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제징용 배상’ 논의에 포스코를 불러낸 그날의 사실

공성윤 기자 2023. 1. 17. 1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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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 시민단체, 박태준 회장 창업정신 다시 쓴 『포스코는 국민기업이다』 발간…”우리 주장은 지역이기주의 아니다”

(시사저널=공성윤 기자)

"가장 먼저 기억할 것은 포스코의 종자돈이 대일청구권 자금이었다는 사실입니다. 바로 거기서 포스코에 요구되는 고도의 윤리의식이 나오는 것입니다." 고(故) 박태준 포스코 창업회장이 생애 마지막 연설에서 했다는 말이다. 그 말대로 포스코의 창립 기금은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에 따라 일본으로부터 받은 경제협력자금이었다. 당시 협력자금 5억 달러 중 24%인 1억1948만 달러가 포스코의 전신인 포항종합제철에 투입됐다. 이는 포스코가 민영화된 지금도 변하지 않는 사실이다.

1992년 10월3일 박정희 대통령 묘소에서 임무완수를 고하는 박태준 포스코 창업회장 ⓒ 범대위 제공

"더는 국민기업이란 이름으로 포스코를 향한 부당한 간섭과 과도한 요구는 없어져야 한다." 2022년 4월 포스코홀딩스 경영전략팀이 임직원들에게 보냈다는 이메일 내용의 일부다. 두 달 뒤인 6월에는 최정우 포스코 회장이 임원들과의 자리에서 또다시 "포스코는 국민기업이 아니다"란 주장을 펼친 것으로 알려졌다. 국민기업을 거부하는 포스코의 경영 방침이 사실상 굳어진 셈이다. 포스코는 "일본 측 자금을 모두 갚았고 그 뒤로 특혜를 받은 게 없다"는 이유로 이 같은 방침을 내세웠다. 포스코의 본산인 경북 포항의 시민들은 강력 반발했다. "제철보국의 창업정신을 저버리고 정체성과 역사를 부정한다"는 것이다.

일본 돈으로 설립된 포스코, 이젠 "국민기업 아니다?"

1월16일 출간된 책 『포스코는 국민기업이다』는 이러한 배경에서 세상에 나왔다. 책을 펴낸 포항 시민단체 '포스코지주사 본사·미래기술연구원 포항이전 범시민대책위원회(이하 범대위)'는 "포항에 있던 지주사 본사의 서울 이전과 미래기술연구원의 수도권 신설은 국민기업 포스코의 길을 거꾸로 가겠다는 것"이라며 "국민기업 포스코의 피고용자 임기는 책임회피용 방패가 아니다"라고 밝혔다.

이와 관련해 일부 언론은 범대위의 목소리를 '지역이기주의'로 간주했다. 지역균형발전론을 내세워 막무가내식 주장을 펼친다는 것이다. 강창호 범대위 위원장은 "우리의 주장은 결코 지역이기주의나 부당한 경영간섭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강 위원장은 "이번 책을 통해 국가적 난제 해결을 회피하고 포항의 자긍심을 파손한 최정우 회장의 행태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했다"며 "포항시민이 왜 '최정우 퇴출'을 외치는지 독자들도 공감하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포스코는 국민기업이다』는 모두 4부로 구성됐다. 1부에는 포스코 원년 경영자들의 충언이 정리돼있고 2부에는 포스코의 역사를 새긴 리더십의 현장이 묘사돼 있다. 3부에는 포스코의 설립 바탕이 된 박정희 전 대통령과 박태준 창업회장이 만남 과정이 그려져 있다. 마지막으로 4부에는 지난해 2월부터 11개월째 투쟁을 이어오고 있는 범대위의 활동 모습과 목소리가 담겨 있다.

책에 담긴 특별자료 중에는 지난해 포스코 창업세대 45명이 박태준 회장의 영전에 바친 편지가 포함돼 있다. 여기에는 이 같은 내용이 적혀 있다.

"포항제철소 현장 후배들이 창사 이래 최악의 사태를 수습하는 과정에서 수해만 복구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수해복구의 구슬땀이 그동안 녹슬게 했던 '포스코 혼'도 닦아내서 다시 광택을 회복할 것입니다. 물론 훼손된 설비와 경제적 손실의 극복이 시급하지만 '포스코 혼'을 제대로 회복하는 것이 회사의 근간을 굳건히 바로 세우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포스코지주사 본사·미래기술연구원 포항이전 범시민대책위원회가 1월16일 출간한 책 『포스코는 국민기업이다』 표지

"'포스코 혼' 회복이 근간 바로세우는 길"

최근 정부는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에 대한 배상 판결 문제를 풀기 위해 제3자 변제를 공식화했다. 일본 기업의 배상금이 아니라 국내 기업의 기부금을 모아 전달하겠다는 취지다. 일본에게 면죄부를 준다는 점에서 반발을 사는 가운데, 우선 포스코가 기부금 출연처로 거론되고 있다. 창립 기금이 일제 자금이라는 과거 때문이다.

포스코는 1월13일 이와 관련해 "공식 요청이 들어오면 절차를 거쳐 검토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역사 속에 녹아 있는 국민기업이란 정체성을 완전히 끊어내지 못했다는 뉘앙스가 읽힌다. 2003년 5월 박태준 창업회장은 신임 경영진들에게 '溫故知新(온고지신)' 네 글자를 붓으로 써서 건넸다. 옛것을 익히고 새것을 알면 스승이 될 수 있다는 공자의 가르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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