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TSMC가 꽉 잡은 반도체 패키징, 美서 반전 노리는 SKC
TSMC 주도 반도체 패키징 시장 도전
지난 9일(현지시각), 미국 애틀란타 공항에서 버스를 타고 약 1시간을 달리니 ‘SKC 드라이브(Drive·도로)’라고 쓰인 초록색 표지판이 나왔다. 조지아주 커빙턴시에 속하는 이 도로는 1999년 SK그룹 최초의 미국 공장이자 SKC 모태사업인 필름공장이 들어서면서 이같은 이름을 얻었다. SKC는 필름 사업을 매각했지만, 여전히 이곳에서 신사업을 이어가기 위해 공장 건설에 한창이었다. 반도체 패권경쟁의 핵심으로 꼽히는 패키징 산업이다.
한 기판에 여러 개의 반도체를 넣어 연결하는 패키징 산업은 한계에 다다른 반도체 미세공정 경쟁의 해결책으로 떠오르고 있다. SKC 계열사인 앱솔릭스는 ‘글라스(유리) 기판’으로 반도체 패키징 산업의 판도를 바꾼다는 계획이다. 대만 TSMC의 경우, 플라스틱 기판을 기본 틀로 하되 그 위에 실리콘 중간기판을 넣은 형태로 현재 패키징 시장의 90% 이상을 독점하고 있다. 글라스 기판은 중간기판이 필요없어 두께가 얇고 전력 효율이 높아 대용량 데이터를 저전력으로 빠르게 처리할 수 있다. 같은 면적으로 성능이 더욱 좋은 패키징이 가능한 것이다.
반도체 패키징 시장의 ‘게임 체인저’가 될 글라스 기판 기술을 SKC가 확보한 것은 필름사업 진출 덕이 컸다. 조지아공과대 내 패키징 리서치 센터에서 1990년대 들어 실리콘 중간 기판을 유리로 대체하는 기술 개발을 시작했다. 그러나 이를 가공하는 기술이 없어 고민하던 차에, 마침 산학협력 관계를 맺고 있던 SKC가 한국의 선진화된 디스플레이 기술 등을 활용할 수 있다고 제안했다.
미국을 글라스 기판의 생산 거점으로 확정한 것도 기술 협력 차원이 크다. 오준록 앱솔릭스 대표는 “파트너 대부분이 미국 고객사인 만큼 미국에 공장을 지어 직접 고객과 같이 개발부터 마케팅까지 함께 하는 것이 맞다는 판단이었다”며 “향후 국내 반도체 기업들과 협업할 수 있는 기회가 오겠지만, 지금 당장 가장 가까운 고객은 미국에 있는 데다 SKC가 좋은 캠퍼스를 갖고 있다는 점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고 말했다.
글라스 기판을 쓰면 플라스틱 기판 대비 성능이 40% 개선된다는 것이 앱솔릭스 측 설명이다. 실제 서울 용산구에 있는 한 통신사의 인터넷 데이터 센터에 글라스 기판을 적용하면, 동일 면적에서 데이터 처리 규모는 8배 증가한다. 지금은 센터 규모가 4만8000㎡(약 1만4500평)지만, 이를 9600㎡(약 2900평)로 5분의 1가량 줄일 수 있는 셈이다. 전력사용량 역시 현재 4만800㎾(킬로와트)에서 2만400㎾로 50% 감소해 전기요금을 연간 360억원에서 180억원까지 절감할 수 있다.
오 대표는 “글라스 기판은 대량의 데이터 처리와 저전력, 다양한 기능, 작고 얇은 사이즈 등을 요구하는 사물인터넷(IoT), 인공지능(AI), 자율주행차, 가상현실, 고속통신(5G·6G), 데이터센터 등 다양한 하이퍼포먼스 컴퓨팅 시장에서 응용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앱솔릭스는 반도체 시장이 2027년까지 연평균 7% 성장하는데, 고기능 반도체 패키징 시장은 같은 기간 13.4%씩 늘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
이같은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앱솔릭스는 2억4000만달러(약 3000억원)를 투자해 연산 1만2000㎡ 규모의 글라스 기판 공장을 2024년 완공할 예정이다. 이는 ‘소규모 생산(Small Volume Manufacturing)’ 체제로, 앱솔릭스는 향후 3억6000만달러(약 4500억원) 규모의 2단계 투자를 통해 생산능력을 연산 7만2000㎡ 규모로 확대할 예정이다. 추가 투자 가능성도 열려있다.
박호석 앱솔릭스 최고운영책임자(COO)는 “대량 생산(High Volume Manufacturing) 시설 하나로는 시장 수요를 못 따라갈 것으로 전망한다”며 “현재 고민하는 HVM의 3배에서 6배까지도 필요할 것으로 예측한다”고 말했다.
글라스 기판의 상업화는 앱솔릭스가 세계 최초로 도전하는 만큼, 수익성 확보는 과제로 남아있다. 김성진 앱솔릭스 최고기술책임자(CTO)는 “양산 수율(양품의 비율)을 높이기 위해 한국 내 연구인력들이 집중해서 작업하고 있다”며 “그 결과에 따라 사업 규모가 정의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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