m만 걷다보면 전혀 다른 풍경이 나타난다. ‘홈리스(homeless)’로 불리는 노숙자들이 골목을 점령하고 있다. 행사장에서 숙소까지는 도보로 15분가량이 소요됐는데, 이 중 절반의 구간을 이런 길을 따라 걸어야 했다. 일부 구간은 걸어 이동하기 힘들 정도로 노숙자들이 많아 다른 골목으로 돌아가야 할 정도였다.
샌프란시스코 일간지인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이 지난해 현지 주민을 대상으로 ‘가장 시급히 해결되어야 할 문제’를 묻는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 홈리스가 약 40%로 가장 높은 비중을 나타냈다.
2위를 기록한 안전·범죄(23%)의 2배에 해당하는 수치다. 콘퍼런스에 참가한 국내 기업 한 관계자도 “지난해와 2021년 비대면으로 진행됐을 때를 제외하고 거의 10년째 매년 방문하고 있지만, 유독 올해 더 심한 것 같다”고 말했다.
저녁 시간에는 안전 문제로 도보 이동은 피하고 승차공유 서비스인 ‘우버’를 타야 했다.
숙소 정면 입구를 제외한 양옆도 이미 노숙자들 차지가 됐다. 노숙자 수는 도심에서 멀어질수록 더 많은 것처럼 보였다. 대다수 노숙자들에게서는 특유의 풀 태운 냄새가 났다.
숙소 보안요원에게 냄새 출처를 묻자 “위드(Weed)”라고 말했다. 위드는 대마초를 의미하는 은어다. 미국에 도착한 직후 외교부로부터 받은 문자 메시지에 “대마초 흡연, 구매, 소지 등은 형사처벌의 대상이 되는 범법행위에 해당되니 주의를 당부한다”는 내용의 글이 있었던 것이 떠올랐다.
캘리포니아는 지난 2018년부터 기호용 대마초 판매가 허용되면서 대마초 ‘합법 지역’이 됐다. 콜로라도, 워싱턴, 오리건, 알래스카, 네바다에 이어 6번째다. 워싱턴DC까지 포함하면 7번째다. 지금은 담배 판매점에서도 대마초를 팔고 있다.
음지에서 거래하던 대마초 판매가 합법화되면서 여론은 반으로 갈렸다. 거래 활성화로 재정확보를 할 수 있다는 긍정적인 반응과 무분별한 흡연에 따른 범죄율 증가, 청소년 탈선 문제 같은 부작용에 대한 우려가 제기됐다.
5년 만에 우려는 현실화했다. 거리 한복판에서는 앳된 얼굴의 10대들이 노숙자와 대마초, 알약 형태의 향정신성 의약품을 거래하는 장면이 곳곳에서 눈에 띄었다. 한편에선 몇몇 노숙자들이 버젓이 자기 팔에 주사기 바늘을 놓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대낮인데도 영화 ‘워킹데드’에 나오는 좀비처럼 걷는 노숙자들도 심심치 않게 보였다. 아편 성분인 오피오이드(마약성 진통제)의 일종인 ‘펜타닐’ 부작용이다. 헤로인의 50배를 넘는 독성을 가진 펜타닐은 환각 상태를 빠르게 유발한다. 산소 공급이 줄면서 뇌 일부를 손상시키는데, 제대로 걷지 못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걷다가 지친 노숙자는 그대로 주저앉아 있기도 했다. 중독자는 중추신경에 손상을 입어 허리를 제대로 펴지 못하기도 한다.
샌프란시스코는 마약과의 전쟁을 벌이는 중이다. 과거 대량의 펜타닐 유통 사례가 적발된 바 있다. CNN에 따르면 2021년 현지 경찰은 8.8㎏의 펜타닐을 압수했다. 이는 샌프란시스코 인구를 7번 이상 위험하게 할 수 있는 양이다. 펜타닐은 2㎎만으로 사망에 이르게 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2020년 샌프란시스코에서는 712건의 약물 과다복용 사망 사례가 발생했다. 2021년은 이를 넘어설 전망이다.
샌프란시스코의 범죄율도 치솟았다. 한때는 ‘골드러시’로 기회의 땅이라 불렸던 도시는 이제 ‘절도 범죄 도시’로 더 악명이 높다.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은 지난해 11월 미국 내 주요 도시 범죄율을 비교하며 샌프란시스코의 절도 범죄가 미국 도시 가운데 세 번째로 높은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지난해 샌프란시스코의 인구 10만명당 절도 범죄가 4400건으로 시애틀은 4900건, 덴버는 4670건에 이어 3위를 기록했다. 2019년에는 10만명당 5500건으로 가장 높은 수치를 보였다.
전체 범죄 건수도 2021년을 기점으로 치솟고 있다. 샌프란시스코 경찰에 따르면 코로나19 확산에 따라 락다운(봉쇄령) 조치가 시행했던 2020년의 경우 전년보다 범죄 건수가 22.8% 줄었지만, 2021년 13.5% 늘었고, 지난해에도 5% 증가했다. 현지에서는 경찰의 통계가 경찰에 보고된 숫자일 뿐 이보다 더 많은 범죄가 일어났을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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