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섭'이 말하는 국가와 국민의 존재 이유

아이즈 ize 정수진(칼럼니스트) 2023. 1. 17. 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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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즈 ize 정수진(칼럼니스트)

'교섭', 사진제공=플러스엠엔터테인먼트 

해외에서 신변에 문제가 생겼을 때, 우리는 조국을 찾는다. 국가는 재외국민을 보호할 의무가 있으니까. 대한민국 헌법 제2조 2항에 명시돼 있다. 영화 '교섭'(감독 임순례, 제작 영화사수박)은 한국인이 아프가니스탄의 무장단체 탈레반에게 납치되는 피랍사건에서 국민들을 구출해야 하는 이들의 이야기를 그렸다. 자국민 보호라는 다소 추상적인 말을 현실로 구현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낱낱이 담겨 있다는 소리다. 

2006년, 분쟁지역인 아프가니스탄에 단체 입국한 한국인들이 탈레반에게 납치돼 인질이 된다. 그것도 23명이나. 이 최악의 피랍사건으로 교섭 전문 외교관인 정재호(황정민) 실장이 아프가니스탄으로 향하고, 그곳에서 현지에서 잔뼈가 굵은 중앙아시아 전문 국정원 요원 박대식(현빈)을 만난다. 탈레반의 요구 조건은 현지 주둔 중인 한국군대를 철수하고, 인질과 같은 숫자의 탈레반 수감자를 석방하라는 것. 24시간을 기점으로 살해 시한이 통보된 이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정재호와 박대식은 교섭에 임해야 한다. 같은 공무원이지만 외교관과 국정원 요원의 입장과 대응하는 방법은 다를 수밖에 없다. 둘 사이 공통점은 인질들을 무사히 구해야 한다는 것뿐. 

'교섭', 사진제공=플러스엠엔터테인먼트

공식 외교 채널인 아프가니스탄 외무부를 통해 탈레반 수감자 석방을 시도하는 재호의 방법은 외교관의 정석이지만, 현지 사정에 밝은 대식의 예상대로 빤한 외교적 패는 도무지 통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이 바닥에서만 통하는 룰'을 찾아 이슬람 부족 지도자에 접근해 해결하려는 재호의 방식도 수월하게 진행되진 않는다. 영화는 인질 생환은 물론이요 아프가니스탄과 미국 등 국가 간의 관계도 고려해야 하는 재호와 과거 피랍 사건의 트라우마로 인해 물불 안 가리고 온몸으로 부딪치며 행동하는 대식의 갈등을 중반까지 이어가며 긴장감을 끌어 올린다. 

정재호와 박대식의 갈등이 봉합되는 건 '어떤 경우라도 사람의 목숨은 소중하다'라는 지극히 인간적인 감정, 그리고 '어떤 경우라도 국민을 살려야 한다'는 직업적인 사명감 때문이다. 때문에 '테러 집단과의 직접 협상 불가'라는 외교가의 원칙을 고수하던 재호가 "자국민을 보호하는 것이 외교부의 중요 사명 중 하나라고 알고 있습니다"라며 탈레반과의 직접 대면 협상을 주장하는데 이르는 과정은 꽤나 드라마틱하며, 재호를 책상물림으로 보던 대식이 재호를 든든하게 서포트하며 '케미'를 이루는 모습은 제법 뭉클함을 자아낸다. 

'교섭', 사진제공=플러스엠엔터테인먼트

'교섭'은 반목하던 두 주요 캐릭터가 갈등을 딛고 위기를 함께 극복하는 버디 무비의 클리셰를 충실히 따르지만, 배우들의 열연은 그 과정을 식상하지 않게 표현한다. 특히 열혈 캐릭터를 자주 맡았던 황정민이 원칙주의자 외교관 재호를 맡고, 단정한 엘리트 느낌이 잘 어울리는 현빈이 규칙에 얽매이지 않는 거칠고 자유분방한 모습으로 '국정원 또라이'로 불리는 대식으로 분해 기존의 이미지를 전복시키며 단조로움을 피한 점이 눈에 띈다. 영화 후반, 탈레반과의 대면 협상에서 엄청난 몰입으로 극한의 긴장을 자아내는 황정민의 연기는 그야말로 백미. 현빈은 턱의 대부분을 덮은 덥수룩한 수염과 헝클어진 헤어스타일, 아프가니스탄 현지에 최적화된 패션 등 이전에 볼 수 없던 파격적인 비주얼을 선보이고(덕분에 중간 과거 장면에서 탄성을 일으키는 효과를 낳는다), 동시에 오토바이와 자동차 액션으로 극에 강렬함을 부려 넣는다. 아프가니스탄의 공용어 파슈토어와 다리어에 능통한 통역사 카심 역할의 강기영도 빼놓을 수 없다. 긴장에 긴장을 더하는 재호와 대식 사이에서 적당한 유머와 넉살을 탑재한 카심은 과하지도 모자라지도 않은 적절한 감초 연기로 숨 쉴 틈을 제공한다.

문제는 영화의 소재가 주는 한계다. 지난 2007년 실제로 발생했던 한 교회 선교단의 아프가니스탄 피랍 사태를 모티프로 삼았는데, 여행제한국가였던 아프가니스탄에 선교를 목적으로 몰래 입국했다 피랍되었던 만큼 그 사건을 냉소적으로 바라보는 시선이 많기 때문. 인질에 대한 서사를 최대한 담지 않고, 인질이 아닌 그들을 구하려는 사람들에 초점을 맞췄으나 인질을 구해내면서 필연적으로 터져야 할 공감이 미진하다. 인질들에게 동정의 여지가 적으니 재호와 대식을 비롯한 사람들의 목숨을 건 노고가 당연한 것인가 하는 의문이 생기기 때문. 

사진제공=플러스엠엔터테인먼트

모든 일에는 이면이 있다. 40여 일에 걸쳐 협상하며 인질들을 구출한 사람들이 있다는 것은 짐작할 수 있지만 그 공은 모두 '국가'라는 주체에 돌아갈 뿐이다. '교섭'은 재외국민을 보호해야 한다는 국가의 의무와 더불어 '공무원은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이며, 국민에 대하여 책임을 진다'는 헌법 제7조 1항도 상기시킨다. 임순례 감독의 담백한 연출에 따라 이야기를 쫓다 보면 국가란 무엇이고 국민은 어떤 존재인가 곱씹어보게 된다. 12세 관람가에 108분 상영이니, 구정 연휴에 가족이 함께 관람 후 진지한 토론이 가능한 작품이 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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