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7세 어머니의 그림 그리기.. 중년 딸의 눈물, 왜?
중년의 A씨는 97세 '엄마'의 뒷모습을 볼 때마다 눈시울이 붉어진다. 100세를 눈앞에 둔 어머니는 매일 그림을 그리고 일기를 쓴다. 한가한 취미 활동이 아니다. 자식들을 위해 있는 힘을 다하는 나름의 '치매 예방법'이다. 연필을 사용해 그날 했던 일들을 종이에 그린다. 일기도 메모 형식으로 아침부터 저녁까지 한 일을 적는다. 어머니는 기억력 유지에 큰 도움이 된다고 흡족해 한다.
A씨는 3녀1남 중 막내딸이다. 4남매가 낳은 자녀들은 거의 할머니의 보살핌 속에 컸다. 맞벌이로 바쁜 아들과 며느리를 위해 손주 2명을 초등학교 3학년 때까지 돌봤다. 딸들도 어머니에게 아이들을 맡긴 경우가 많았다. A씨의 두 자녀들도 어머니의 손을 거쳤다. 그는 "엄마는 어린이집 원장님 같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지금 생각하니 참 철없는 말이었다. 어머니는 그 많은 손주들을 돌보느라 얼마나 힘들었을까...
어머니는 손주들이 혼자서 통학이 가능하자 서울 집을 떠나 지방으로 이사했다. 돌아가신 아버지 고향 집을 수리해 혼자 거주하고 있다. 서울에서 꽤 멀어 자주 갈 수가 없다. 자녀들의 만류를 뿌리친 엄마의 이사 이유를 뒤늦게 알게 됐다. "손주들이 다 컸으니 내 할 일이 끝났다. 이제 자식들 곁에서 부담주기 싫다"... 매일 그림 그리기와 일기를 쓰는 것도 치매에 걸리면 자식들이 큰 고생을 할까봐 전문가와 의논한 결과였다.
평생 자식들을 위해 헌신한 어머니는 이제 마지막 '치매의 벽'을 넘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하고 있다.
중앙치매센터에 따르면 2021년 기준 89만여 명이 치매를 앓고 있다. 전국 65세 이상 인구의 10%가 넘는 숫자다. 2024년에는 100만 명을 넘어설 것으로 예측된다. 치매 환자 중 여성 비율이 약 62%로 남성(38%)의 2배에 육박한다.
왜 여성 치매 환자가 많을까? 요즘 주목되는 학설이 에스트로겐(여성호르몬) 관련성이다. 이 호르몬은 여성의 혈관, 뼈 외에 신경세포도 보호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폐경으로 인해 이런 보호막이 걷히면 신경세포 이상으로 우울감, 우울증에 이어 기억력 등 인지능력에 문제가 생긴다는 주장이다.
실제로 여성의 우울 비율은 남성의 2배 이상이다. 국내 65세 이상 2938명(남 1279명, 여 1659명)을 조사한 결과 여성의 우울 비율은 8.6%로, 남성(3.7%)의 2배 이상이었다(대한영양사협회 학술지). 여성의 기대수명은 86.5세로 남성(80.5세)보다 오래 살지만, 그 기간 동안 각종 병으로 고통받고 있다. 앓는 기간이 긴 '장수'보다는 '건강수명'(건강하게 장수)이 중요해졌다.
치매는 본인은 물론 가족의 평화로운 일상까지 무너뜨리는 참혹한 병이다. 건강할 때는 존경받던 분들이 치매를 오래 앓으면 원망의 대상이 될 수 있다. 명예를 위해 평생 자기 절제를 했던 분이 인생의 마무리에서 큰 어려움을 겪는다. 치매의 원인은 크게 세 가지다. 70% 정도가 알츠하이머병이고 20% 정도가 뇌졸중 후유증인 혈관성 치매, 그리고 과음으로 인한 알코올성 치매 등이다. 혈관성-알코올성 치매는 금연, 음식 조절, 운동 등 생활습관 관리로 충분히 예방이 가능하다.
갱년기 여성은 혈관을 보호하던 에스트로겐이 사라지는 폐경 이후 뇌졸중 위험이 매우 높아진다. 혈관성 치매 가능성도 증가하는 것이다. 치매 예방을 위해 노년기 우울증 치료도 매우 중요하다. 우울증은 반드시 정신과 전문의의 처방에 따라 약을 먹어야 한다. 정신력으로 극복되는 병이 절대 아니다. 특히 수면장애로 수면시간이 짧아질수록 치매 유발 단백질이 뇌에 쌓여 인지기능이 떨어질 위험이 커진다.
A씨 어머니의 그림 그리기와 일기는 치매 예방에 도움이 된다. 매일 하루 전체의 기억을 더듬으며 인지기능을 되살리고 손을 사용하기 때문이다. 뜨개질 등 세밀한 손 동작을 이용한 작업이 치매 예방에 좋다(질병관리청). 아침마다 수십 개의 전국 산 이름을 외우는 분도 있다. 현재까지 확인된 치매 예방법은 운동이다. 정식 운동뿐만 아니라 부지런히 몸을 움직여야 한다. 편하다고 눕거나 앉아서 오래 지내면 치매는 물론 다른 질병 위험도 높아진다.
치열하게 일생을 사신 어머니는 '마지막 위험'인 치매와의 싸움에서 이기고 있다. 97세에도 기억력이 또렷하다. 거의 매일 일기에 등장하는 손주들의 이름도 다 외우고 있다. A씨는 약간 등이 굽은 엄마의 뒷모습을 보면 눈물이 난다. 막내로서 엄마의 사랑을 독차지했는데 나는 엄마를 위해 무엇을 했는가... 어머니는 만일의 경우에 대비해 이웃집에 연락할 수 있는 비상벨까지 설치했다.
엄마는 "이제 마지막 자식 사랑은 치매 예방"이라고 되뇌인다. 철없던 막내딸 A씨도 어느새 치매를 걱정할 나이가 됐다. 어머니의 그림과 일기에서 새삼 '엄마의 사랑'을 실감한다.
김용 기자 (ecok@korme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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