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문일답] 박항서, “베트남 5년, 평생 잊지 못할 것 같다”
[스포탈코리아] 박주성 기자= 박항서 베트남 대표팀 감독이 마지막 경기를 치른 소회를 전했다.
박항서 감독은 지난 16일 태국 방콕에서 열린 2022 아세안축구연맹(AFF) 미쓰비시 일렉트릭컵 결승전 2차전에서 태국에 0-1로 패배했다. 1차전에서 2-2 무승부를 거뒀지만 합계 스코어 2-3으로 준우승에 머물렀다.
박항서 감독의 마지막 경기가 이렇게 끝났다. 2017년 베트남 대표팀에 부임한 그는 스즈키컵에서 우승을 차지했고, 월드컵 최종예선까지 진출하는 등 베트남 축구를 한 단계 발전시켰다. 2002년 거스 히딩크처럼 박항서 감독은 베트남에 중요한 인물이 됐다.
박항서 감독은 17일 오후 국내 취재진과 화상 기자회견을 통해 베트남 대표팀을 마친 소감을 전했다. 그는 “이별을 해야한다는 게 마음 아프지만 우리가 살아가는데 만남과 헤어짐이 있기 때문에 이별의 아픔은 있지만 베트남 축구가 더 발전하기 위해 불가피한 선택이었다”고 밝혔다.
[박항서 베트남 감독 일문일답]
-베트남 대표팀을 마무리한 소감
5년간 베트남 23세와 국가대표팀 감독직을 어제로 마지막 동행을 했다. 준우승에 그쳤지만 선수들은 최선을 다했다. 우승을 못한 아쉬움은 남지만 최선을 다해준 선수들에게 감사드리고 마지막 동행, 이별을 해야한다는 게 마음 아프지만 우리가 살아가는데 만남과 헤어짐이 있기 때문에 베트남 축구가 더 발전하기 위해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저도 마음의 정리를 해서 새로운 여정에 나설 생각이다.
-5년이 짧지 않은 시간인데?
여러 번 이야기했지만 처음에 베트남이라는 낯선 곳에 장기간 있을리라 생각지도 못했다. 1년만 버티자고 했는데 5년까지 왔다. 긴 세월이다. 생각보다 길었던 세월이다. 매 대회 때마다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하지만 뒤돌아보면 부족한 면도 많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지금도 제 방 옆에서 선수들이 떠들고 있다. 나름대로 후회 없이 했다고 생각하지만 선수들과 코치들, 스태프들과 헤어진다는 것에 대해 아쉽고 마음이 아프다. 그렇지만 항상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이 있는 것이고 이 결정을 하기까지는 베트남 축구도 한 단계 성장해야 하고 저도 새로운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기 때문에 어려운 결정을 했다. 기억에 남는 건 5년간 여러 가지 좋은 기억이 많다.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우리 선수들이다. 우리 선수들이 운동장에서 저에게 많이 혼도 났지만 사랑방이라고 할 수 있는 의무실에서 선수들과 뒹굴고 함께했던 순간이 기억에 남을 것 같다.
-국내에서 감독직을 하지 않을 거라고 밝혔다. 향후 계획은?
제가 베트남과 한국에서는 감독을 하지 않는다고 분명히 말씀 드렸다. 베트남에서는 국가대표팀 감독을 했는데 현장 감독으로서 역할은 생각이 없다. 한국은 저보다 훌륭한 후배들, 동료들이 더 많다. 제가 특별히 한국에서, 현장에서 해야할 일은 없다고 판단하고 있다. 분명히 이야기하지만 한국에서는 현장 감독으로서는 일할 계획이 없다. 그분들이 열심히 한국 축구를 위해 하고 있다. 긴 시간은 아니지만 5년간 떠나 있었기 때문에 현장감도 떨어지고 현재로서는 현장에 감독으로 할 생각은 없다. 미래에 대해서는 저는 성격상 다른 생각을 잘 하지 못하는 편이다. 매니지먼트 대표에게도 시합 중에는 이야기를 하지 말라고 이야기를 했다. 회사 대표가 앞으로 미래에 대해 몇가지 안을 갖고 있는 것 같지만 그 부분이 저도 생각을 해봐야 하고 가족과 상의를 해봐야할 것이다. 어떤 곳에서 어떤 일을 해야 가장 제가 적합할 것인지 고민해봐야 한다. 분명한 것은 축구를 잘할 수 있고 하더라고 축구 일을 할 거라고 생각한다.
-성인 팀이 아닌 유소년이나 어린 선수들을 지도할 계획은?
잘 모르겠다. 아직 그 계획은 없다. 한국에는 학원 스포츠, 유스 클럽 등 많은 곳이 있다. 기회가 되면 할 수 있을 수 있겠지만 제 역량으로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한국이 싫은 것은 아닌데 지금 베트남에서는 한국보다는 그런 부분이 더 필요한 것 같아서 생각한 적도 있었다. 구체적으로 유소년 축구 제안도 들어오고 있어 고민 중이다.
-외국에서 성공한 한국지도자로서 우리나라 축구계에 해줄 말은?
제가 어떻게 성공한 지도자라고 하겠나. 저는 베트남에서 기억되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다. 한국 사람이 열심히 했다 정도로 기억되고 싶다. 제가 감히 어떻게 한국 대표팀에 대해 평가를 하겠냐만 우리 한국에도 유능한 지도자들이 많다. 제가 한국 지도자들을 선택할 수 있는 위치에 있기 때문에 뭐라고 단정적으로 말할 수 없지만 조금 한국 지도자들이 언어 소통에 문제가 걸림돌이라는 점 외에는 한국에도 유능한 지도자가 많고 국가대표팀을 이끌 수 있는 지도자가 있다고 생각한다. 감독을 선임하는 협회, 기술위원회에서 보는 시각은 저와 다를 수도 있다. 그런 부분에 대해 이렇다저렇다 말할 수 없다. 분명한 것은 우리 지도자들도 언어 소통 빼고는 감독으로서의 역량은 충분히 국내 지도자가 맡아도 우리 국가대표팀을 잘 이끌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단지 저는 왜 국내 지도자가 맡으면 협회에서 금전적인 것보다 외국 감독만큼 지원하지 않는 것에 대해 의문은 든다. 그런 부분만 이행된다면 국내 지도자가 충분히 국가대표팀을 맡을 수 있고 역량을 발휘할 수 있을리라 본다. 덧붙이자면 협회와 미디어는 여러 조언을 할 수 있다. 일정 부분을 감독이 소신 있게 할 수 있게끔 협회가 방패 역할을 해야 한다. 협회도 그런 역할을 했는지 뒤돌아보고 국내 감독들도 역량이 있다는 것을 인식했으면 좋겠다. 저는 이번에 기술위원장님을 뵙지 못했지만 독일분이 됐다는 걸로 알고 있는데 거기에 의문이 생겼다. 기술위원장님이 과연 한국 지도자의 역량을 얼마나 알지다. 어떤 서류와 데이터가 온다고 해서 정확한 평가가 가능할까. 기술위원장을 선임할 때 외국 감독을 뽑기 위해 선임했나 의아하게 생각했다. 기술위원장님이 외국인이 간 것에 대해서는 의외라고 생각한다.
- 프로구단이나 연맹, 협회 등에서 행정가의 길도 열어놓고 있는지?
해외에서는 말이 통하지 않는다. 국내에서는 협회나 연맹에 들어갈 생각은 없다. 제가 그렇다고 해서 행정 능력은 없기 때문에 제가 잘할 수 있는 건 기술적인 부분이다. 그런 제안이 온다면 고려해 볼만 하지만 협회나 연맹에 들어갈 생각은 없다. 저를 받아 주지도 않을 거다.
-감독님 축구 인생에 있어 베트남에서 5년은 어떤 기억?
5년 동안 여기에 와서 저도 한국에 있을 때 3부 감독까지 내려갔다가 국가대표팀을 맡으면서 타국에서 인정받기 위해서는 나름대로 노력을 했다. 노력이라는 건 항상 압박을 받은 것에 대한 결과물이다. 감독은 결과물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하고 결과물을 내놓지 못하면 감독 자리를 잃을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결과물을 냈을 때는 축구에 기술적인 부분을 두고 비판을 하곤 한다. 양면의 것을 다 충족시켜주면 좋겠지만 할 수 없다고 생각했고 한 때 어려움도 있었지만 저를 격려해주고 국민들이 지지해줬기 때문에 5년이라는 세월을 있을 수 있었다. 여기 와서 정말 같이 동행해준 코치진과 스태프 모두에게 감사하다. 선수들과 함께한 순간은 평생 잊지 못할 거다. 여기 와서 한국 분들도 많이 만났지만 베트남 와서 만났던 친구들도 많이 있다. 그분들과도 축구 아닌 인간으로서의 교류도 많이 쌓았다. 감독의 목표보다는 그런 관계에 있어서 소중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5년 동안의 시간은 제 인생에 있어서 큰 부분을 차지할 것이라고 예단할 수는 없지만 그런 5년이라고 생각한다.
-동남아에 진출한 한국 지도자들에게 조언을 해준다면?
조언까지 할 입장은 못되고 국가대표팀에 부름을 받게 된다면 능력을 인정받은 것이고 그렇기에 잘하리라 생각한다. 타국에서 일하는 것 자체가 한국보다 쉬울 수도 있지만 어렵다고 생각한다. 다양성과 문화를 존중하면서 중요한 것은 감독이라면 선수들로부터 신뢰와 믿음이 중요하다. 저도 부족하지만 나름대로 한국인이라는 자부심과 책임감을 갖고 조심스럽게 행동을 했다. 저보다 훌륭한 분들이 많으니 잘 하리라 생각한다.
-2026년 북중미 월드컵까지 베트남을 이끌고 싶은 욕심도 있었을텐데?
그런 욕심은 없었다. 저는 처음에 2년 계약이 끝났을 때 많은 분들이 박수칠 때 떠나라고 했다. 2년 이후에 떠나야 한다고 말한 친구들도 많았다. 그때는 협회에 23세만 하겠다고 해서 1년 더했다. 4년+1년 했을 때는 결과가 좋은 안좋든 어느 정도 베트남이 달성했다고 생각했고 부임할 때 피파랭킹 100위 안에 들어가겠다는 목표도 달성했다. 그렇기 때문에 5년째되면 떠나겠다는 마음을 먹었다. 그 부분은 다음 세대, 후임 감독이 하면 되는 것이다. 제 임무는 여기까지라고 생각했다.
-베트남 감독으로 마지막 경기를 치른 뒤 감정은?
시합 기간 중에 마지막이라는 표현을 우리 선수들에게 쓰고 싶지 않았다. 처음 오자마자 끝날 때까지 제가 초심으로 돌아가자는 다짐을 했고 어느 대회든 간에 교만해질 때도 있어서 잡기 위해 노력도 했다. 매 경기 내가 틀리더라도 매 경기 준비하도록 준비했다. 막상 끝나고 나니 이제는 떠나는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편으로는 우승하지 못했다는 아쉬움도 들었다. 약간의 화가 나기도 했다. 끝나고 나니 이 부분에 대해 조금 잘못 선택했다는 부분도 있었다. 이제 대표팀을 떠난다고 생각하니 편안해지기도 하지만 선수들과 동고동락을 못한다고 생각하니까 서운하고 아쉬운 마음이 많이 들었다.
-2026년 월드컵에 감독으로 출전하고 싶으신 마음은 없는지?
월드컵이라는 대회는 이번에 우리가 카타르 월드컵에서 봤듯이 경험한 팀과 경험하지 못한 팀에 차이가 있다. 카타르 대표팀을 보면서 느꼈다. 그만큼 경험이 중요하다. 제가 미흡하지만 그런 팀에서 저를 불러준다면 생각을 해봐야할 것 같다. 하지만 저를 부를 팀이 없을 것 같다.
-한국에서 지난 5년간 박 감독님과 베트남 축구를 응원한 팬들에게
조국인 한국 축구 팬, 국민 여러분께 너무 감사드린다. 베트남에서 일을 하고 있지만 한국인이라는 것 때문에 많은 격려를 해주신 것 잘 알고 있다. 한국인이라는 자부심을 느끼고 부족하지만 열심히 노력했다고 생각한다. 지난 5년간 베트남 축구, 국가대표팀, 박항서를 응원해주신 축구 팬, 국민들께 감사드리고 구정이 다녀오니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감사합니다.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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