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왕'의 귀환…정재봉의 사우스케이프, 백화점 입점한다 [박동휘의 컨슈머 리포트]
한섬 창업자인 정재봉 사우스케이프 회장은 1941년생의 고령에도 다부진 체격의 소유자다. 2012년 한섬을 현대백화점그룹에 매각한 뒤에 서울과 사우스케이프CC가 있는 남해를 오가며 틈틈이 헬스클럽에서 몸을 키웠다. 그의 지인들 전언에 따르면 정 회장은 “이럴 줄 알았으면 한섬을 팔지 말 것을…”이라며 후회하는 말을 종종 했다고 한다. 체력과 패션에 대한 열정이 비례했던 셈이다.
한국 여성복의 대부로 일컬어지는 정재봉 회장이 아내인 문미숙 감사와 함께 패션업에 복귀한다. 현대백화점그룹과의 한섬 양수도 계약서에 적시됐던 ‘겸업금지조항’이 올해부터 사라진 덕분이다. 현대백화점 관계자는 17일 “상생 차원에서 내린 결정”이라고 설명했다.
족쇄 풀어준 현대백화점그룹 "상생 차원 결단"
현대백화점그룹 계열사인 한섬은 지난해 11월 사우스케이프 보유 지분 14.5%를 450억원에 정 회장에게 매각했다. 현대백화점 관계자는 “무수익자산을 유동화하기 위한 차원이었다”고 말했다. 이 과정에서 현대백화점그룹도 정 회장을 옭아매던 ‘족쇄’를 풀어준 것으로 알려졌다. 작년까지 사우스케이프는 도산공원 인근 가두 매장 1곳과 온라인몰을 통해서만 제품을 팔았다.
정 회장은 우선 상반기 중 현대백화점의 전국 주요 점포에 사우스케이프 매장을 입점시킬 예정이다. 백화점 업계 관계자는 “올해부터 ‘코로나 특수’가 끝나면 골프웨어 시장의 거품이 꺼질 것이란 예상이 많다”며 “사우스케이프 같은 초고가 브랜드 몇 개로 생존자가 추려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특수 관계’인 현대백화점 외에 롯데백화점도 본점 등 핵심 점포에 사우스케이프를 위한 공간을 마련해 줄 것으로 알려졌다. 롯데백화점은 정 회장이 겸업금지조항에 묶여 있을 때도 끊임없이 ‘러브콜’을 보냈었다.
다만, 신세계 입점은 무산됐다. 패션 업계에선 “정 회장이 한섬을 매각할 당시 처음 접촉한 곳이 신세계였는데 가격 협상 과정에서 마찰이 있었던 것으로 안다”며 “아직 앙금이 남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신세계 관계자는 “제이린드버그(신세계인터내셔날), 지포어(코오롱FnC) 등 동급의 브랜드가 이미 많기 때문에 상반기에 굳이 사우스케이프를 들여올 이유가 없다고 판단했을 뿐”이라며 “사우스케이프로부터 신세계에 들어오고 싶다는 요청을 받은 바 있고, 올 하반기에 입점 협상을 다시 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문 콤비 복귀에 술렁이는 패션업계, "토종 브랜드 부활" VS "찻잔 속 태풍"
패션업계에선 정재봉·문미숙 ‘콤비’의 ‘황혼 창업’에 주목하고 있다. 골프웨어만 해도 정·문 콤비가 “취미 삼아” 만들었는데 국내 시장을 넘어 중국, 일본에서도 주목하는 브랜드로 성장 중이다. 골프웨어 업계 관계자는 “일본에서 매년 열리는 글로벌 골프 브랜드를 전시하는 행사에 지난해 한국에선 지포어와 사우스케이프가 초청됐다”고 말했다.
사우스케이프의 지난해 3분기까지 매출액은 164억원으로 전년 1년 치(162억원)를 가뿐히 넘었다. 전체 매출(514억원)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작년 9월 말 기준 32%로 빠르게 커지고 있다. 본업인 골프장 운영 매출 비중(44%)과 차이가 크게 없다. 수익성이 좋은 패션 부문이 성장하면서 사우스케이프 법인의 영업이익도 2021년 79억원에서 지난해엔 3분기 만에 82억원을 기록했다.
패션업계 관계자는 “사우스케이프는 고가 골프장이라는 이미지를 바탕으로 브랜딩에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며 “한섬과 직접 부딪힐 수 밖에 없는 여성복을 빼면 골프웨어 외에 다른 스포츠 패션 부문에 진출할 수도 있고, 파인 다이닝(정찬) 시장 등 비패션 시장으로도 뛰어들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문 콤비의 귀환으로 토종 디자이너 브랜드 시장이 부활할지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패션업계 관계자는 “정재봉 회장이 사우스케이프의 영역을 어디까지 확장할 지 지켜보는 이들이 많을 것”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선 2세로 상속을 위해서라도 사우스케이프의 외연을 확장할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지난해 3분기 말 기준으로 최대 주주인 정 회장의 지분율은 75.29%에 달한다. 아들(정형진)과 딸(정수진)은 사내이사로 등재돼 있는데, 지분율은 각각 7.58%, 0.01%다. 정 회장이 한섬을 자녀에게 승계하지 않고 매각을 택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자녀에게 경영권을 당장 넘겨줄 가능성은 작아 보인다. 다만, 자녀가 둘인 만큼 골프와 패션으로 사업 부문을 나눠 분할 상속을 준비할 수 있다는 게 업계 전망이다.
박동휘 기자 donghui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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