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이 첫 거부권 행사한 스코틀랜드 ‘성별 정정’ 간소화 법···무슨 법이길래
영국 정부가 법적으로 성별을 바꾸는 절차를 간소화한 스코틀랜드 의회의 법안에 제동을 걸었다. 영국 정부의 거부권 행사는 1999년 스코틀랜드 의회 출범 이후 처음이다.
16일(현지시간) 영국 정부의 알리스터 잭 스코틀랜드 담당 장관은 스코틀랜드 의회가 통과시킨 ‘성 인식 법’이 영국 전역의 평등법에 미칠 ‘부정적인 영향’을 우려해 이 같은 조치를 예고했다고 BBC 등 현지 언론이 보도했다.
영국 정부는 스코틀랜드 의회가 통과시킨 법이 국왕의 승인을 받아 제정되는 것을 정부가 막을 수 있도록 한 스코틀랜드법 35조를 처음으로 발동할 예정이다. 스코틀랜드 자치 의회는 의료와 교육, 환경 등의 분야에서 자체적으로 법안을 마련할 수 있지만, 영국 정부가 궁극적인 사법권을 가진 사안에서 부정적인 영향이 예상되는 경우 영국 정부의 제재를 받을 수 있다.
앞서 스코틀랜드 의회는 지난달 23일 성전환자들이 법적으로 성별 정정을 간편하게 할 수 있도록 절차를 간소화하는 법안을 찬성 86표, 반대 39표로 통과시켰다. 기존에는 성전환자가 법적으로 성별을 정정하기 위해선 성별 위화감에 대한 의학적 진단과 함께 2년간 선택한 성별로 살아왔음을 증명해야 했다.
새 법안은 성별 위화감에 대한 의학적 소견 없이도 본인 선택만으로 성별 정정이 가능하도록 했으며, 신청 가능 연령을 현행 18세에서 16세로 낮췄다. 선택한 성별로 살아온 기간도 기존 2년에서 성인은 3개월로, 18세 미만은 6개월로 단축했다.
스코틀랜드 의회는 “트랜스젠더가 자신의 성별을 법적으로 인정받기 위해 고통스럽고 모욕적인 과정을 거치지 않도록 했다”고 법안 취지를 설명했다. 성소수자 단체들은 이 법안을 지지해 왔지만, 반대론자들은 성별 재지정(전환)이 쉬워지면 이를 악용하는 사례가 빈번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폭력적인 남성들이 가정폭력 쉼터나 탈의실 등 여성들의 공간에 쉽게 접근해 여성 권리를 침해할 수 있다는 우려다. 또 16세는 인생을 바꾸는 결정을 내리기엔 너무 이르다는 의견도 있다.
잭 장관은 영국 정부의 거부권 행사 방침을 밝히면서 “가볍게 결정하지 않았다”며 “이 법안은 무엇보다 스코틀랜드, 잉글랜드, 웨일즈 등 영국 전체 차원의 평등 문제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이며 따라서 이 조치가 필요하다고 결론냈다”고 밝혔다.
스코틀랜드 측은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니컬라 스터전 스코틀랜드 자치정부 수장은 트위터를 통해 “민주적으로 구성된 스코틀랜드 의회를 향한 전면적인 공격”이라며 “영국 정부가 트랜스젠더를 정치적 무기로 사용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가디언 등 현지 언론은 영국 정부의 이례적인 거부권 행사가 “스코틀랜드의 민족주의적 정서를 부추길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번 조치가 스터전이 추진하고 있는 스코틀랜드 분리 독립 움직임을 강화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왔다.
앞서 2014년 스코틀랜드 독립을 묻는 국민투표는 찬성 45%, 반대 55%로 부결됐다. 스코틀랜드 정부는 영국이 유럽연합(EU)에서 탈퇴했다는 점을 사유로 들며 또다시 독립 투표를 재추진했지만, 지난해 11월 영국 대법원에 의해 제동이 걸렸다.
선명수 기자 sm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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