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격 잘못 봤나 의심" "장사할 맛 안나"…명절 대목 사라진 재래시장

설 연휴 나흘 앞둔 청량리 시장…"손님 너무 없어 한산"
"가격 너무 올라…가족 좋아하는 것만 골라 음식 장만"

17일 오전 8시 서울 동대문구 청량리청과물시장에서 장사 준비하는 상인들 모습.2023.1.17/뉴스1 ⓒ News1 유민주 기자

(서울=뉴스1) 유민주 원태성 기자 = "쪽파 한 단에 9000원에 팔던데 가격이 싸긴…."

설 연휴를 나흘 앞둔 17일 서울 동대문구 청량리청과물시장 상인들은 이른 아침부터 명절 선물박스를 나르는데 여념이 없었다. 영하 8도를 밑도는 추운 날씨에도 다가오는 명절 대목을 준비하며 분주히 움직였다.

오전 9시가 넘어가자 수레를 끌고 나온 손님들이 하나둘 보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손님 대부분은 채소·과일 가게 앞에서 가격을 물어보며 상품을 들었다 놨다 반복할 뿐 수레에 선뜻 담지 못했다. 몇번이나 망설인 끝에야 음식 장만에 쓰겠다며 재료를 담았다.

친구와 함께 시장을 찾은 50대 주부 A씨는 "단호박 하나에 2000원, 부추 한 단에 5000원, 이렇게 비싸다"며 "마트보다 쌀 것 같아서 왔는데 생각만큼 싸지 않아 명절엔 30만원정도 쓸 것 같다"고 말했다.

쪽파를 사고도 제값에 샀는지 궁금하던 주부 B씨는 굳이 다른 가게에 들러 쪽파 가격을 비교해보고는 "이 집은 8000원대인데 저는 9000원에 샀다"며 속상해했다.

가죽장갑을 끼고 꽉 찬 수레를 끌던 60대 주부 C씨는 "채소가 싼 건 싸졌는데 비싼 건 엄청 비싸다"며 "주먹 두 개만 한 단호박이 하나에 만원이라고 해 여기저기 둘러보고 비교해 사려고 한다"면서 발걸음을 재촉했다.

마트도 가격은 비슷했다. 서울 강서구 등촌동에 산다는 장모씨(56)는 "아이들 먹는 슬라이스 치즈 600g짜리가 얼마 전 7000원이었는데 지금은 만원 가까이 된다"면서 "고기나 식용류는 말할 것도 없고 값이 두배씩 뛰어 내가 잘못봤나 의심할 정도"라며 고개를 저었다.

장씨는 "차례나 제사 때 고기까지 합해 50만원대로 장을 봤는데 이제는 그 돈으로 어림없다"며 "이번에는 음식 가짓수를 줄일 예정"이라고 말했다.

경기 용인에 사는 임모씨(62)는 "몇 달 전 4000원 하던 순두부가 4500원이 됐다"며 "이번 설에는 가족이 좋아하는 것 음식 몇 가지만 할 것"이라고 설 음식 계획을 알려줬다.

17일 오전 서울 동대문구 청량리청과물시장에 장 보러 나온 사람들 . 2023.1.17/뉴스1 ⓒ News1 유민주 기자

◇ 할인해도 덥석 안사…"장사할 맛 안난다"

상인들도 손님이 예년의 절반으로 줄었다며 울상을 지었다. 이날 청량리 시장엔 세일 행사 현수막이 걸려 있었지만 오전 내내 한산했다.

배를 파는 한 상인은 "전에는 회사나 업체에서 100상자씩 대량 주문이 들어왔는데 지금은 그런 주문이 한 건도 없다"면서 "장사할 맛이 안 난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경동 도매시장의 한 상인은 "설 명절에 차례 지내는 문화가 많이 사라져 음식 준비에 큰 공을 안드리니까 대목이 거의 없어졌다"며 고개를 저었다.

마트 체인점 지점장 김모씨(52)도 "이젠 (사람들이) 할인한다고 해도 물건을 덥석 사지 않는다"면서 "예전엔 사람들이 명절 연휴 내내 먹을 만큼 음식을 많이 준비했는데 이젠 할인을 해도 잘 안산다"며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온오프라인으로 수입 과일을 파는 재래시장의 한 상인은 "인터넷으로 주문하면 집 앞까지 가져다 주니까 시장을 찾아올 이유가 없다"며 "직접 보고 사야 하는 습관이 남아 있는 분이나 전통시장을 찾는다"고 말했다.

17일 오전 서울 동대문구 청량리청과물시장에 걸린 설 명절 세일 펼침막.2023.1.17/뉴스1 ⓒ News1 유민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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