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에선 기업인, 여기선 범죄자" 외국인 경영자가 韓 기피하는 이유
[편집자주] 노동 시장의 양극화, 잦은 파업 등으로 노사 문제가 한국 경제의 발목을 잡은지 오래다. 주요 국가들과의 노동 시장 경쟁력 격차가 갈수록 벌어지고 있어 더 이상 개혁을 늦춰선 안된다는 목소리가 높다. 윤석열 정부도 3대 개혁 과제 중 노동 분야를 첫 손에 꼽고 있다. 머니투데이가 새해를 맞아 한국경영자총협회와 함께 성공적인 노동 개혁을 위한 과제와 방향을 모색한다.
"노동관계법에 기업인들에 대한 처벌 규정이 너무 많습니다. 이것 때문에 한국에서 근무하는 것을 기피하는 사람도 있어요. 이래서야 외국기업이 한국에 투자를 하겠습니까."
카허 카젬 전 한국GM 사장은 협력업체 소속 근로자 1700명을 불법 파견받은 혐의로 지난 9일 1심에서 징역 8개월, 집행유예 2년의 유죄 선고를 받았다. 한국GM의 대표 임기는 통상 2~3년이지만 카젬 전 사장은 지난해 6월 상하이GM 총괄부사장으로 이동하기까지 5년을 재임해야 했다. 불법 파견 재판 문제 외에도 본사 임원이 한국 부임을 꺼린 탓이다. 비슷한 불법 파견 이슈가 일본, 독일 등에서 벌어졌다면 카젬 전 사장은 아예 처벌받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 주요국들에 비해 한국의 사용자 처벌 규정이 훨씬 엄격하기 때문이다.
17일 재계에 따르면 국내 근로기준법이나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등 노동과 관련한 법은 위반행위자, 특히 사용자를 처벌하는 조항을 가지고 있다. 일본, 독일 등 선진국의 경우 경미한 처벌에 그치거나 아예 처벌하지 않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현행 근로기준법 110조는 연장근로 초과 등 정해진 근로시간을 위반할 경우 사업주가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을 받도록 하고 있다. 또 111조는 부당해고자에 대한 구제명령이 확정됐을 때 이를 불이행했을 경우 사업주를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을 받도록 했다.
비슷한 조항에 대한 해외의 처벌은 다르다. 일본의 경우 근로시간을 위반한 사업주에게 6개월 이하의 징역 또는 30만엔(약 288만원) 이하의 벌금형을 내리도록 하고 있다. 독일은 근로시간 위반 시 사업주에게 최대 1만5000유로(약 2012만원)의 과태료만이 부과된다. 다만 고의로 근로시간을 위반해 근로자의 건강이나 노동력에 해를 가한 경우에 한해 최대 1년 이하의 자유형 또는 벌금형을 내리도록 했다.
부당해고자에 대한 구제명령 불이행과 관련해서는 일본, 독일 모두 처벌규정이 존재하지 않는다. 미국은 근로시간 위반에 대한 처벌규정도 없다.
파견근로와 관련해서도 마찬가지다. 현행 파견법 43조는 파견 사유 및 기간 제한 위반 시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부과하도록 돼 있는데, 일본은 이에 대한 형사제제 규정이 없다. 독일은 무허가 파견 등 파견 절차 위반에 대해서만 제재를 부과하고 있다.
이 외에도 노조법, 중대재해처벌법 등도 해외와 달리 사용자에 대한 처벌을 가지고 있다. 국내 노조법 46조는 직장폐쇄 요건을 위반했을 시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부과하도록 돼 있는데, 일본, 독일, 중국은 이에 대한 처벌 규정을 가지고 있지 않다. 부당노동행위에 대한 처벌을 규정한 노조법 90조 역시 국내에는 사용자에 대한 처벌 규정만 존재한다. 일본, 미국은 형사처벌 규정이 없고 유럽의 경우 개별적 행위에 대한 처벌 규정이 있는 경우가 있다.
경영계에서 가장 큰 문제로 꼽는 중대재해처벌법은 안전 및 보건확보 의무 위반 등으로 중대재해 발생시 1년 이하 징역 또는 10억원 이하의 벌금형이 선고되고, 형 확정 후 5년 이내에 다시 중대재해가 발생한 경우 형의 2분의 1까지 가중된다. 산재사망 발생 시 별도의 사업주 처벌이 없는 일본과는 차이가 크다. 독일은 반복·고의적인 위반의 경우에만 처벌하도록 돼있다.
처벌로 인한 예방 효과도 크지 않다는 것이 중론이다. 고용노동부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3분기 기준 50인 이상 사업장에서 중대재해 발생으로 사망한 인원은 650명으로 전년(559명) 대비 오히려 91명 늘었다. 반면 50인 미만 사업장에서는 전년 동기 대비 56명이 줄어들었다.
한국경영자총협회 관계자는 "2007년 근로기준법 개정시 부당해고에 대한 사용자 처벌규정(5년이하 징역 또는 3천만원 이하 벌금)을 삭제했으나, 이후 부당해고가 크게 증가하거나 하는 부작용은 발생하지 않았다"며 "노동관계법상의 여러 사용자 처벌규정을 정비하여 형량을 완화하거나 폐지하는 법개정을 추진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경영계에서는 형벌규정 전반에 대한 분석과 조사를 통해 점진적으로 이를 선진국에 맞게 고쳐나가야 한다고 지적한다. 이같은 조치가 이뤄지지 않는다면 국내기업이나 해외기업을 가리지 않고 국내 투자를 점점 꺼리게 될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최준선 성균관대 명예교수는 "법령에 형벌이 너무 많아 기업들이 숨쉬기가 힘들 지경"이라며 "기업과 기업인을 악의 뿌리로 보는 1970~80년대식 논리에서 벗어나 기업하기 좋은 곳으로 경제의 토양을 바꿔야 한다"고 했다.
이태성 기자 lts320@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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