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갈비 사야 하는데…” 특가 정육점엔 몇시간째 줄 [빨리 찾아온 설]
[헤럴드경제=김희량 기자] “LA 갈비는 다 팔렸어요. 내일 오세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엔데믹 이후 첫 명절 연휴를 닷새 앞둔 16일 오후 서울 동대문구의 대표적인 전통시장 경동시장 내 A정육점. 고기를 구입하려는 소비자가 30여명 넘게 모여 있는 모습이 몇 시간째 계속됐다. 육류를 직접 가공·현장 판매하는 이곳의 가격 때문이다. 국내산 돼지고기 근(600g)당 가격이 삼겹살은 1만2000원, 목살은 8500원으로 시세에 비해 각각 20%, 50%가량 저렴했다.
이곳의 미국산 LA갈비 가격은 근당 1만8000원으로 인근의 1만5000~1만6000원에 비해서는 비싼 편이었지만 오전부터 고기를 구입하려는 시민으로 이미 이날 준비된 양은 1시간이 지나자 금방 동이 났다. 원하는 부위를 구입하지 못한 시민은 “내일(17일) 몇 시에 여냐”를 재차 묻고는 발걸음을 돌렸다.
3년 만의 온전한 대면 명절을 앞두고 이곳에는 가족과 함께 즐길 수 있는 식재료를 찾는 시민이 많았다. 이날 눈에 띄게 팔리는 육류는 LA갈비였다. 아직 물량이 남은 인근 정육점에서는 5~6명이 줄지어 있었다. 한 시민은 저울에 뜨는 숫자들을 보고 고기 양을 줄였다. “값이 왜 이리 비싸냐”고 묻기도 했다. 상인은 “최근까지 한 근에 1만6000원에 팔다가 1만5000원에 파는 것”이라고 설득하기도 했다.
기자가 찾은 경동시장과 인근 청량리청과물시장은 장바구니를 끌고 장을 보는 시민으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선물세트가 차량에 실리고 배송오토바이와 주차차량을 안내하는 호루라기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지난해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전년 대비 5%대를 유지하며 고물가가 이어지는 가운데 가격을 듣고는 좀처럼 구입하지 못하는 시민의 모습도 쉽게 보였다. 한 생선가게에 들른 자매는 중형 굴비 한 줄에 7만원이라는 가격을 듣고는 “아이고, 비싸네. 형부가 내일 잡아오셔”라는 웃픈(웃기고도 슬픈) 농담을 하면서도 고민하다 결국 발걸음을 옮겼다. “나도 대목이라 지금 비싸게 파는 게 아니다”며 손님을 잡아보려는 상인의 목소리에도 씁쓸함이 묻어났다. 지난해 어획량 급감으로 원재료의 산지 가격이 이 20% 가까이 오른 굴비 판매대 앞에는 2~3명의 손님만 모였다.
경동시장을 거쳐 청량리청과물시장을 돌아본 기자가 이날 시민에게 가장 많이 들은 단어는 ‘발품’이었다. 앞을 제대로 보지 않으면 길을 가다 부딪힐 정도로 인파가 몰린 모습을 보고 70대 한 주부는 “도매시장인 데다 설도 있고 지하철 1호선 제기동역과 연결된 인천, 수원 등에서 좀더 싸게 사려는 사람들이 평소보다 더 몰려서 그런 거 같다”고 귀띔했다.
지난해 설보다 가격 부담이 커진 탓에 비용을 쉽게 올리지 못하고 양을 줄이겠다는 시민이 다수였다. 서울 중랑구에서 장을 보러 온 정희자(63) 씨도 그런 경우였다. 정씨는 “저희는 차례상이랑 가족 먹을 것까지 해서 보통 60만원 정도 쓴다”며 “올해에는 물가가 너무 올라서 양을 줄이고 애들에게 싸줄 음식까지는 힘들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아이들도 좀 모자라도 되니 비싼 거 준비하지 말라고 한다”며 “그래도 가족이 모이는 명절이 1년에 두 번뿐인데 좋은 걸 먹어야 하지 않겠냐”고 덧붙였다.
서울 서대문구에서 아내와 장을 보러 온 70대 최모 씨는 과일선물세트 앞에서 고민 끝에 손주들이 좋아한다는 10만원짜리 수입산 망고세트를 구입해 보냈다. 이 가게는 샤인머스캣, 석류 등이 들어간 중급 선물세트는 6만5000원에서 고급세트의 경우 10만원대였다. 최씨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미리 직거래장터 가격까지 확인하고 장을 보러 왔다면서, 그래도 너무 비싸다며 한숨을 쉬었다. 최씨는 “도매시장이고 하니 가격이 괜찮을 줄 알고 동대문구까지 왔는데 여전히 비싸 장 볼 기분이 안 난다”며 “손주들 생각에 안 살 수는 없는데 택배비도 다 받으니, 참…”이라며 아쉬워했다.
명절마다 대량 주문을 받던 과일가게들도 위축된 소비를 체감하고 있다. 청량리청과물시장의 금성상회 사장 김종호 씨는 “저흰 단골손님이 많은데 주문하는 가격 자체가 줄었다”며 “지난해 설에 100만원치 사셨던 손님이 힘드시다며 올해는 70만원만큼만 주문하셨다”고 말했다. 이런 탓에 한 가게에서는 ‘싸요. 선물해요’와 같이 가격으로 선물세트를 홍보하기도 했다.
hop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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